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같이 프리랜서

둘이 같이 프리랜서 – 윤이나, 황효진, 헤이메이트

며칠 쉬면서 병이 도졌다. 회사 때려치우고 전업작가가 되고싶다 병.

물론 택도없는 소리다. 나에게는 대출이 있고 딸린 자식도 둘로 늘었다. 회사생활 열심히 하는 배우자가 있으며, 글 써서 벌어들이는 연 소득만 보면 나쁘진 않지만 나의 예민하기 짝이 없는 정신건강을 그나마 이 정도 선으로 유지하는 데는 여전히 매달 입금되는 일정한 액수의 현찰이 필요하다. (……)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지만 특별히 치명적일 정도의 상사를 만나지 않는 이상 월급이란 대체로 받는 자체로 약값(…..)을 어느정도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열심히도 읽곤 했다. 프리랜서로 생존하는 법, 세금 처리하는 법, 1인 사업자에 대한 책들…… 딱 내게 맞는 것을 찾진 못했고, 이제 슬슬 회사를 때려치우는 꿈은 포기하고 지금처럼 적으나마 일이 끊어지진 않게 꾸준히 일감을 받아서 글을 쓰면 대체로 성공적인 게 아닐까 정도까지는 스스로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건만, 그래도 여전히 읽고 있다. 프리랜서 고생하는 이야기를. (……) 하긴, 그렇지. 자기계발서라는 걸 읽고 자기 자신을 계발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대리만족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납득이 간다. 텀블벅에서 펀딩을 하고 기다려서 손바닥만한 책을 받아서 읽고 있는 이 모든 과정이.

책을 받았더니 스티커가 들어 있다. “내 나이 [  ]세, 이젠 오직 돈 생각뿐이다”라는 근사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내 명함에 찍혀 있는 “성실한 입금 확실한 원고”못지 않은 멋진 말인데. 새해 다이어리 속표지에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목차에서 “5월은 푸르구나 종소세를 신고하자”라는 제목을 발견하고 반가웠고, 여기라고 딱히 신고방법 및 절세와 탈세(……하면 안됩니다) 방법이 나와있진 않아서 좌절했다. 아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신고 및 절세…… 가급적 세금을 토해내진 않는 노하우 같은 것입니다, 선생님. 개인적으로는 중간에 일의 모드를 변경하는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리고 트위터에도 인용한 분들이 여러 분 보였는데, 이 대목이 좋았다.

여성 프리랜서로서의 원칙 중 하나는, 페이가 합리적인 수준의 일이라면 내가 하지 못하게 됐을 경우 다른 여성을 추천한다는 것이다. 모든 자리에 여성은 언제나 부족하고, 나는 성실한데다 유능하기까지 한 여성들을 많이 알고 있으니까.

맞아맞아. 이거지. 이 책에서 처음 발견한 이야기는 아니다. 나도 내가 아프거나 바쁠 때 일거리가 들어오면 가급적 여성작가를 그 자리에 추천하곤 했고, 같은 방식으로 다른 여성작가에게 추천받아서 계약한 일거리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일하는 여자들이 서로서로 조용히 해 나가던 방식이라고 해도 구체적인 문장이 되어 활자로 박히면, 좀 더 묵직한 경구가 된다. 나는 이 말이, 이 대목이, 프리랜서로서 글을 쓰거나 기획을 하는 여성들이 서로를 좀 더 적극적으로 밀고 끌어줄 수 있는 힘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모든 자리에 남성은 이미 부족하지 않을 만큼 있고, 그 자리에 더 어울리는 여성이 있음에도 남성이 선택되는 경우도 종종 보이니까, 일단 누군가를 추천할수 있는 상황이라면 좀 더 서로서로 힘을 싣고 싶다. 그랬으면 좋겠다. 계속 그럴 수 있고, 가능하면 선택할 수 있는 자리까지 더 많은 여성들이 올라갈 수 있었으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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