정기적으로 운영되는 독서모임이라는 곳에 처음 들어가 본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특활로 독서토론반에 들어갔었다. 국어선생님이 중재를 잘 해주셨으니 망정이지, 거기 들어온 놈들 전부 다 성질이 고약해서 한 달에 한 번 있는 특활 시간마다 참 열심히들 싸워댔던 기억이 있다. 이후 이런저런 독서모임에 잠깐씩 들어가 보기도 하고, 육아휴직 기간에는 아이를 안고 근처 동사무소에서 운영하는 독서모임에 가 본 적도 있었지만, 전부 실망스러웠다. 분위기가 좋은 곳이 있어도 술꾼이 한 명 들어오면 금세 술 모임으로 변질되는 데는 모임 두 번도 필요하지 않다. 트레바리 같은 데가 있다는 걸 듣고도 관심을 안 가진 것도, 가 봤자 맞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대체 책을 어떻게 남들과 같이 읽는단 말인가.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읽어온 책의 히스토리가 다른데. 어떻게 공유하고 공감한단 말인가. 살면서 한두 번 정도 시도해 볼 수는 있어도 독서모임을 주구장창 나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런데 누군가는 독서모임을 잘, 아주 많이 꾸리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원하나는 출판사 대표이자 ‘하나의책’이라는 독서모임을 운영하며, 인문 교양서부터 문학, 철학 등 여러 주제로 6년간 200회가 넘는 모임을 진행하며 350여 명의 회원들과 독서모임을 했다고 한다. 성격 나쁜 독서가들을 데리고 이렇게 많은 모임을 할 수 있었다니. 나는 이 자기소개를 보고 중얼거렸다.
“…..부처님이야?”
그러니까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독서인과의 교류란 서로가 서로에게 책을 영업하는 사이면 족하지, 감상을 굳이 나눌 일인가 하고 생각하던 내가 그와 완전히 정 반대인 주장을 읽고 대체 왜 사람들이 독서모임이라는 것을 하는지 알아보는 과정에 가까웠다. 대략 그 이유란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비교하고 대조하며 세계를 확장시키고, 회원들과의 모임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억지로라도 책을 읽게 되고, 자신이 평소 읽지 않던 종류의 책들을 반강제적으로 접하며 폭넓은 독서를 하고, 독서한 내용을 정리해서 말하면서 말하기의 방법과 다양한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된다는 것, 이다. 비슷한 일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거나, 함께 모여 공부를 할 수도 있고, 이미 친분있는 사람들끼리 색다른 대화를 하기 위해서도 독서모임을 하게 된다는데…… 이 대목에서 무슨 덕후 모임에 나타나서 영업사원처럼 명함 돌리던 사람들 생각이 나는 것은 내가 너무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은 탓일까.
하지만 내가 독서모임이라는 것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이, 독서모임을 향한 열의가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이렇게 사람을 모아 함께 책을 읽을 생각도, 또 그 독서모임의 노하우를 다시 책으로 쓸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는, 만약에 독서모임을 만들 생각이 있다면 정말 유념해야 할(다시 말해서 독서모임이 망하는 포인트들) 점들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열 명이 신청해도 대개 두세 명 정도는 결석을 하니 애초에 열 명을 모집해야 자연스레 적당한 인원으로 모임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출판인 모임이나 마케터 모임처럼 색깔이 명확하거나 특정 분야 책 읽기를 목적으로 하는 모임은 보다 깊이 있는 대화를 위해 네댓 명이 적당했습니다.
SNS에 게재할 홍보 글을 쓸 때는 우선 진솔하게 자신을 소개하고 독서모임을 시작하려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는 편이 좋습니다. 어떤 분야의 책을 읽을 것인지, 여력이 된다면 첫 두 달간 어떤 책을 읽을 것인지, 여기에 더해 모임 장소와 시간, 회비까지 공지하면 기본 정보는 제공한 셈입니다. 이외에 책 선정 방식이나 모임 진행 방식, 모임 주기 등을 덧붙이면 더 친절한 안내 글이 되겠지요.
동네 책방이나 작은 도서관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주변에 책방이나 도서관이 있다면 슬쩍 한번 방문해 보세요. 이미 독서모임 지원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모임 장소를 제공하거나 회원 모집 소식을 함께 알려 주는 곳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운영에 필요한 사항을 논의해야 합니다. 당장 다음에 읽을 책과 발제자를 정하고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 책을 고르고 발제자를 정할지, 모임 장소와 빈도에 불만은 없는지, 모임 공지는 어떤 경로로 하면 좋을지(카페나 블로그 개설이 필요할지, 혹은 주로 어떤 메신저를 이용하는지) 등을 상의하는 겁니다. 혹 운영자가 책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모임을 진행할 예정이라면 선정 이유와 취지 등을 가능한 자세히 소개하는 편이 좋습니다.
첫 모임에서 주고받을 만한 질문들, 책을 선정하는 법, 발제하는 법 등, 독서모임에 참여해 활발히 활동하기 위한 내용들도 담고 있다. 읽으면서 TRPG 마스터링 하는 법과 결국 일맥상통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결석 문제나, 책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는 회원들을 대하는 법, 혼자 이야기를 독점하는 회원, 지인들끼리 독서모임을 만들었을 때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서, 내가 기웃거렸다가 도망나온 독서모임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와 별개로 “인생 최고의 책”을 공유하는 것, 독서모임에서만이라도 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책만 읽는 시간”을 갖는 것, 특정 작가 작품 읽기 모임, 시대별, 혹은 같은 시기에 출간된 여러 나라의 문학작품을 비교하며 읽기 등은 따로 모임을 만들지 않더라도 개인 프로젝트로 해 볼 만 했다. 이 책을 읽었다고 내가 독서모임에 나가거나 독서모임을 만드는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개인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아마도 모임을 만들려는 사람에게는 꼭 읽어봐야 할 만한 안내서일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