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로 살아요

이걸로 살아요 – 무레 요코, 이지수, 더블북

읽기 시작하고서야 지난번에 “지갑의 속삭임”을 읽고 짜증을 냈던 일이 떠올랐다. 아마도 “세상 물정 모르고 좋은 게 좋은 것인 아방한 중년인 나(무해하고 귀여움)”를 묘사한 것에 짜증이 났겠지. 일본 여성 작가들의 수필들을 읽다가 비명을 지르게 되는 것은 대체로 그 부분이다. 대체 그 정도의 글을 쓸 수 있으면서 “나는 무해해요”하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지. 조금이라도 모가 난 여자들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용렬한 남자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아첨하는 것 같은 태도가 아니냐고 화를 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갑의 속삭임”을 쓰실 때는 50대였던(그리고 아직 자신이 여성이고, 귀여워야 한다는 자의식을 갖고 있는 듯 했던) 작가는, 60대에 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집안 살림은 지겹고, 글을 쓰는 데 필요한 도구들에 애착이 강하고, 미니멀한 살림을 동경하면서도 잘 되지 않는. 아니, 돈 이야기처럼 작가가 자학 개그를 늘어놓을 이야기가 아니라 살림이나 생활, 그러니까 작가 자신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게 되니까 더 재미있는 것 같다. 여러 장의 타일들 중 매일 제일 더러움이 눈에 띄는 한두 개를 닦으면서, “타일이 균등하게 더러워지면 청소를 안 해도 들키지 않을 텐데!”하고 한탄하는 대목에서는 우리 집 타일들이 떠오른다.

사람이 살면서 오래 쌓아올린 개인의 취향에 대한 이야기지만, 화려한 것이 아니라 소박한 일상용품에 대한 이야기라 좋다. 귀여운 척을 덜 하는 것도 좋다. 몇몇 대목에서는 아아, 나도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테면.

“만년필에 컨버터로 감벽색 잉크를 넣는 일이 못 견디게 즐겁다.”

라든가. 저도 그래요. 만년필은 역시 컨버터죠. 이로시주쿠 잉크는 색이 곱고 무난하게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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