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에 집을 샀다. 서로 이사 시기가 맞지 않아 계약은 1월에 마치고, 2월에 이삿짐을 빼고, 그리고 어차피 서로 시기가 맞지 않는 거, 그 동안 에어비앤비에서 구한 집에서 지내며 2주동안 집 수리를 했다. 나는 무엇을 고쳐야 할 지 정확히 잘 몰랐고, 기본적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들(도배, 틀어진 문, 중문, 침실 창문 샷시 등)에도 돈이 꽤나 들어갔다. 정확히는, 이 기본적으로 고쳐야 한다고 단지 내 인테리어 업체에서 주장하는 목록 중에 내가 보기에도 반드시 고쳐야 할 것 같은 부분만 챙겨도 예상보다 비용이 좀 나왔다.
예전에 두번째 직장에서 선임이 1억 2천짜리 아파트를 샀는데 수리비가 3천이 나왔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수리비가 학생원룸 전세보다 비싼 것에 깜짝 놀랐었다. 다행히도 나는, 집값의 1/4를 수리비에 때려넣진 않았다. 그리고 우리 집 수리비는, 메인에서 분배기로 넘어가는 관을 바꿨음에도 3천만큼 나오진 않았다. 아마 선임이 샀던 집은 내가 산 집 보다 더 낡은 집이었을지도.
어쨌든 이 집은 내가 산 첫 번째 집이 아니었지만, 내가 도배와 장판 외의 사유로 집을 뜯어고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고친 뒤에야 알았다. 왜 고쳐놓고 봐야 뭐가 문제인지 안다고 하는지를. 다행히도 인테리어 사장님이 양심적인 분이셔서 내가 살면서 고쳐나갈 수 있는 부분과 이사 전에 손을 볼 부분을 구분해 주신 게 도움이 되었다. 살면서 부분수리를 할 수도 있고, 다음 번에 이사를 할 때 반영할 수도 있겠지. 그런 것들은.
어쨌든….. 그렇게 이사를 하고 아직 1년이 되지 않았고, 임신기간 중에 많이 아팠고, 애낳고 돌아와서는 집정리를 못했고, 이제야 정리를 하면서 저걸 여기다 하지 말고 여기다 할 걸, 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고. 첫째가 물감을 처바르는 걸 보고 기겁을 하다가 아, 지금 셋집이 아니라 우리집이지. 이왕 그러는 거 저기 베란다에 칠판페인트를 발라서 낙서하고 놀게 해줄까, 그런 생각도 하고 있다. 다른 작가님들 작업실에 놀러갔다가 아, 다음 번에는 내 서재를 저렇게 만들고 싶은데, 하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어제 이 책을 읽었다. 수납에 대한 게 아니고, 기본 인테리어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갖고있는 짐에 맞추어 리모델링을 한 경우라 우리와는 경우가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다른 인테리어 책들과 달리 읽을 만 했다.
저자가 집에 책과 다구와 술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건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네이버에서 20-30평대 아파트 책 많은 집 인테리어라고 백날 입력해 봐라. 아기들 책 말고는 책이 50권도 안 보이는 집밖에 안 나온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편집자 출신이고 글을 쓰고 사업을 하는 사람이다. 책이 많다. 차를 좋아해서 다구도 많다. 이런 저자라면 설령 돈이 많이 들어가는 대규모의 리모델링을 한 경험담이라고 해도 참고가 된다. 적어도 책을 어떻게 놓았는지는 알 수 있으니까.
일단 지금은 집에 유아가 둘이니, 지옥의 알집매트 인테리어(……) 밖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안다. 집의 2/3은 책으로 가득 차 있고 나머지 1/3은 알집매트와 뽀로로가 지배하시니 내가 내 집을 쳐다봐도 답이 없다. 하지만 십 년쯤 뒤에는, 나도 나의 취향에 맞는-하지만 아직은 둘 곳을 찾지 못한- 것들로 주변을 채우고 일하기 좋게 책상을 정리하고, 그렇게 작업공간을 확보하고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혼자가 아니니까, 그 꿈을 이루는 날이 좀 더 멀어질 수도 있겠지만.
PS) 저자가 정말 좋은 전문가를 만나셨다고 생각한 대목.
그는 차분히 집을 둘러보더니 안절부절못하는 내게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책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네요. 앞으로 책을 다 넣으시고 새 책을 더 사셔도 문제없겠어요!” 그 순간 나는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고 바로 우리 집 리모델링을 그에게 맡겨도 되겠다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