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스크랩북을 읽고 실망한 적이 있었다. 작가의 창작의 원천이 된 노트라고 해서 궁금했는데, 아이디어 메모 같은 것이 아니라 잡지나 마른 꽃, 드레스를 입은 여자 그림 들이 붙어 있는 잡다한 것이어서. 이번에 “하우스 오브 드림”을 읽으면서, 나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스크랩북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그냥 예뻐 보이려고 모아둔 게 아니라면 다이어리나 스크랩북에는 맥락이 존재하는 법이고, 나는 거기 나온 잡다한 것들과 빨강머리 앤 사이의 관계는 알았지만 그 사이의 구체적인 무언가가 결여된 상태에서 남의 스크랩북을 보는 것은 제대로 된 감상이 아니었을 거다.
“하우스 오브 드림”은 그야말로 꿈의 집, 앤의 창조주인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일생에 대한 전기소설이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편지나 일기, 기록에 기반하고 있어 구체적이다. 그의 생애는 그가 만들어낸 앤과 일면 닮았지만, 현실은 소설처럼 로맨틱하지 않고, 그의 인생에는 고통이 많았다. 다정한 아버지는 재혼하고 모드를 제대로 양육하지 않은 채 외가에 맡겨 두었고, 아버지의 곁에 머무르는 동안 새어머니는 모드를 구박했다. 외할머니는 모드의 교육을 위해 애썼지만, 외할아버지는 모드가 공부하는 것을 반대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죽자 살던 집과 마차를 포함한 모든 것을 외삼촌에게만 물려주었다. 외할머니와 모드는 그들을 쫓아내고 집을 차지하려는 외삼촌에게서 버텨내야 했다. 믿었던 출판업자와 저작권 분쟁으로 오래 싸워야 했고, 길버트를 연상하게 하는 매력적이고 영리하며 좋은 남자들은 연인이 되지 못하거나 떠나거나 젊어서 죽었다. 자신에게 청혼하는 남자들은 매력적이지 않았고, 욕망을 느낀 남자는 이미 다른 여성과 약혼한 남자였다. 결혼한 뒤에도 고난은 이어졌다. 작가로서는 성공했지만 남편은 우울증에 시달렸고, 모드의 업적을 사람들이 칭송하는 것을 괴로워했다. 아들은 성장과정 내내 문제를 일으켰다. 앤이 가진 것들 – 수줍고 서투르지만 앤을 무척 사랑한 매슈와 엄격하고 무뚝뚝하지만 앤의 장래를 응원한 마릴라, 소꿉친구에서 매력적이고 영리한 남편감으로 성장하는 길버트, 대학 진학과 장학금, 교사로서의 생활, 낭만적인 사랑과 꿈의 집, 그리고 아이들 – 은, 현실에서 고통스러워 하던 모드가 꿈꾸던 자신을 닮은 이상, 자기 자신에게 주고 싶었던 모든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전기이지만 동시에 소설이다. 아마도 작가가 생각한 모드의 인생은 앤의 인생의 어두운 거울상처럼 보였을수도 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앤이 가장 초라한 방에서 코딜리어 공주의 방을 상상하듯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상상해 앤을 창조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드는 생전에 이미 성공한 작가였고, 작가는 (독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자신의 작품 속 인물의 거울상이 아니다. 이 책은 아마도, 모드의 인생에서 앤과 닮은 부분을 더 부각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읽으며 나는 모드가 파혼을 하고, 다른 여성과 약혼한 남자와 키스하고, 욕망과 도덕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분들이 흥미로웠고, 다시 그 스크랩북을 보고 싶어졌다. 빨강머리 앤과 관련된 스크랩 뿐 아니라, 작가가 좀 더 드러나는 부분들을 읽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