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소설의 화자가 원래는 남자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남자가 건너편 아파트 동에 살고 있는 묘령의 여인을 엿보다가 사건에 휘말리는 류의 (남성 독자들에게는 호기심을 자아내는, 여성 독자들에게는 불쾌한) 이야기는 사실 흔하니까.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중년 아저씨가 천체 망원경으로 다른 집의 여성을, 그것도 몸매를 감상하고 있으면 그 자체로 범죄 소리를 듣게 되었으므로, 이 이야기를 성반전해서 욕구불만의 중년 여성이 의문의 젊은, 몸 좋은 남성을 천체망원경으로 훔쳐보는 이야기로 바꾼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남성들 – 남성 작가님들도 포함 – 이 흔히 착각하는데, 중년 아줌마가 엿본다고 범죄가 아니거나 불쾌하지 않은 게 아니다. 대체 왜 천체망원경으로 남의 집을 엿보는 이야기를 2022년에 읽고 있는지, 이 시점에서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남성 작가들의 묘사하는 “아줌마”의 욕망은 희화화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건지, 전에 김동식 작가님이 쓰신 소설에서도 비슷한 감성을 느낀 적이 있는데. 그런 것을 세련되게 감추지도 않고 무신경하게 내보내는 건 좀 성의없이 느껴진다.
이 소설의 화자가 여성이 아니었을 거라고 단정하는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주인공은 자신이 엿보던 남자의 “가늘고 긴 성기” 이야기를 몇 번이나 하는데…. 이 정도로 가늘다는 소리를 많이 하면 휴지심의 영역에서 아득히 떨어져서 직경이 1센티쯤 되나, 저런것이 과연 성적 매력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나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남의 집 남자의 몸매를 훔쳐보며 성적 망상을 할 정도면, 가늘다 소리가 그만큼 나올 정도의 성기를 봤으면 바로 관심이 식지 않을까요….. 작가님 댁에 BL 소설 중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것들 몇 질 보내드리고 싶었다. 작가님, 그거 아니에요. 그거 아니라고요.
남편에게는 탐정의 피 따위 한 방울도 들어있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하드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필립 말로와 같은 사람, 그리고 일상의 노예가 되어 스파게티를 우적거리며 축구를 보는 사람. 물론, 나는 말로 쪽이다.
주인공이 묘사하는 남편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나 보는 “마누라”에 대한 남자들이 한탄에서, 드라마를 축구로 바꿔놓은 느낌이다. 주인공 여성은 적당히 편집증적이고 약간 미쳐 있는데, “미쳐 있는 여성”의 심리 치고는 되게 개저씨같은 대목들이 눈에 띈다. 역시 이 소설을 다시 읽고, 주인공들의 성별을 반전해서 다시 읽어보면 이해가 가는 부분들이 있다. 아마도 주인공이 남을 훔쳐보는 중년 아저씨고, 길 건너에 사는 “제비족”이 아니라 “꽃뱀”을 훔쳐보고, 마누라는 드러누워서 드라마나 보고 있지만 사회파 탐정을 꿈꾸는 나는 정의를 구현했다, 그런 이야기라면 다분히 “오늘의 유머”같은 데서 좋아할 만한 “썰”을 정돈한 듯한 페이크 “썰”같은 느낌의 나름 흥미로운 소설이 되었을 텐데. (아니, 물론 주인공이 천체망원경으로 남을 엿보는 아저씨라면 그 대목에서 바로 탈락하고 댓글로 욕하고 가는 사람이 많긴 했을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느라 노력하시다가 뭔가 조금 잘못 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정말, BL이든 TL이든 15금 이상 로맨스 판타지든 보세요…… “가느다란” 성기는 여성 독자에게는 요만큼도 수요가 없습니다. 예……. 정말로요. ㅠㅠㅠㅠㅠㅠㅠㅠ 제가 벨이나 TL이나 로판을 쓸 재주는 없지만 독자로서는 많이 읽었는데 그거 아니야…….. (아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