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 제일의 미녀이자 재녀이며 구 왕가인 리베로가의 장녀 티테는, 소년 추기경인 요한을 사랑한다. 아름답고 거룩하며 마족과의 전쟁을 끝낼 자라는, 신의 축복을 받은 요한을 사모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티테는 요한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주장하고, 몇 번이나 요한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선 끝에 “리베로가의 미친년”이라는 조롱과 모욕을 받게 된다.
왜 아무도 모르는 걸까. 그는 나를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의 백배 천배는 더 사랑하는데. 그의 눈이 나를 볼 때 마다 그 안에 담긴 사랑에 나는 질식할 것 같아. 온 인류를 사랑하는 박애가 나 한 사람에게 몰리는 걸 느껴. 그런데 왜 다들 그걸 모르는 걸까?
요한 추기경은 티테를 피하고, 티테는 요한에게 집착한다. 교황과 쥰 추기경은 요한을 보호하려 하고, 티테가 요한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지만, 티테는 그야말로 스토커이자 미친년 그 자체다. 나무 위에 올라가 요한에게 자신의 잘린 머리카락을 떨어뜨리는 정도는 약과다. 그리고 그는, 세상 사람들이 요한 추기경과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말하던 리스이 영애를 납치한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요한 추기경(교황 서거 후 교황이 된다)을 신의 축복을 받은 성스러운 존재로 여긴다. 그는 아이돌이자 우상(idol)이며 이콘(icon)이다. 그는 인간이고 아직 소년이지만 신의 피조물이고 거룩한 존재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인정하고 환속하라고 말하는 티테는 아이돌을 땅으로 끌어내리려는 악녀이지만, 정숙하게 대화를 나누는 리스이 영애는 그의 곁에 있음직한, 그의 사랑을 받을 만한, 여사도로 여겨진다. 그리하여 마족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요한 교황, 혹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시키라는 신탁 앞에서, 쥰 추기경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대신해 희생하려는 요한의 진심을 짓밟고(사랑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일전에 티테에게 말했던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의 주인공을 멋대로 리스이라고 판단하여, 리스이를 희생시키려 한다. 드레스와 베일로 감싼 신의 신부(bride)같은 모습으로 번제물이 되어 화형대에 오르기 전날, 리스이는 티테에게 납치된다. 그리고 티테는 요한이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믿음으로 희생의 자리에 오른다.
티테는 악질 스토커이자 미친년이다. 하지만 많은 고전 서사에서 진실을 보는 것은 어린아이, 광대, 미친 사람이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보는 어린아이처럼. 혹은 남들이 보지 않는 진실을 보아 버린 자는 그 대가로 미치기도 한다. 광야를 헤매던 리어왕처럼. 티테가 미친 것은 요한에 대한 사랑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아이돌, 우상, 이콘 취급하는 요한이 피와 살을 지닌 인간이라는 것을 한눈에 깨달아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혹은 미친 사람이기에 그것을 간파했을 수도 있지만, 요한을 만나기 전의 티테는 미치지 않은 명문가의 재녀였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하여, 요한에게 그가 인간임을 확인시키고 갔다. 요한은 티테를 사랑하고 있다는 그 사실을 일깨움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