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0개월 전에 첫 아이를 낳고서 생각했다.
“얘가 클 때 까지 자살은 안되겠군. 그러니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울때는 약을 잘 챙겨먹자.”
그리고 며칠 전 둘째 아이를 낳고서 생각했다.
“얘가 클 때 까지 병으로 죽는 것도 곤란하겠군. 그러니…… 정말 지긋지긋하게 싫지만 이제 운동을 하자…… 아오.”
솔직히 말하면 운동을 안 한 것도 아니고 시도를 안 한 것도 아니고, 그냥 헬스장만 등록하면 돈만 내고 안 가니까 굳이 PT도 신청해서 다녀보고,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저것 했다. 격투기 종류는 신났지만 하다가 여기저기 다치고 특히 손목을 잘 다쳐서, 키보드를 두드려 먹고 사는 사람이 오래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었다. (게다가 운동하려 가면 술마시자는 아저씨들이 너무나 많았다) PT를 받으러 가서, 나는 아이를 안고 일을 하고 밤에 공부할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하다고 매번 얼굴 볼 때마다 말하는데도 살을 빼야 한다는 소리만 하면서 식단 잔소리나 하고 싶어하는 남성 트레이너들이 너무 많았다. (여성 트레이너 만났을 때만 내 이, 살기 위해 운동을 하러 왔다는 말이 겨우 받아들여졌다.) 그런데다 우리 회사 근처 남성트레이너들은 낮에 종종 자기가 일하는 헬스장 근처에서 전단을 돌리곤 했는데, 복부비만과 임산부를 구분을 못한 듯 내가 검정 수트에 임산부 뱃지를 달고 지나가는데 쫓아와서 복부비만에 운동이 좋다며 전단지를 쥐어주려다가 이 분홍색 뱃지도 안 보이는 그 시력으로 어떻게 트레이너를 하시느냐는 내 질문을 받게 되었는데 뭐 사실 복부비만과 임신 중후반기의 배는 모양이 다르므로, 그 트레이너들은 그다지 실력이 좋지 않았을 거라는 데 한우 3인분을 걸 수 있다. (……) 뭐, 여튼 운동을 안 하기에는 너무나 핑계가 좋지 않은가. 내가 살자고 운동을 하려는데 트레이너가 방해를 해요! 라든가 말이다.
조리원에서 이 책을 다시 읽고 있다. 사기는 지난 봄에 샀다. 운동을 해 나가는 구체적인 방법이 담겨 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좋은 점이 따로 있다. 이 책은 일하는 여성, 회사에 다니고, 아이를 키우는 여성, 40대 여성, 그리고 지식노동자가 쓴 책이라는 것. 운동하는 여성에 대한 책이야 많았지만 “몸짱 아줌마”라든가, 일하는 여성에게는 비현실적일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여, 아줌마이지만 20대처럼 아름다운 몸매를 만드는 것을 강조하고, 표지부터 헐벗고 나온 책, 을 보고 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걸 보고 효과를 얻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쪽은 다이어트는 고사하고 생존을 위한 운동에도 그만큼 투자할 시간이 없다. 보고 있으면 “차라리 죽여라”소리가 나온다고.)
일하고,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을 키우고, 저녁이 있는 삶 같은 건 꿈도 못 꾸고, 경제적인 여유도 부족하다 느껴지는 상황에서, 아들의 운동회에서 자신들의 운동 부족을 깨달은 부부는 운동을 시작한다. 남편은 담배를 끊었다. 부부는 신문 구독 사은품으로 받은 철TB 자전거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남편이 올라간 지리산에 자신은 못 올라간 날, 아내는 육체의 한계를 절감하고 수영을 시작한다. 달리기를 시작한다. 요가를 하게 되며 요가하러 가는 김에 자전거를 타게 된다. 그러다가 트라이애슬론에까지 도전한다.
책이 부동산을 잠식하고, 노후에는 시골로 내려가 마당에 컨테이너를 들여놓고 책 창고를 꾸밀 계획을 세우던 저자는, 이 독서에다가 운동과 외국어를 덧붙이자고 말한다. 우리를 절대 배신하지 않는 세 가지라고. 독서와 외국어는 동의, 운동은 머리로는 동의하지만 마음은 동하지 않는데, 이제 드디어 앞으로 20년간 병으로 죽진 말아야 한다는 미션이 생긴 지금이 이 책의 꾐에 넘어가기 좋은 시기일까.
하지만 이 책에서 나는 뜻밖에도, 감동이라는 걸 하게 된다. 이게 반전이라면 진짜 반전이다. 문학사상사와 디자인하우스, 거기에다가 구체적인 사명은 본문에 안 나오지만 펭귄클래식이라는 이름만 봐도 바로 알 수 있는 랜덤하우스 코리아. 그런 쟁쟁한 회사들의 편집자를 거치면서 승진하고 앞으로 쭉쭉 나아가던 저자는, 편집자가 아닌 매출의 책임을 져야 하는 간부로서 한계를 느낀다. 그는 간부에서 물러나지만, 퇴사하는 대신 회사의 제안으로 대편집자가 되어 다시 책을 만들고, 업계 1, 2위에 밀려 있던 펭귄클래식을 맡아 한때 책덕후들이 “이게 웬 상술이야!”하고 소리지르면서도 결국 예뻐서 사들이던 저 마카롱 시리즈라든가, 펭귄 클래식 굿즈라든가, 이런저런 마케팅으로 펭귄클래식을 효자종목으로 만들어낸다. 그의 성공으로 그의 후배들 중에도 간부 루트를 타다가 퇴사 대신 다시 편집자로 돌아와 활약하는 이들이 생겨난다. 나는 이 대목이 좋았다. 일하는 여자가, 같이 일하는 자기보다 어린 여자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 아닌가. 버텨내는 것, 물러서지 않는 것. 계속 길을 찾아가는 것. 어쨌든 수시로 “대박을 내서 회사 때려치우고 전업작가가 되는 게 꿈입니다.”하고 말하긴 하지만, 나도 회사에 몇 없는 여성 기술직 직원이니까, 비슷한 입장의 후배 여사원들을 위해서라도 가급적 정년까지 버텨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도 되었다. 물론 그러자면…… 지긋지긋하긴 하지만 이 책의 저자처럼 운동이라도 시작해야 일이 돌아갈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