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 이진송, 다산책방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일을 몰아서 하는 버릇이 있는 나는 30대가 되자 거짓말처럼 체력의 한계에 부딪혔다. 취미가 미루기, 특기가 밤샘이었던 내가 깊은 밤이 되면 독침을 맞은 것처럼 픽픽 쓰러져 드르렁 잠들었다.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를 퍼부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제야 나는 마감 직전의 폭발적인 집중력이 온전히 체력의 영역이었다는 사실을, 준비한 체력이 소진되어 아직 일을 마치지 못했는데도 곯아떨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나 내 이야기였다. 감기몸살이 하루 푹 쉬고 나면 떨어지지 않는 나이가 되어서, 두 아이들 때문에 그나마 푹 잠들지도 못한 채 시달리다가 결국 며칠째 아이들 등하원조차 제대로 시키지 못하고, 글 한줄 적지 못하고 뻗어 누워 있던 나는 침대에서 이 책을 읽으며 자괴감 들고 괴로워 허공을 향해 이불을 걷어차며 하이킥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거야. 체력이 문제지. 왜 어릴 때, 아침 시간 TV 광고에 체력이 어떻고 간이 어떻고 비타민이 어떻다는 광고들이 쏟아져 걸렸는지 이해가 간다. 다들 아침 시간에 눈 뜨기가 너무 어려워지는 바로 그 나이부터, 그런 것들을 찾아먹게 되기 때문이겠지.

운동신경이 뛰어났던 적은 없으며, 그 사실은 고스란히 아이가 뛰어노는 모습으로 증명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래도 어릴 때는 일부러 운동을 하기도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것도 여의치 않아졌다. 그러니 결국 만만한 헬스장에 갔다가 남자들이 막 말시켜서 짜증내다가, PT를 끊는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갔는데, 나는 공부하고 일할 체력이 필요해서 왔다는데 트레이너가 사람 밥을 굶기려 들며 계속 여기 살을 빼야 남편이 좋아하고 뭘 어쩌고 그런 개소리를 지껄여대는 바람에 “이 사람은 근력 키우는 법은 모르고 살을 빼는 법만 아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헬스장을 옮겨서 만난 다음 트레이너는 여성 회원들에게 “집적거리는” 새끼였고, 여성 트레이너를 만나고서야 조금 운동이 좋아질 뻔 했는데 이분은 남성 회원들에게 시달려 그만두셨다. 그리고 나만 이렇게 헬스장이나 트레이너 뽑기 운이 없는 게 아니었다.

많은 여성이 헬스나 PT를 등록할 때 남자 코치에 대한 거부감으로 망설인다. (중략) 유독 PT를 할 때 ‘나’는 당연히 혼나고 통제 당해야 할 대상이고, 인바디 수치 하나하나에 죄책감을 느끼고, 트레이너에게 나를 함부로 대할 권리를 줘버린다.

내가 목적한 바를 아무리 이야기해도 여자는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을 하는 건 줄 아는 분이나 여성 회원에게 집적거려 치정극을 벌이더라는 분들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다보니, 환멸나서 운동 안 하고 말지, 가 되어버렸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렇다고 운동을 안 할 수도 없었다. 나이가 드니, 살기 위해 운동을 하게 되더라는 게 그런 말인가 싶었다.

체력이 떨어지니 몸에서 선천적으로 약한 부분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관절과 위장 때문에 정형외과와 내과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 (중략) 어느 순간 찌는 속도가 빠지는 속도를 추월했다. 신진대사율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중략) 나는 평생 이 몸과 함께 이인삼각을 해야 하는데, 한 쪽이 주저앉아버린다면?

그리고 이 책은, 바로 그런 답답함을 넘어 계속 이런저런 운동을 시도하고,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다. 한편으로 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에 강요되는 것들, 학교 운동장이라는 공공의 공간이 여학생들에게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성별불균형, 이화학당에서 처음으로 여학생들에게 체조를 가르치자 조신하지 못하다며, 수치라며 규탄하는 정도를 넘어 한성부에서 이화학당에 체조를 가르치지 말라고 공문을 보낸 이야기 같은 것을 읽고 있으면, “이 같잖은 것들이 어디서 부리를 털어”하는 생각과 함께 분연히 떨치고 나가 아파트 단지라도 파워워킹 하고 싶어진다. 이 책의 좋은 점이 여기에 있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 다만 뭐든 다시 시도하라는 것을, 당근과 채찍과 역사적으로 여성의 몸이 억압되었던 이야기들로 부추겨 우리를 밖으로 나가게 한다는 것. 운동에 대한 이야기에서 탈코나 생리컵에 대한 이야기들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면서, 우리 몸에 대한 각종 담론들을 계속 떠올리게 만드는 것도 좋다.

황이 운동을 좋아하는 이유는 로드워크나 크로스핏 같은 기본 체력 훈련 뒤에 본격적인 기술 운동을 하고 나서 드는 ‘적립’의 감각이다. 내가 오늘 무언가를 했다는 느낌. “결과가 바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꾸준히 이어가면 배신 없는 두께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공부와 운동이 일맥상통한다.” (중략) 운동이 한계 돌파의 반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를 제약하는 말이 얼마나 고약한지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차라리 지금은 얼마나 운동을 하기 쉬워진 세상인지도, 새삼 알게 된다. 어릴때는 이소라의 다이어트 비디오 같은 것이 한참 유행했는데, 사실 그때도 날씬하진 않았지만 “사람이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굳이 살을 빼야 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고 생각해서 좀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솔직히 그때 다이어트 비디오가 엄청난 인기를 끈 만큼, 이렇게 삐딱선을 탄 생각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때 그 다이어트 비디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로서는 여성 전용 헬스장도, 스포츠 클럽도 거의 없었고, 지금처럼 흔한 “홈트”도 아예 없었던 시대인 것이다.

1990년대 말의 한국. 헬스클럽 같은 운동 공간이 충분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운동 종목이 다양하지 않고, 여자의 운동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시피 한 환경. 1990년대는 가까운 과거처럼 느껴지지만 벌써 20년 전이고, 여성의 행동이나 자유를 생각보다 많이 제약하던 시기다. 1998년, 호주제가 있었고, 여자의 초혼 연령은 26.1세였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성희롱 소송 사건’이 6년간의 법적 공방 끝에 피해자의 승리로 끝난 해다. 지금은 선택지의 일부인 홈트가, 그때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생각지도 못한 깨달음을 얻었다. “운동은 적은 비용으로 많은 이익을 올리는 투자보다, 꾸준히 기르고 돌보아서 수확하는 농사에 가깝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나는 이 농사를 잘 지을 사람이 아니라는 걸 문득 생각하며 한숨을 쉬다가. 바로 내가 학교에 다니던 그 시절만 해도 정말 운동을 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으리라는 걸 다시 깨닫고 운동을 해볼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몸살이 나서 침대에 누워 있는, 운동을 시작하기에는 지극히 좋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그리고 왜 내가 요가를 사흘 다니고 도망쳤는지, 이 책이 놀랍게도 아주 명확하게 정리해 주었다.

요가는 나처럼 성질이 급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운동이었다. 문제는 성질이 급한 사람은 보통 요가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못 견디는 바람에, 결국 요가로 급한 성질을 다스리는 데 실패한다는 아이러니였다.

음, 이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던 모양이네.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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