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님을 알게 된 것은 뜻밖에도 한의원에서였다. 그때 나는 첫 아이를 낳고서 만성적인 두통에다 오른손 새끼손가락과 약지에 감각도 없고, 여기도 저기도 아파서 병원 순례를 하고 있었는데, 트친님의 권유로 이유명호 한의원에 갔었다. 그때 이유명호 선생님께서 침을 놓아주시다가 내게 김현진 작가의 이야기를 하셨고, 트위터를 하시길래 팔로우했다. 아마 그 일이 없었더라도 공통된 트친이 많으니 머지 않아 맞팔을 했겠지만, 일단 시작은 그랬다.
그리고 약 4년이 지난 지금은, 그분이 사순절을 맞아 고행이라도 하시듯(…..)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공식 속편으로 알렉산드라 리플리가 썼던 망작 “스칼렛”의 요약을 올리시는 것을 폭소와 실소를 담아 보고 있다. 아니, 우리의 레트 버틀러는 그런 엔젤 클레어 같은 놈팽이가 아니고요, 스칼렛의 출산 장면은 대체 왜 맥베스를 잘못 끼얹은 꼴이 되어버린 겁니까. 뭐 그런.
여튼 이 책 자체는 전자책으로 나온 김에 읽게 되었다. 현진 님은 “세상 그 어떤 흉사든 나 혼자 겪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멘토라는 사람들은 얼마나 뻔한 이야기만 하는지.”라고 투덜거리며 라종일 님께 질문을 한다. 질문이라고 하지만 사실 현진 님의 편지에는 거의 찾는 답에 근접한 것들이 들어 있었고, 라종일 님의 따뜻하고 품위있는 편지에는 젊은 사람이 스스로 답을 찾아낼 수 있도록 이끄는 능숙한 멘토링이 담겨 있다. 조금 고루하게 예의를 차리는 듯한 말투야말로 입말이 아닌 편지의 글말이 주는 매력이 있는 한편, 이런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아슬아슬한 일인가를 생각한다. 모두에게 허락되는 행운은 아닌 것이다. 젊은 여성과 나이가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 사이에서 단정한 우정이 계속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특히 이 나라처럼, 유치원에 들어간 아이들끼리도 태어난 생일 순으로 서로 누가 먼저고 누가 나중인지를 묻고 있는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위태로워 보이지만, 김현진 작가님에게 그 기적이 계속 유지되는 행운이 있기를 바라게 된다.
김현진 님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결국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경우를, 나의 관계를 생각했다.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는 것을, 질문을 하는 것을. 그 모든 것은, 그걸 들어 줄 수 있는 어른이 존재할 때 가능한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김현진 님도 나도, 운이 좋았다. 내가 밟을 뻔 했던 지뢰들과, 이미 밟았지만 적어도 덜 다치게 조심조심 피해 나올 수 있었던 지뢰들을 생각한다. 일단 밟아 놓고 “어, 어떡하죠.”하고 덜덜 떨다가 조심스럽게, 메신저 너머로 말을 걸던 순간들을. 내가 했던 어리석고 치기어린 말들과, 처음 들었을 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몇 년 지난 뒤 분명히 알 수 있었던 말들을. 그리고 지금, 내가 나보다 20년 어린 사람에게 그와 같이 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그 모든 것들을.
포지션이 바뀔 때 마다 그 거리를 다시 재곤 한다. 계속 동경할 수만은 없다는 것과, 같이 가려면 뒤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나란히 걸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곁에 있으려면 답습이 아니라 내 길을 밟아서 가야 한다. 그런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멘토와 주고받은 서른 두 통의 편지를 읽으면서, 결국은 자신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