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아워

골든아워 – 이국종, 흐름출판

골든 아워
골든 아워

이 책의 도입부에 의하면, 이 기록은 이국종 교수의,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헌신의 기록이자, 중증외상센터를 설립하고 운영해나가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불합리와 시스템 부재, 부조리에 대한 기록이며, (이국종 교수가 처음 외상외과를 만들려고 했을 때 참고했던, 교포 출신 의사가 한국에서 3년동안 외상외과를 만들려다가 떠났던 진료기록처럼) 언젠가 다른 누군가가 중증외상센터 시스템을 다시 만들어보고자 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자료로서의 비망록을 정리한 것, 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진은 실명으로 표기하고, 책 말미에 중증외상센터를 함께 만들어갔던 사람들에 대해 따로 기록해 둔 것을 보아도, 이것이 흥밋거리를 위해 만들어진 책이 아니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건조한 기록과는 또 거리가 멀다. 기본적인 서술이나 문체는 건조하되, 읽고 있으면 사방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국종 교수는 자신이 성자가 아님을 강조하기라도 하는 듯, 자신은 월급쟁이라고 강조하고, 몇몇 대목에서 꽤나 위악적인 태도로 글을 쓰기도 한다. 시간순으로 비망록을 정리한 듯 보이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비슷비슷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반복되어 나타나는 이야기들은 고통스럽고 적나라하다. 아무리 선진국에서 배워 온 모델을 타협없이 도입하려 해도, 한국적 모델들이 발목을 잡는다. 필수적인 치료와 검사를 해도 심평원의 기준으로는 초과 사용으로 삭감되는 것이 너무나 많다. 기본이 갖추어져 있지 않고, 헬리콥터 소음에 대한 민원이 계속 들어오며, 근무복도 탕비실에 차나 간식을 넉넉히 사 둘 비용도 부족하다. 하다못해 데이터 백업 장비도 부족하여 소중한 데이터가 유실되기도 한다. 환자는 쏟아져 들어오는데, 사람 충원도 안 해주면서 시간외 근무를 많이 하면 노동부에서 질책을 받는다는 말을 듣는다.

석해균 선장을 구하러 아덴만에 가야 하는데, 국내에는 에어 앰뷸런스가 있는지도 알 수 없고, 그를 데리고 돌아오기 위해 에어 앰뷸런스를 수소문하지만 그 일을 책임지려는 사람은 없다. 세월호 사고가 났을 때 출동하지만, 사고 해역 근처에는 보이지 않던, 대한민국 소방항공대 전력의 절반에 가까운 수의 헬리콥터들이 항구 옆 나대지에 도열해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도 의전이며 보고며 행정적 절차가 우선이다.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제작진에게 골든타임과 골든아워는 다르다고 설명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같이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과로로 일상은 물론 건강까지 무너지거나 결국 떠난다. 그러니 이국종 교수는 중증외상 분야에 투신하려는 이들을 말린다.

새 구두를 신고 새 길에 접어드는 그들을 진창으로 잡아끌고 싶지 않았다. 삶의 보편성으로부터 먼 일상과 상식 밖의 시선까지 버텨야 하는 진흙탕에 뒹구는 것은 나 하나로 족했다.

외상외과에서 죽어가는 이들 중 전 국민의 주목을 받는 이들은 극소수다. 대부분은 위험한 고강도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다. 읽으면서 중증외상이 전체 사망의 10%에 육박하며, 국민이 사망하는 3대 사망 원인 중 하나라는 것에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현실은, 수술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길에서 죽는 환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겨우 중증외상센터들이 만들어지지만 알력다툼이 벌어진다. 그를 비난하는 한편으로 위험한 환자가 들어오면 아주대병원으로 보내버리는 병원도 있다. 이 책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려고 하지만 더욱 한계까지 몰려가는 사람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행간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온다. 종종, 조직에 적자만을 안겨주는 부서의 부서장인 현실에 대한 괴로움도 함께.

가냘픈 노동자의 목숨이 비루한 내 인생에 힘겹게 기대고 있었다. 그의 목숨을 붙들고 있는 인공호흡기와 인공신장기를 보며, 그것들이 요구하는 ‘돈’을 생각했다. (중략) 가난한 그들이 치료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병원비를 지불하지 못하면, 그것은 가난한 내 부서로 적자가 되어 떨어져 내려왔다.

읽으면서, 아, 이 분야도 중증외상 이쪽으로 가는구나 하고 깜짝 놀란 부분이 있었다.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부분이었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담담하고 고통스러운 서술들이 이어진다. 형사는 다친 피해자가 직접 경찰서로 신고하러 와야 한다고 말한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가족이어서, 혹은 가해자에게 생계가 달려 있어서 처벌을 원하지 못한다. 여기까지는 알면서도 다시 읽으며 새삼 고통스러웠다면, 폭행 피해자의 치료비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가해자에게 구상권 청구를 하므로, 결국 피해자의 몫이 되어버린다는 것은 이번에 알았다.

가해자가 분명할 남자에게 수술 동의서를 받았다. 욕지기가 치솟았다. 남자는 여자의 생명에 지장이 있는지 반복적으로 물었다. 그의 불안이 환자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아니면 형사적 책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이 책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비명들은, 개인의 고통과는 또 다른 문제다. 한국사회 전반의 시스템 부재, 약자에 대한 무관용, 지식에 기반한 원칙이 아닌, 행정편의에 기반한 원칙주의 등, 지금의 한국은 이 고통들과 싸워 이길 조건들을 갖추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을 만들고 정착시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어떻게든 버텨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계속 다뤄지지만, 읽으면서도 계속 생각하게 된다. 개인들의 희생으로 돌아가는 일은 대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 가능할까. 이 시스템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정착시켜야 하는가.

바로 며칠 전, 어떻게 일할 것인가를 읽으며, 최근 벌어진 사건에 대해 페이스북에서 언급한, 수필가이자 의사인 남궁인씨의 글에 대해 짧게 언급했었다. 현장의 고통이란 한 끗만 잘못 다루어도 무척 선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책(양도 많은데다 두 권이다)에 대해서도, 바쁘다면서 책 쓸 시간은 있느냐거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시려냐고 저자에게 빈정거리거나, 혹은 최근 남궁인씨의 글을 언급하면서 비슷하게 선정적인 글로 매도하려는 경우도 있을 지 모르겠다 싶었다. 노골적이다. 강박적이다. 이 글을 쓰는 사람들과 여기 언급된 스태프들의 건강과 정신건강 모두가 걱정된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책은, 위기상황에서 한국의 조직이 어느정도의 탄력성을 갖고 움직이는지, 사람의 목숨에 대해 국가는 어느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는지, 그런 것에 대해 기대를 버리게 만든달까, 혹은 시스템의 재구축과 정비가 없이는 여기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경각심을 일깨운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과 나라의 시스템을 만들고 윤리관을 세우는 일이 서로 동떨어져있지 않다는 것에 대한 감각과 함께. 그렇다면 이 비명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갈려나가는 의료진들의 비명만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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