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은 소녀들과 여성들이 사랑했던 수많은 세계명작에 대한 헌사다. “키다리 아저씨”, “빨간 머리 앤”,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셜록 홈즈”,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그림책인 “리디아의 정원”…. 편집자 코델리아 플로라 그레이는 동화책 “공주와 기사”의 작가 앤 셀린의 후속작 원고를 받으러 골동품 상점에 갔다가, 그곳의 주인 리엄이 넘겨준 서책 보관함을 통해 원고 속 세계인 윈저튼의 잘생긴 왕자, 아치 앨버트 윌리엄과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윈저튼 왕국의 아치는 얼굴도 잘 생기고, 이해력도 지식도 풍부하지만, 누나와 싸우기 싫어서 제왕학 대신 신부수업을 받고,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필경사들과 어울리며 느긋한 나날을 보낸다. 어느날 아치는 서책 보관함에 들어 있던 원고를 보고, 누군가 윈저튼 왕국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공주와 기사”는 선왕의 딸이었던 공주 에드위나에게 청혼한 기사 아서 길런의 이야기다. 100일동안 매일 공주의 창가에 서 있으면 혼담을 받아들이겠다는 공주와, 99일동안 기다리고 떠난 기사, 그리고 그 기사를 찾아 떠나는 공주의 이야기. 그리고 아치는 에드위나와 아서, 그리고 그들의 아이가 살던의 오두막이 발견되는 그 속편의 원고를 읽고, 자신의 누나이자 야심만만한 세실리아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에드위나 공주의 아이를 죽일 거라고 생각하고 먼저 아이를 찾아내려 한다. 에드위나 공주의 오두막에 그 문제의 아이이자 아치의 사촌인 플로리안 엘핀델이 나타나고, 세실리아는 뜻밖에도 플로리안에게 친절하게 대하는데다, 서책 보관함 너머의 코델리아까지 진상을 알아채는 가운데 아치는 혼란에 빠진다.
잘생긴 얼굴의 한량 왕자 “아치”라니. 아치 앨버트 윌리엄가 공을 세워 이름이 늘어났다는 대목을 보면서 조금만 더 늘어나면 테리우스나 앨리스테어도 들어가지 않을까 기대했다. 애초에 아치도 앨버트도 윌리엄도 전부 캔디캔디에 나오는 이름이니까. 그야말로 순정만화 속의 “왕자님”을 형상화한 듯한 인물이다. 게다가 “캔디캔디”하니, 이 서간체 작품이라는 형식이 어쩌면 “키다리 아저씨”가 아니라 지경사판 캔디캔디 3권에서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편 코델리아라는 이름은 리어 왕의 공주인 코델리아의 이름이자, 빨간 머리 앤이 동경했던 이름이고,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의 탐정 코델리아 그레이의 이름이다.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는 이 세 사람의 주인공들은 그대로 코델리아의, 그리고 에드위나 공주의 성격과 행동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들은 비틀린 시간 속에서 과거 앤 에드위나 공주와 라이너 셀리네 폰 로이틀링엔 황자의 애절한 사랑과, 그것이 현재의 윈저튼 왕국과 런던으로 이어진 과정을 알게 된다.
“에드위나야, 나는 말이다.”
좀처럼 우리 공주님의 말을 끊으시는 법이 없는 라이너 황자님께서 말을 가로채어 말하다 말고 주저앉았습니다.
“나는……. 나는 너를 귀애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가 없이는 내가 못 살겠다.”
그 절절한 고백을 듣고도 우리 공주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시고 입술만 깨무셨지요.
솔직히 말하면 왜 이 작품이 SF 어워드 웹소설 부문 후보에 안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거 꽤 화제작이지 않았어? 아니, 그때 저는 육아하느라 너무 정신이 없어서 앞부분만 보고 완결나면 보겠다고 미뤄뒀어요. 그렇긴 한데, 이거 너무 SF잖아. 물론 이게 SF 어워드에 올라와 있었다면 나는 앞부분을 보고서 중간과정과 결말을 대충 다 알았겠지만. 이 이야기는 소녀들이 읽던 세계명작에 대한 절절한 헌사이자, “그래서 왕자님과 편집자님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고, 정말 아름다운 SF여서 읽는 내내 행복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시간을 되돌리는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시간을 넘고, 다시 이 시간이 틀어지지 않기를 기다려 마침내 만나는 이 이야기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발가락이 부러져서 침대에서 꼼짝도 못 하는 동안 통증조차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빠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