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맛

하루의 맛 – 나가오 도모코, 임윤정, 앨리스

하루의 맛
하루의 맛

좋은 그림이 많이 들어있고, 서문에서도 “매일의 소소한 이야기와 소박한 데생”이라는 제목으로 화가 필립 와이즈베커의 일러스트가 들어갔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럴 거라면 책 표지든 날개든 일러스트레이터의 이름이 들어가는 쪽이 더 만듦새가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안노 모요코의 “워킹맨”에서는 병원에 입원한 사람에게 음식이 나오는 수필집을 갖다주는 걸 악취미라고 부르는 대목이 나온다. 아직 즉위하기 전의 충녕대군이 몸져 누웠을 때, 태종 이방원은 책벌레인 아들의 방에서 책을 모두 압수했는데, 저 충녕대군은 병풍 밑에 끼어 있넌 구양순의 편지책(아마도 “구소수간”이라는 제목이었을 것이다)을 마르고 닳도록 읽었다고 한다. 조리원에 갇혀서 이 책을 읽는 기분이 그러했다. 사흘동안 분만대에 누워서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외쳤는데 병원에서부터 조리원까지 소금간은 멀겋고 매 끼니 미역국이 나오는 건강식단만 먹고 있다. 그러면서 음식 관련 수필집을 읽고 있는 것이다.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그나마 수유할 때 아기에게 읽어주는 책으로는 무척 괜찮달까. 아가야 사랑해 그런 말도 한두 번이지 어떻게 분유 먹을 때 마다 합니까. 결국 이 책을 들고 다니면서 분유 먹는 동안 한 챕터씩 읽어주고 있다. 음식 관련 책이라 그런지, 읽어주면 아기가 분유를 무척 잘 먹는다. 그건 다행이지.

일단 일본 쪽 책이다 보니 채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많다. 이렇게 먹으면 맛있겠다 싶은데 손이 많이 안 갈 것 처럼 보이는 것들은 체크를 해 뒀다. 집에 가면 해 먹어 봐야지.

  • 토마토 올리브유 절임 : 두껍게 썬 토마토에 올리브유를 뿌려서 넉넉한 크기의 병에 담아 냉장고를 열 때마다 한 번씩 뒤집어 준다거나. 아침저녁에는 약간의 소금을 뿌려서 먹고, 바닥에 남은 과즙은 드레싱으로 활용하는 등.
  • 양배추 수프 : 심을 제거한 양배추를 넣고 1/3이 잠길 정도의 물과 소금 한 자밤을 넣어 부족한 물에 찌듯이 삶음. 김이 빠지지 않게 뚜껑을 꽉 덮어 중불에서 끓이다가, 끓기 시작하면 약불로 줄여 10분. 국물은 수프로(올리브유나 후추) 토마토나 누에콩, 베이컨, 허브 등을 넣어서 먹음. 푹 삶은 양배추는 카레나 미소시루, 혹은 이 수프에 그냥 넣어도 됨.
  • 무농약 레몬(이나 시콰사, 스다치, 다이다이, 카보스, 유자 등등등)은 비스듬히 잘라 과즙을 짠 뒤, 껍질 안쪽 흰 부분의 반 정도의 두께로 저미듯 벗겨낸 껍질과 나머지 봉투를 나누어서 냉동. 껍질은 언 채로 채 썰어서 끓는 물에 5, 6회 데친 뒤 장아찌 등에 향을 더할 때. 펙틴은 잼이나 젤리를 만들 때.
  • 흰 강낭콩과 병아리콩 등은 간 하지 않고 삶아서 소분해서 냉동. 미네스트로네나 카레 등에 넣으면 좋다.
  • 양파구이 : 칼은 손도 대지 말고 양파를 오븐에 넣고 천천히 구움. 갈색 빛이 돌면 꼬치로 찔러본다. 잘 구워진 양파를 가를 때 소금 약간 뿌림. 소금, 올리브유, 비네거 등을 쳐서 먹는다.

푸드 스타일리스트의 책 답게, 음식을 맛있게 만들고 맛있게 먹는 이야기들 뿐 아니라 그릇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이 나와 있다. 이 책을 읽고, 그동안 벼르던 사마도요 티팟을 샀다. 비싼 건 아닌데, 내열유리로 되어 있고 거름망이 달려 있어서 실용적인데, 유리로 된 건 집에 대충 쓰는 게 있고, 산다면 도자기 티팟을 하나 더 사고 있어서 그냥 미뤄뒀던 물건이다. 이건 그냥 내가 글을 쓸 때 전용으로 쓸 거다. 하나라도 생활에 예쁜 그릇을 더 끼워넣고 싶어졌다. 그런 욕망이라도 들어서 다행이지.

PS) 떡볶이 먹고 싶다. 신전떡볶이 매운맛에다가 오뎅튀김 세 개, 삶은 달걀, 참치비빔주먹밥 반 인분에다 쿨피스까지. 한국에서 30년 이상 산 여자가 인생의 쓴맛을 본 직후에 원하는 달고 짜고 화끈하게 맵고 기름기까지 나는 맛을 무시하다니, 황교익은 어디 학교 앞 떡볶이집 단골손님 한 번 못 되어 보었을 것 같이 생긴 아재가 감히 한국여자의 소울푸드 떡볶이를 무시하고 난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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