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죽었다

오빠가 죽었다 – 무라이 리코, 이지수, 오르골

교보에 들렀다가 눈에 띄어서 바로 사온 책. 54세인 오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책 소개에서는 고독사라고 나오지만, 실제로 고인은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고 아들이 잠깐 외출한 사이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리고 작가는 늦은 밤 경찰로부터 오빠의 부고와 함께, 이혼하여 다른 성인 가족이 없는 오빠의 시신을 인수할 유일한 가족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예정된 일들도 있고 자신의 아이들도 있는 상황에서, 평생 사이가 썩 좋지 않았던 오빠의 시신을 바로 수습할 수는 없었던 작가는 그 다음 주, 오빠의 이혼한 전처인 가나코와, 고모와 만나 함께 오빠의 시신을 수습하러 미야기현 시오가마시 시오가마 경찰서로 향한다.

시신 인수와 간소한 장례는 시작일 뿐, 고인에게는 초등학생인 어린 아들이 있고, 엉망이 된 집에는 아들인 료이치가 키우던 반려동물인 거북이와 금붕어가 남아있다. 게다가 쓰레기로 뒤덮인 집에서 유품을 정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아이를 임시보호로 맡겨 두고, 학교에 사정을 알리고 당분간 반려동물을 학교에 맡겨 두고, 청소업체를 불러 집을 치운다. 고인의 죽음을 애통해하거나 추억을 되짚을 겨를 없이, 책은 “골칫거리였지만 나의 가족”인 사람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 맞닥뜨리게 되는 일들을 하나씩 짚으며 따라간다.

쉰네 살 ‘양치기 아저씨’는 정말로 도움이 필요할 때 이 세상에 딱 하나뿐인 여동생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고, 누구의 간호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갔다. “늑대가 나타났다!” 하는 혼신의 힘을 다한 목소리는 마지막까지 여동생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슬픔을 쏟아내는 대신 담담하고 차분하게 당시의 상황을 서술한다. 업무적이고 비정하다기보다는, 마음속에서 곱씹고 정리하여 객관화가 된 것을 담백하게 표현한 느낌이다. 그 정제된 감정은 가까운 육친의 죽음 앞에서 자신이 언젠가 세상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되새기는 것이기도 하고, 게으르고 민폐를 끼친다고 생각한 오빠가 자신의 삶에서 다시 일어나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슬픔이기도 하고, 가나코와 료이치에게는 가족의 죽음을 통한 가족의 재회와 재결성이기도 하다.

PS)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 전에 작가의 다른 작품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인터넷 서점에 들어갔다가 눈을 의심했다.

“이 책은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추리소설 같은 재미와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소설도 아니고, 유족이 자신의 오빠를 수습한 이야기인데 “추리소설 같은 재미와 잔잔한 감동”이라니. “재미와 감동”이라는, 이제는 눈길도 안 가는 식상한 멘트를 굳이 홍보멘트에 넣으려다가 벌어진 대참사가 아닌가. 홍보용으로 들어간 문예춘추의 코멘트는 더 가관이다.

“고인의 전처와 여동생의 콤비 플레이는 영화로 만들었으면 할 정도”

집에서 급사한 중년 남성의 시신을 발견한 건 그의 초등학생 아들인데 콤비 플레이가 어쩌고 어째? 저런 걸 홍보 멘트라고 넣다니, 출판사도 일본 문예춘추 지도 고인이나 유족에 대한 예의라는 것이 없어도 너무 없다. 제정신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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