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더 배드콕 같은 사람은 현실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움직이고, 오지랖이 넓고 수다스러운데, 자기가 사교성이 좋고 친절하다고, 요즘 말로 인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물론 남의 일에 관심이 많다 보니 정말로 친절한 경우도 많지만, 그 친절은 종종 선을 넘고 사람을 부담스럽게 한다. COVID-19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팬더믹의 시대에, 이런 사람들은 종종 집에 있으면 심심하다고 뛰쳐나가 돌아다니고, 그 와중에 사람들을 불러모아 같이 밥도 먹으면서 그런 행동이 뭐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정말, 저 친구들 무리에 감염자 하나만 끼어 있으면 이 지역을 초토화 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예전에 읽을 때는 그저 짜증나는 인물이었던 피해자는, 지금 읽을 때는 정말 대책없는 폭탄처럼 느껴진다. 그것도 야전병원에서 일하고 있었으면서, 병에 걸렸는데도 얌전히 누워 있지 않고 발진을 화장으로 가린 채 뛰어나가는 인물이라니. 읽으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나 할 것이지, 같은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금 읽기에는.
꺼려지지만 죽어야 할 만큼 남에게 원한을 살 것 같진 않은 사람이 살해당했다. 얼핏 보기에는 동기가 없는 범죄, 혹은 다른 사람을 살해하려다가 실수로 살해당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죽음. 하지만 “누가 죽였는가”, “범인은 헤더 배드콕이 아니라 배우인 마리나 그레그를 죽이려 했던 것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이 이야기는, 겨우 죽음을 모면하고, 다시 비소가 들어 있는 음료수를 마실 뻔 한 마리나 그레그의 인생을 되짚으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 사람이 살해당한 이유는 무엇인가”로.
“깨어진 거울”은 소설 자체도 유명하고, 영화배우 진 티어니의 실화로도 유명하다. 사실은 임신을 앞두고 산전검사를 받거나 난임치료를 받는 중에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도 이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검사하고 예방접종도 해야 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부분이 아닐 것이다. 배우 마리나 그레그의 내면은 작중에서 제대로 묘사되지 않고, 그는 오직 주변 사람들의 묘사와 증언으로만 완성된다. 모든 인물들이 촘촘히 배열된 가운데, 마리나 그레그의 내면만은 텅 비어있다. 중간에 마리나 그레그에 대한, “실은 제복을 걸친 것 같았어요. 티 없이 자연스러운 모습이 그렇다는 얘기예요.”라는 묘사, 마곳 벤스의 “실제로 원한건 아니었지요. 그건 그저 화려한 연기였어요.”라고 말하는 대목 등은 그녀의 인생 자체가 연극적임을 보여준다.
영화배우로서 평생을 살아온 여성. 어디에 가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되는 삶을 살아온 마리나의 일생은, 진짜 풍경(실상)을 보지 못하고 거울에 비친 풍경(허상)만을 보아야 했던, 테니슨의 시 속의 “레이디 샬럿”과 겹쳐진다. 레이디 샬럿이 랜슬롯을 보기 위해 창 밖(실상)을 내다 본 순간, 거울은 깨지고 레이디 샬럿은 자신에게 저주가 내렸음을 알아차린다. 마리나 역시 그렇다.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녀를 신경안정제와 파티의 세계에 남겨 두었고, 전 남편들 중 한 명인 이지도르는 아이를 원하는 마리나에게 아이들을 입양하고 행복하다고 믿게 부추겼다. 평생을 허상 속에서 살아온 마리나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갈망했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몸으로 낳은 아이만이 그녀의 세계에서 유일한 “실상”이자 영원한 행복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 꿈이 깨어지고, 마리나는 더욱 신경안정제에 의존한다.
조용한 행복을 꿈꾸며 온 곳에서 자신이 꿈꾸던 행복을 파괴한 원인과 마주한 순간, 마리나 그레그의 인생을 온통 둘러싸고 있던 “허상”은 깨어진다. 그 원인(실상)을 단죄하기 위해, 신경안정제(허상)로 독살해 버린 것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덩컨 왕을 죽인 맥베스는 말한 바 있다. “맥베스는 잠을 죽여 버렸노라.”라고. 마리나 그레그는 고통스러운 실상을 살해했고, 자신의 안식 역시 살해했다. 실상과 허상을 모두 부숴버린 사람에게, 현실에 머무를 곳은 없다. 모든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마치 비탄에 젖어 떠내려가다 숨을 거둔 레이디 샬럿처럼 잠드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였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만약에 2020년, 손을 잘 씻고 마스크를 잘 쓰던 어느 어린이가, 혹은 오랫동안 기다리던 아이를 임신한 임산부가 코로나에 감염되었다면. 그래서 어린이가 죽거나 아이가 유산되었다면. 그 원인이 놀러다니길 좋아해서 다들 집에 있으라고 할 때 심심하다고 마구 돌아다니고, 그러면서 오지랖도 넓어서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마침 등원하던 어린이의 머리도 한번 쓰다듬고, 임산부에게 괜히 친한 척 말을 걸던 이웃 사람이었다면. 아니, 어린이가 아니더라도. 피해자는 노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가족들이 그 원인제공자에게 복수를 한다면… 같은 생각을 계속 했다. 현실에도 바로 저런 오지랖 깨방정에, 전염병이 도는데도 놀러다니는 걸 멈추지 않는 인간들은 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는 정말로 가족을 잃고 있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