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4] 목사관의 살인

목사관의 살인은, 이야기 자체는 퍽 심플하다. 21세기 한국이라면 가스통 들고 광화문에서 극우 시위나 차별금지법 반대 시위, 낙태 반대 시위나 나갔을 것 같은 인상을 주는 프로더로 대령이 클레멘트 목사(엄밀히 말하면 성공회 사제)의 사제관에서 살해당한다. 그렇게 평판이 나쁜 인물이다 보니 그를 죽일 만한 사람도 따지고 보면 한둘이 아닌 상황. 심지어 그의 전처 딸인 레티스 프로더로도 그를 미워하고, 현 부인인 앤 프로더로는 그를 두려워한다. 여기에 화가인 로렌스 레딩이 얽힌다. 한편 마을에는 그 정체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에스텔 레스트랭 부인이 살고 있다.

읽다 보면 범인의 윤곽은 곧 보이는 편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즐거움은 범인이 누구냐가 아니라, 미스 마플과 세인트 메리 미드 사람들의 이야기 쪽에 있다. 미스 마플이나 그의 조카인 레이먼드 웨스트, 클레멘트 목사 부부와 조카 데니스, 의사인 헤이독 선생, 프라이스 리들리 부인, 경찰서장인 멜쳇과 그 부하 슬랙 경감 등 미스 마플 시리즈에 꾸준히 등장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야말로 미스 마플 시리즈의 서장이니까. 미스 마플 하면 아무래도 뜨개질하는 노부인이나 중년 부인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레이먼드 웨스트도 클레멘트 목사 부부도 너무 젊고, 데니스는 아직 어리기까지 해서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 미스 마플이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복수의 여신까지, 출간 기준 41년이 걸렸으니, 그때 미스 마플이 팔순이라고 쳐도 설마 지금 40대인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이 소설에서 “15년동안 살인사건이 없었던 조용한 마을”로 묘사되는 이 세인트 메리 미드가, 앞으로 40년동안 크고작은 사건의 배경이 된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하여간 한 명의 명탐정, 한 마을의 평화를 해칠 수도 있습니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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