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아마도 이 책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내 주변에. 우울증이나 조울증, 공황장애, 그 밖의 다른 것들을 앓고 있는 이들이. 자신의 고통에 집중하다가, 이제 가족 중에 정신과에 정기적으로 다니는 사람이 있는 사람의 심정, 그러니까 자기 가족의 심경에 대해 한번 알아보고 싶어서 이 책을 읽으려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방향의 이슈를 갖고 있는 내 지인들이 이 책을 읽지 않길 바란다. (정신병에 걸린 가족을 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바로 내가, 그런 것을 이해하려고 읽으려 했고, 최악의 경우라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나오는 애정어린 투병기 같은 것이겠거니 하고 읽었다가 고통스럽게 읽기를 중단했다.
세 가지 면에서 고통스러운데, 일단 한번 아파 본 사람이 그 아픔을, 굳이 타인의 경험을 의료인이 아닌 주변인이 바라본 과정을 서술한 내용을 통해 복기할 필요는 없다. 또 하나는 우리가, 가족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경험, 당장 내가 고통스럽고 케어가 필요한 상황인데, 그저 놀라고, 당황하고, 주의깊지 못한 말로 추가적인 고통을 주거나, 환자의 가족이 되어서 스스로 비탄에 빠지는 가족의 모습을 바라보는 경험을 또다시, 남의 경험을 통해 복기할 필요가 없다. 마지막으로 의료진의 부주의를 다시 경험할 필요도 없다. 아마도 이 책은, 갑자기 자기 가족이 정신질환을 호소할 때 당황한 가족들이 읽어보면 무척 도움이 될 거다. 하지만 그 당사자인 사람이 읽기에는 정말 괴로운 책이어서,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이 고통에 다시 빠질 이유는 없을 거라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그리고 이 저자는, 아내를 사랑할 지는 몰라도 아내를 이해하거나, 혹은 의학적인 조치에 대해 명확하게 따르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집에 갓난아기가 있고, 아내는 정신병이 제발했는데,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에게 아내는 아기를 해칠 사람이 아니고 자기에겐 아내가 필요하니 제발 데려가지 말라는 소리를 할 때에는 화가 나서 폰을 집어던질 뻔 했다. 아주 자기연민에 푹 빠져서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시는구만.) 너무 자신의 슬픔과 비탄에 짓눌려 있어서, 솔직히 말해 환자의 가족에게도 도움이 될 책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의 실수와 실패에 대한 경험에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상황판단이 되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곘으나, 그런 사람에게 이 책이 필요할까. 이건 그냥, 리더스 다이제스트 풍 애정어린 투병기 한 컵에 병을 앓는 당사자도 아닌 그걸 지켜보는 자신에 대한 고통과 연민을 한 바가지 쯤 부어넣은 맛이고, 실제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당사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건 그다지 나와 있지 않은데다, 당사자가 타자화 되어 있어서, 여러 모로 대체 누가 읽어야 도움이 될 지 애매하기만 한 책이다. 아마도 “내 이야기처럼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말한 이 책의 지난 독자들은, 자신이 정신적인 문제를 겪지 않았거나 가족이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없을 것 같다. 감동과 눈물의 실화 러브스토리에서 감정의 정화를 느끼고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싶은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웬만하면 내 주변의 예민한 사람들이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댓글
“사랑하는 아내가 정신병원에 갔다 – 마크 루카치, 정여진, 걷는나무”에 대한 2개의 응답
전 이 책을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제 직업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고, 해망재 님께서 폰을 집어던질 뻔한 순간을 거의 매일 보고 있거든요^^
정신질환으로 인하여 명백한 자타해의 위험이 높은데 아내가, 남편이, 아들이, 딸이, 엄마가, 아빠가… 필요하다고
그럴 사람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거의 매일 보고 있습니다.
처음 정신과를 시작했던 전공의 시절에는 그런 보호자와 엄청나게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7년 정도 이 일을 하니까 그 가족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기 가족의 일이 아니고 제삼자의 입장이었다면 그 사람들도 다른 판단과 결정을 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자신에게 닥친 일이고 자기 가족의 일이라서, 시야가 좁아지고,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현실 부정을 하게 됩니다.
결국 아주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인 결정을 해서 진료의 방향을 산으로 끌고 가게 되죠.
결국 그런 가족의 감정과 상태를 이해하고, 그것까지 헤아려주어야만 보호자의 비합리적인 판단을
최소화할 수 있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후배, 제자와 간호사 선생님에게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또 같은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있는 조현병 또는 양극성 정동장애 같은 주요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의
가족들에게도 권할 수 있을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음, 저는 심하든 경하든 어떤 문제든 병원에 다니거나 하는 친구들이 좀 있고, 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가족때문에 문제가 심해졌거나, 혹은 병원에 다닌다고 했을 때 가족들이 치료를 막는 경우도 있었다보니, 이미 한 번 겪은 고통인데 이걸 읽으면서 두 번 고통받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어요.
하지만 말씀을 들어보니, 환자 가족들을 대하시는 입장에서는, 분명히 필요할 책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분명히 그 비합리적인 판단에 대해, 의사 선생님들이나 간호사 선생님들은 직접 맞닥뜨리고 설득하셔야 할 테니까요. 🙂
(하지만 여전히, 가족이 정신과에 가는 것을 마치 당신들의 실패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이걸 읽고 뭔가 더 나은 판단을 할지, 아니면 자기연민에 빠질지는 좀 회의적이에요. 환자 가족들이 이걸 읽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