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덫”은 어릴 때 해문사 팬더추리문고로 읽었는데,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린 “세 마리의 생쥐”를 볼 때 마다 떠올렸던 소설. 폭설로 고립된 하숙집, 아직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신혼부부, 이 집에 온 지 하루이틀밖에 안 되어 서로 낯설고 경계하는 하숙생들, 여기에 런던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 맞물리고, 한 사람의 형사가 하숙집에 나타난다. 그리고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어릴 때에는 “새 마리의 생쥐”때문인지 무척 무서워하며 읽었던 것 같은데, 커서 읽었을 때는 의외로 심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BBC에서 영국의 메리 왕대비의 8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라디오 특집으로 듣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었을 때, 왕대비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여 일주일만에 완성한 작품이다 보니, 매체의 제약도 마감의 제약도 컸을 것이다. 이후 애거서 크리스티는 이 이야기를 단편소설과 희곡으로 고쳐 썼는데, 희곡은1952년 이후 계속 공연되어 새계 공연 사상 가장 오래 롱런한 작품으로 기록되고 있다. 언젠가 영국에 가면 한번 보고 싶은 무대다.
한편 어릴 때 읽었을 때는 이 세 아이들이 전쟁 고아라고 생각했는데, 성인이 된 뒤에 다시 읽으며 2차 세계대전 중 아이들을 시골로 피난시켜 보호하던 정책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다.
이 단편집은 “쥐덫” 외에도 미스 마플이 나오는 이야기 네 편, 에르퀼 푸아로가 나오는 이야기 네 편, 할리 퀸이 나오는 이야기가 한 편이다. 그야말로 이만하면 하나쯤은 마음에 드는 탐정이 있겠지, 하는 종합선물세트이자 트릭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다. 할리 퀸이 나오는 “사랑의 탐정”에는 자신의 연인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믿고 서로 자기가 범인이라고 거짓 자수를 하는 커플이, 에르퀼 포와로가 나오는 “공동주택 4층”은 같은 구조의 공동주택, “검은 딸기로 만든 스물 네 마리 검은 새”에는 같은 날 세상을 떠난 쌍둥이가, “조니 웨이벌리 사건”에서는 방탕한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유괴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작품들도 좋아하지만 이 책에서 좋아하는 소설들은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네 편이다.
“괴상한 장난”은 유산 상속과 희귀 우표, 비밀 서랍 같은 로망이 잔뜩 들어 있는 단편. 미스 마플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읽으면서 복잡한 비밀 서랍이 있는 서랍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희귀 우표에 대한 단편 소설들(특히 추리)은 몇 편을 읽은 적이 있는데, 아마도 비행기가 뒤집혀 인쇄된 우표라든가, 영국령 가이아나의 주홍색 우표, 색깔이 잘못 인쇄된 스웨덴 우표 등 경매장에서 높은 가격에 팔려나간 희귀 우표들이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기 때문일 것이다. “줄자 살인사건”은 뜻밖에도 애니메이션 “쁘띠 안제”와 함께 내게 “탐정이 여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추리물”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단편이다. “남자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핀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답니다.” 같은 말이라거나. 1인 2역 트릭이 나오는 “완벽한 하녀 사건”도 재미있지만, 이 책에서 특히 좋은 건 “관리인 사건”이다. 안락의자 탐정을 아예 독감에 걸리게 해 침대에 눕혀 놓고, 기운 내라면서 사건(정확히는 사건이 기록된 원고)을 던져주고 가는 의사 선생님이라니. 이 책을 다시 죽 읽으면서 나의 “레이디 디텍티브”의 몇몇 장면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다시 생각하며 한참 킬킬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