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4] 커튼

어릴 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드루리 레인 최후의 사건”이 이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니, 드루리 레인 쪽이 출간일자가 더 빠르다. 어째서인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은 실제보다 더 옛날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분명 20세기 작품이고, 어떤 작품은 1970년대에 출간되었는데도, 좀 더 고전적이고 때로는 세계대전 이전 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집필되었다고 하고,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의 배경이 1916년이었으며, 푸아로와 헤이스팅스의 나이 차이는 서른 살 가까이 되니 애초에 푸아로가 아무리 장수를 한다 한들 1970년대까지 살아 있는 것은 무리였지만.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때 씌여진 책이었으니, 실제로는 이 책이 출간된 시기보다는 훨씬 고전적인 느낌이 드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푸아로가 나오는 이야기는 예전에는 당연히 세계대전 이전 시대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지금 읽으면서도 미스 마플이 나오는 이야기와는 달리, 그보다도 더 이전의 세계를 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그건 그렇고 헤이스팅스는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 이전에도 어린 시절 스타일스 저택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도 이 책에는 “스타일스 저택을 향해 처음으로 여행을 떠났던 1916년…..”같은 말이 나온다.)

커튼은 에르퀼 푸아로라는 거인이 무대에서 퇴장함을 알리는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무대는 작가의 데뷔작이자 저 에르퀼 푸아로를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인 저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의 무대가 되는 스타일스 저택을 배경으로 또 하나의 시건을 만들어간다.

예전에 스타일스 저택에서 푸아로가 발견했던 흥미로운 사실은 여섯 가지였다. 커튼에서 푸아로는, 앞서 다섯 번의 살인사건을 유발시켰고, 이제 여섯 번째 살인을 만들어내기 위해 스타일스 저택에 나타난 범인을 뒤쫓는다. 아내를 잃은 헤이스팅스는 자신의 딸이자 과학자인 주디스가 잘못된 길로 접어들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누군가를 죽일 뻔 하고, 현재 스타일스 저택을 소유한 토비 러트셀은 실수로 아내를 살해할 뻔 한다. 그리고 주디스의 상사이자 과학자인 존 프랭클린의 병약한 아내 바바라가 음독 자살로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의심의 순간마다 누군가가 관찰하고 말리거나 부추긴다.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이코패스 범죄자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익숙한 지금의 독자들이 읽을 때에는, 헤이스팅스가 주디스를 걱정할 무렵, 진범의 정체를 파악할 수도 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푸아로는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여섯 번의 간접 살인을 성공시켰지만, 법률로는 처벌할 수 없었던 범인 역시 최후를 맞았다. 작가는 푸아로의 인생에 마지막 오점을 남기고, 완벽하게 헤이스팅스의 앞에서 숨을 거두게 하고, 그 시신을 땅에 파묻은 다음에야 진실을 알려주었다. 마치 그의 명탐정은,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따라 셜록 홈즈처럼 되살아나는 일 없도록, 혹은 후대의 누군가가 다른 이야기를 쓴다며 나서지 않도록, 완벽하게 죽여버려야겠다고 결심한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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