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쨍한 형광연두색 세네카를 들여다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20년동안 창작노동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만큼의 시간이 쌓이면 사람의 내면은 어떻게 단단해질까. 그 이상은 또 어떨까? 서른이 되면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마흔이 넘으면 어떨까? 언젠가 데뷔 20년을 넘게 되면 또 어떻게 달라질까?
이제 12년을 겨우 찍은 나는 가끔, 그런 것을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고 묻지 않는다. 안다고 해도 예측할 수 없다. 어차피 사람은 누군가를 따라갈 수 없다. 엇비슷하게 흉내내고 싶어도 살아간 시대가 다르고 재능의 크기다 다르고 주어진 조건이 다르다. 같은 일을 해도 불과 몇 년 차이로 계약조건들이 달라진다. 그 많은 변수들의 움직임에 따라 좌표는 계속 바뀌어갈 테니, 어차피 다른 사람의 지도를 따라서 그대로 밟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인생이 다 그러하지만, 뭔가를 만들어내는 창작자의 커리어도, 그 결과물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기록을 읽는 것은, 그 사람이 밟았던 지뢰와 밟을 뻔 했던 함정들을 조금이나마 더 피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지. 흐릿한 중간중간 이정표는 있겠지만 과정은 계속 새 루트를 찾는 것. 사실 여기에는 남을 따라하고 자시고가 끼어들 틈이 없어.
이 책은 트위터에서, 나오기 전부터 이런 게 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1월 초에 읽기 시작했고, 주방에 두고 오며가며 한 꼭지씩 읽었다. 꼭 독립출판물같은 외형과 달리, 제대로 편집과 조판이 이루어진 책이다. 눈에 편한 폰트, 그러면서도 휑하지 않고 빼곡한 내용. 만족스럽다. 그리고 “반백수 생활”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프리랜서의 삶에 필요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게 좋다. 여성이 독립해서 살아가는 것(특히 비혼여성이 살아가는 어떤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뭐, 유쾌하게 읽었다. 이 책을 읽히고 싶은 사람이 몇 명 정도 더 생각이 나기도 했다. 가끔 이런 게 필요하다. 결국 지도를 그리는 것도 답을 찾는 것도 자기 자신이겠지만. 몇 년정도 뒤에 승진할 기회가 올 것이고 몇 년 뒤에는 아마도 은퇴하게 될 거라는 구체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회사에서의 일과 달리, 이쪽 일은 몇 년 뒤의 자신을 그려보기가 무척 까다롭다. 그럴 때 그저 읽고 던져버릴지언정, 남의 지도를 흘끔 쳐다보고 싶은 순간이 있다. SNS에서, 특히 트위터에서, 작가들이 잔뜩 서로서로 팔로잉을 하고 이 신새벽에 마감을 치고 있는 게 나만이 아니라고, 그 새벽반의 타임라인을 들여다보듯이.
생각해보면 참 웃기는 일이다. 누구보다도 독고다이하고 살고 싶은 이들이, 살아남으려면 나름의 영업력과 자기 행정업무를 스스로 처리할 능력을 갖춰야 하고, 그러면서도 느슨하게 엮인 커뮤니티를 찾아 SNS의 새벽반을 들여다보고 산다는 것이.
그런데 또 견뎌나가려면 그런 것이, 필요하지. 어느 순간에 분명히. 데미안에서 에바 부인이 싱클레어에게 했던 이야기처럼. 이 책은 그런 타임라인을 들여다보는 마음의 연장으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