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류승경 편역, 수오서재

보통은 그림을 먼저 보고 그 화가에 대해 찾아보게 되는데, 그랜마 모지스의 경우는 반대였다. 고등학교 때, 금성출판사 영어교과서를 썼는데 그때 처음 읽었다. 그랜마 모지스에 대해. 처음에는 Moses라는 이름이 성경의 모세에서 온 이름인 건 알겠는데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하나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영어교과서의 해당 부분을 배우고 나서, 나중에 그림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일단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그랜마 모지스의 화집 자체가 없었다. 간혹 미국의 풍속에 대한 책 같은 데서 띄엄띄엄 발견하게 될 뿐이었고, 내가 그랜마 모지스의 그림을 제대로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은 한참 뒤, 인터넷을 통해서였다. 알록달록 하지만 취향은 아닌, 포근한 느낌은 있지만 잘 그린 것 같진 않은, 약간은 이발소 그림같은 그런 그림들. 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담은 그림. 20세기에 그려진 “민화”. “민중미술”이 아닌 “민화”.

실은 주말내내 무척 바빴다. 금요일에는 재담 송년회에, 어제는 과학소설작가연대 1주년 총회에. 그런 곳에 다니면서, 문득문득 자신의 위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10년이 넘게 글을 썼고, 그 총량을 따져보면 양적으로 어디 가서 밀릴 정도도 아니고, 또 개중에 한두 개는 판매량 면에서 나쁘지 않았고, 어떤 것은 나름대로 꽤 괜찮은 평을 듣기도 했지만, 이게 각각의 장르별 모임으로 가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는 거다. 걸친 게 많다보니, 어떤 장르에서도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많이 부족하다. 만화가로서도, SF 작가로서도, 스릴러로도, 필명으로 낸 것들 쪽도 마찬가지고. 그런 것에 대해 또 고민을 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책 자체는 출산 전에 샀다가 미처 읽지 못하고 조리원에 들어가는 바람에 한참 읽는 것을 미뤄 두었다. 오늘 읽으며 문득, 마치 소설 “초원의 집”을 연상하게 하는 시절들을 보내고, 나이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유화를, 그리고 털실그림을 시작하여 잡화점에서 조금씩 팔거나 했다가, 미국의 국민작가가 된 이 모지스 할머니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박완서 님에 대해서도. 여튼 나는 아직 마흔이 되지 않았고, 이제 겨우 반환점까지 왔을 뿐이지.

그건 그렇고. 편역하신 류승경님의 후기 쪽에 눈이 갔는데.

대중적인 인기가 높아 갈 수록 미국 화단과 평단에서는 그녀를 외면했습니다. 유명해지기 전에는 호의적이었던 평론가들도 작품의 상업화에 거부감을 드러내며 등을 돌렸지요. 모지스 할머니의 작품이 미국을 대표하는 미술로 홍보된 탓에 화단이 내세운 추상표현주의가 뒤로 밀려났다는 불만도 컸습니다. 결국 그녀의 작품은 미국 대다수의 일류 미술관에서 전시되지 못한 채 B급으로 분류되었습니다. 동시대 미술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민속미술이 부흥한 1970년대에 이르러서 재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칭찬하고, 어쩌면 원석을 “발굴”한 기분에까지 취해 있다가, 그게 의외로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자 갑자기 엄근진하게 돌아서며 아카데믹하지 못하고 비전문가이고 이 바닥에 퇴보를 불러일으키고 어쩌고 저쩌고. 어쩌면 이렇게까지 인간들 하는 짓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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