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기생충 – 봉준호

오랜만에, 개봉하자마자 스포 없이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다. (원래는 걸캅스를 개봉에 맞춰 먼저 보려고 했는데, 혼자 외출할 수 있는 시간대에 보기가 쉽지 않았다. 돌 전의 아기를 키우는 중에는 영화 보는 것도 연례행사가 된다.)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꽤 늦은 시각에 가서 봤는데 영화관에 사람이 바글바글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땅 밑에 걸친, 반지하 집에 살고 있는 기우네 가족의 이야기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말을 자꾸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빗속에서 도망치는 시퀀스에서, 높은 언덕에 자리한 박 사장네 집에서 아래로 아래로 달려 내려가 결국 물에 잠겨 있는 기우네 반지하 집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아슬아슬한 긴장 속에서 박 사장 부부의 시선을 피해 기우네 가족은 테이블 밑에 납작 엎드려 숨어 있는 것 처럼. 그리고 박 사장네 지하 팬트리에 숨겨진 비밀처럼. “구름 위에 사는 듯한” 부유층과 땅 아래에 살고 있는 가난한 가족의 삶은 다르다. 폭우가 쏟아져도 물이 스미지 않는 어린아이의 장난감 텐트와, 비가 쏟아져 온 집이 물에 잠기고 거실보다 높은 곳에 놓여 있던 변기에서 시커먼 물이 역류되는 상황이 대조되듯이. 같은 도시의 한 편에서는 수재민들이 새우잠을 자는 가운데, 누군가는 “비가 와서 미세먼지 없어 좋다”며 쿨하게 앞마당에서 가든파티를 계획하듯이.

물론 가난은 또한, 감출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인스타 사진 찍기 좋은 가게는 많아도 좋은 맛집이 많진 않기에, 그리고 유니클로와 각종 패스트패션이 있기에, 의, 식, 주, 세 가지 중 의와 식에서는 가난을 잠깐이라도 숨길 수 있는 구석이 있다. 기우네 가족은 일가족이 모두 백수이고, 근처 가게의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하기 위해 화장실에서 팔을 뻗고, 피자 박스를 접으며 생계를 유지하고, 주정뱅이가 집 창문에 노상방뇨를 하는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부유한 박 사장 댁에서 일할 때의 그들은 멀끔한 명문대생, 유학생, 상류층을 오래 모신 노련한 기사, 그리고 우아한 가정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옷차림이나 행동, 말투만으로는 그들의 가난을 가릴 수 있다. 그래서 가난은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마치 한겨레 21의 안수찬 편집장이 쓰고 여러 해 회자되던 “가난한 청년은 왜 눈에 보이지 않는가”처럼.

각종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청년들 역시 도심 곳곳에서 우리와 함께 있 긴 하다. 편의점·대형마트·커피전문점·백화점 등에서 일한다. 그래 도 우리는 그들을 가난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가난의 표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 서비스업종에서 일하는 모든 청년 노동자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유니폼을 입는다. 유니폼은 빈곤을 탈색시킨다. 예부터 귀족은 하인들이 제 옷을 입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불쾌하기 때문이다. 가정부는 주인이 마련해준, 레이스가 달려 보기에 좋은 ‘메이드 드레스’를 입는다. 이제 빈곤 청년은 기업이 마련해준, 화려하여 금세 눈에 띠는 유니폼을 입는다.
우리 곁에서 일하는 빈곤 청년은 자신의 가난을 ‘화장’한다. 화장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을 곁에 두지 않는다. 아름다운 용모에 짙은 화장을 하고 단정하게 유니폼을 입은 백화점 화장품 매장 직원의 거의 전부는 시급 4천 원짜리 계약직이다.

하지만 의, 식, 주 중 마지막, 그리고 가장 큰 자본이 필요한 “주”는 쉽게 위장할 수 없다. 그것은 “반지하 냄새” 또는 “지하철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로 묘사되는 동시에 박 사장이 싫어하는 “선을 넘는 행동”으로 나온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런 모습들을 애써 숨기던 이들이 그게 까발겨지고, 눈 앞에서 멸시의 대상이 될 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밟으면 꿈틀”하듯이, 후반부의 시퀀스는 마치 인터넷에서 말하던 소위 죽창론을 떠올리게 한다. 사채꾼들을 피해 문자 그대로 숨어버린 문광의 남편도, 가난을 화장하고 부유층의 곁에서 “일리노이 주립대학 다니던 유학생”으로 위장한 채 일하던 기정도, 그리고 부유층인 박 사장도, 모두 찔리고, 죽는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최근 몇 년간 나오던 가난에 대한 여러 사회학적 담론들을 최대한 단순화한 모델로 만든 이야기다. 심지어는 문광 부부와 기우네 가족이 서로 대립하던 시퀀스에서조차도, 문광의 남편과 기우의 아버지는 저마다 박 사장을 칭송하고 존경한다고 말한다. 소위 “그렇게 좋은 분이 없다”는 것이다. 기우의 아버지는 계획은 세우면 틀어지게 되어 있으니 무계획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뭔가 의지를 관철하는 것이 아닌, 상황에 맞춰 돌아가는 대로 움직이는 게 제일 좋다는 생각이다.

대신 이들은 ‘힘 있는 사람’을 믿는다. 세상을 향해 제 의지를 관철하는 다른 인물을 일찍이 접한 적이 없으므로, 이들이 믿고 따르는 ‘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일하는 업체의 사장이다. “우리 사장님은 그래도 착한 분”이라는 말을 취재과정에서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런 그가, 설령 무계획이었을지언정 처음으로 의지를 관철하는 순간이 바로 클라이막스 부분, 소위 “죽창” 부분이라고 내가 요약하는 그 부분이다. 그는 비록 이후 자신의 행동들을 후회하고 박 사장에게 미안해 하지만, 그는 박 사장이 칼에 찔려 중상을 입은 자신의 딸 기정은 안중에도 없이 그저 놀라서 경기하는 박 사장의 아들을 병원 응급실에 데려갈 생각만 하고, 죽어 나동그라진 문광의 남편을 밀쳐내고 차 열쇠를 주워들면서 한 순간 그 냄새에 얼굴을 찌푸리는 것을 보며 그야말로 “꿈틀”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그것은 가진 자를 기요틴에 세워 목숨을 빼앗고 혁명을 일으킨 자의 자손이 그 부를 물려받는, 그런 혁명과는 거리가 멀다. 가난은 여전히 파편화되어 있고, 무능한 아버지는 다시 땅 속에 숨어 살지언정 여전히 선량하며, 아들은 꿈을 꾸고 계획을 세운다지만 현실에서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 언젠가 그 저택을 사들이고 아버지를 꺼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이야기는 그래서 서글프다.

봉준호 감독은 최근 몇년 간 인터넷에서 가난이나 계층 문제에 대해 수백수천명의 인터넷 논객들과 몇몇 전문가들이 떠들던 담론들을 버무리며 출발한 이 이야기를 (특히 제 1세계 사람들이 보기 좋게 가공한 것을 포함해서) 잘 풀어냈기 때문에, 나는 이 이야기가 가난을 아주 포르노처럼 전시한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우네 가족처럼 반지하에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자기보다 잘나고 부유한 사람들 사이에서 어깨를 움츠리게 되는 상황에서 애써 자신의 상황을 나은 척 포장해서 자기보다 처지가 나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도 비슷한 입장인 듯 친근하게 다가서려 하는 행동을 해봤던 사람이라면 아마도 어떤 부분에서든 조금은 공감할 테니까. (특히 박 사장 댁에서 보이는 기우의 애써 싹싹한 태도나 기정의 무심시크해 보이는 행동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기가 자란 환경보다 훨씬 부유한 집에서 과외 선생을 해 본 사람이라면 납득할 만한 연기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것이 세계에 먹혔으니까, 하면서 깜냥 안되는 이들이 가난을 포르노처럼 진열하는 이야기들을 한동안 잔뜩 만들 거라는 데는 내일 먹을 점심밥을 걸 수 있겠다. 특히 가난해 본 적 없는 이들이 가난을 무슨 시크한 이미지로 생각하는지,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가 아니라 위생을 걱정해야 하는 레벨의 환경에서 재활용 통에서 수거한 것 같은 스팸 캔을 그릇삼아 내놓는 가게들이 성업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어설프고 같잖은 물건들이 나올지 생각하니 벌써부터 괴롭고 역겹다. 으윽.

PS1) 초반에 기우와 기정의 어머니인 충숙이 딴 메달이 잠깐 나온다. (배구인 줄 알았는데 투포환이라고 다른 분이 정정해 주셨다) 충숙이 이 집의 실질적인 실권자이며 무력이 가장 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지만, 솔직히 나는 그보다는 (아무리 비인기 종목이라도) 한때 스포츠 종목으로 전국제패를 했을 정도의 여성이 취업난과 가난에 시달리며 피자 박스를 접고 있는 것에 먼저 눈이 갔고, 사건 전반과는 상관없이 “그 많았던 두각을 나타내던 여자들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생각을 하며 마음이 아팠으며, 잠시 후 기우, 기정의 나이를 따져보며 의외로 충숙의 설정상 나이가 나와 그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PS2) 비 오던 밤 문광의 모습이 인터폰에 비치던 장면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였다. 갑자기 영화의 장르를 확 바꿔버리는 순간이었다. 이 영화의 주역 서열을 매기면 1위는 저택, 그 자체,  그 다음은 문광(이정은 분)이며 송강호 배우가 연기한 기우 기정의 아버지는 서열 3위라고 할 수 있다(…..)

PS3) 사이버펑크 대한민국에서 가난은 쌀독에 쌀이 떨어지는 것으로 표현되는 대신,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아 음지의 식물처럼 높이 팔을 뻗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PS4) 키스 및 애무 씬들은 없어도 상관없는데 굳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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