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배틀 로얄”에서 청소년들 사이에 불신감과 공포를 심어 시위도 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을 랜덤으로 한반씩 뽑아 죽고 죽이게 만들듯이, 이 소설은 저출산 고령화 시대를 맞이하여 마치 일단 70세가 되면 사망시키는 것으로 고령화를 막고 노인복지에 쏟아부어야 하는 예산을 줄이겠다는 과격한 법률을 만들어 통과시키며 시작한다.
평생을 시어머니 수발을 하다가 이제 2년만 있으면 해방된다는 기쁨과 함께, 자신 역시도 해방된 뒤에도 살 날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도요코에게는 명문대를 졸업한 히키코모리로, 밥 한번 제 손으로 퍼 먹지 않는 아들과, 어머니의 수발을 온통 자신에게 맡겨둔 채 주말에는 놀러나가는 남편, 그리고 며느리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며 심술부리는 시어머니가 있다. 일찍 취업하여 독립한 딸이 있지만, 할머니 수발이 힘드니 돌아와서 도와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시어머니는 재산 분할을 하겠다며 딸들을 불러들여놓고, 정작 자신을 개호한 도요코는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런 나날을 보내던 중 도요코는, 남편이 70세 사망법안으로 이제 살 날이 20년도 안 남았으니 조기 퇴직하겠다고 하자, 함께 시어머니를 수발하게 될 줄 알고 기뻐했으나, 남편이 친구와 함께 세계일주 여행을 떠날 것이라는 말을 듣고 가출한다.
그나저나 이 집 아들이 가관이다. 70세 사망법이 통과되었는데 엄마가 70세가 되려면 몇 년 남았는지 계산해 보며 밥 먹을 궁리나 하고 있으니. 이 나라나 저 나라나 남자에게 밥이란 무엇인가.
엄마가 살아 있는 한 나는 먹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밥도 지금까지 하던 대로 가져다 줄 테고 엄마가 죽을 때는 저금도 남겨 줄 것이다.
읽으며 정말 지긋지긋할정도로, 한국이나 일본이나 남자들 왜 이 모양인가 생각했다. 어쨌든 이 아들은 엄마가 사라지자, 직장에서 일하는 누나에게 전화를 건다. 정작 누나는 엄마가 가출했다는 말에 할머니에게 지친 엄마를 돌보지 못한 자신을 후회하는데, 남동생은 자기는 하루종일 집에 있는 백수면서, 일하는 누나를 굳이 소환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한다.
아버지는 돌아와봐야 소용없잖아. 어차피 할 줄 아는 게 전혀 없는데. 게다가 아버지가 돌아오면 누나 부담만 더 커진다고. (중략) 어째서는. 할머니 수발도 들어야 하는데 아버지 식사까지 준비해야 하고, 빨래도 늘고. 아, 물론 나야 간단히 먹으면 되니까.
이 나라나 저 나라나 젊은 남자들을 죄 다 잘못 가르쳤다니까. (한숨) 일단 저기 나오는 저런 남자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쓸모가 있는지 의문이다. 어차피 남은 여생이 법률로 정해졌으니 2년을 조기 은퇴하고 늙으신 어머니는 아내에게 맡겨두고 멋대로 세계일주를 가려고 드는 남편은 그러느니 법안의 불합리함을 주장하며 국회 앞에 가서 시위라도 할 것이지. 젊어 히키코모리 노릇을 할 거면 밥 정도는 자기 손으로 해결할 것이고.
꽤나 의미심장한 문제를 제기하고, 이런 재난 상황에서 영 쓸모가 없는 남자들을 실컷 보여주던 이 이야기는, 결국 노인들이 돈을 기부하거나 자원봉사를 하는 등 자신이 쓸모있는 사람임을 증명하면 70세에 죽지 않아도 된다는 헛소문과 함께 약간 갈등이 고조되다가, 결국 1년 뒤 노인들의 기부금으로 재원이 모이고, 또 노인들의 자원봉사 등으로 인력난이 해결되며, 돌봄노동 필요성이 줄어드는 등 말도 안 되는(그렇다. 작가가 조금만이라도 공부를 더 했으면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알았을 텐데.) 전개와 함께, “그리하여 그 법안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습니다”(법치국가에서 이런 식의 전개가 가능한거냐. 영국을 봐. 브렉시트가 그 난리가 나도 쉽게 롤백이 안 되는 걸 보라고!) 같은 전개와 함께 일본 드라마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저 망할 휴먼드라마가 되어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끝나버렸다. 사회에 대한 사고실험이자 나쁘지 않은 SF가 될뻔 했던 소설이, 그냥 가족간에 화해하고 용서하는 휴먼 가족 소설이 되어버리다니. 이런 건 정말 용서도 안 된다. 대체 왜? 일단 거기서 그 다음으로 전개를 시켜서 파국을 내 보든가 시위를 일으키든가 할 것이지, 무슨 “여기까지 몰래카메라였습니다”도 아니고. 그냥 작가가 성실하게 세계를 구축하지 않아서, 생각을 깊게 하지 않아서, 자기가 벌여놓은 이야기를 수습을 못 한 거잖아. 망한거지, 그럼. 사고실험 생각하고 보면 아주 망하고 그냥 일본 가족 휴머니즘 소설 정도 생각하고 보면 그것도 그다지고……. 엄마가 없는 재난 속에서 일본남자가 어떻게 못나게 구는지 보는 재미는 있다. 딱 그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