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다른 아이들

부모와 다른 아이들 – 앤드류 솔로몬, 고기탁, 열린책들

이 책은 2015년 초에 나왔다. 2015년에 육아책이나 이유식책을 알아보려고 도서관에 갔다가 빌려서 한 번 읽었고, 지금 둘째 출산을 앞두고 다시 읽고 있다. 그 사이에 나는, 여기 언급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이나 생각이 조금 변하기도 했고, 아이가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요즘 나는 둘째 출산을 앞두고 무척 심란해하고 있으며, 어떤 사건사고가 생길지 내가 통제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매일매일 살얼음판을 딛는 것 같은 기분이다. 엊그제는 공연히 산모사망률 통계를 다시 찾아보다가 첫째를 붙잡고 엄마가 혹시 동생을 낳다가 많이 아프면(차마 죽으면, 이라고는 말 못하고) 아빠 말을 잘 듣고 “아빠랑 안 놀거야”소리 좀 하지 말라고 했다가 애한테 스무 번쯤의 뽀뽀와 위로를 받았고, 어제오늘은 이걸 읽고 있다. 내가 잘못될 경우 다음은 이제, 아이가 내 예상을 많이 벗어날 경우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거겠지. 그런 점에서 좀 죄스럽기도 하다. 이런 것이 어떤 면에서는 다른 사람의 불운한 경험을 나 자신의 위로를 위해 쓰는 게 아닌가 싶어서. 아니, 이런 일들을 다른 사람들의 “불운한” 경험이라고 지레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해서.

일단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앞부분에서 한 번 안심하게 된다.

장애가 없는 사람은 모두 <정상인>이라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가급적 이 표현을 피했으며, 따라서 가령 <청각 장애가 없는 사람>을 생소한 의학 용어인 <건청인>으로 표현했다.

그래,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사람은 이런 데 안심하게 되는 법이다.

이 책에서는 태어난 아기들에 대해 혼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관계의 일부로서의 측면을 부각하여 설명하며, 특히 부모와 이질적인 특징을 갖고 태어나 동류 집단에서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 “수평적 정체성”에 주목한다. 이 수평적 정체성 중 여기서 특히 항목을 나누어 설명한 것은 청각장애, 소인증, 다운증후군, 자폐증, 정신분열증(조현병), 장애(다중장애), 강간으로 임신되어 태어난 아이,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 트랜스젠더, 그리고 뜻밖에도 신동이다. 많은 부모들은 이런 수평적 정체성에 당황하거나, 모욕으로 느끼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동시에 남과 다른 점을 못 견뎌 하기도 한다. 이 책은 앨런 로스의 “가족의 이례적인 아이”를 인용하며 부모들이 하나같이 자녀가 자신들보다 높거나 적어도 비슷한 수준의 문화적 성취를 이루기를 기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녀가 행복하지만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보다 불행하더라도 남들과 비슷하게 사는 것을 더 바랄 정도로 우리는 너무나도 명백하게 수평적 정체성을 증오한다.

또한 이 책은, 부모와 아이의 관계 뿐 아니라 여러 차별에 대한 관점들을 시사한다. 이를테면 성형을 위한 수술과 교정을 위한 수술의 경계선은 아주 가늘며, 최선의 자기 모습을 되찾는 것과 억압적인 사회 기준에 순응하는 행동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언급한다. 농문화를 존중하는 것, 수화라는 독특한 언어의 창조와 유지 및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과, 청각 장애를 근절하고 일찍부터 소리를 듣게 하기 위한 의학적 조치(인공와우 수술) 사이의 갈등에 대한 양쪽의 입장차를 같이 보여준다. 의학적 개입이 필요할 경우 장애를 겪는 당사자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게 존중받아야 하지만, 한편으로 이것이 아홉살짜리의 편견인지, 어른이 될 때 까지의 진정한 본심인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한다.인공 와우 수술이 해당 비주류 정체성 집단의 반대에 부딪치는 반면, 트랜스젠더의 성전환 수술은 해당 집단으로부터 요구되고 있다는 점, 즉 당사자의 목소리를 좀 더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도 언급한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음란한 욕구 때문에 기형아가 태어났다고 보는 여성혐오적인 관점과, 부유한 부모는 출산 전 필요한 모든 검사를 할 수 있지만 가난한 부모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장애가 계층에 따라 불균형하게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많은 상황이 질병인 동시에 정체성으로 볼 수 있지만 그 중 하나를 외면하면 우리는 오직 하나만 볼 수 있다. 정체성 정치학은 질병 개념을 부인하고, 의학은 정체성을 부당하게 대우한다. (중략) 장애인은 허술한 법률에 의해서 보호받고 있으며, 그들이 질병이 아닌 정체성을 가졌다고 판단되는 순간 기존의 그 허술한 안전장치마저도 몰수될 수 있다.

읽고 있으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대목들이 보인다. 이를테면 다운증후군 항목의 앞부분은 임신 12주 무렵부터 할 수 있는 온갖 검사의 목록으로 시작된다. 니프티, 목덜미 투명대, 트리플, 쿼드, 양수천자 등등. 나도 두 번의 임신 중 이런저런 검사에 대해 설명을 들었고, 다소 위험성이 있고 비용이 나가지만 정확도가 높은 양수검사를 선택해서 받았다. (받으면서, 만약 검사 결과 생존이 불가능한 정도의 장애가 발생하더라도 한국에서는 낙태가 안 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의사와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문득 이 모든 검사들이, 다른 여러 염색체 이상에 대해서도 대응하지만 공통적으로 다운증후군에 대응하는 검사라는 사실(염색체 개수 이상 등등)을 생각했다.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난 제이슨의 부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다수 부모들의 주된 역할은 그들 자녀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거예요. 하지만 나의 주된 선택은 제이슨이 포기하도록 만드는 거죠. 간단히 말해서 너는 그다지 똑똑하지 않기 때문에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어 라고 말하는 거예요.

한편 태어나기 전에 미리 검사하고 낙태를 선택할 수 있는(한국은 아닙니다) 염색체 이상과 달리, 정신분열증은 “그동안 알아왔고 사랑했으며 심지어 이전과 거의 똑같아 보이는 아이를 영원히 잃을 수 있는” 상태아고, 자폐증은 “설명되지 않은 일단의 증상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범주”로 설명된다. (그래서 자폐 스펙트럼이라고 하는 거겠지) 자폐증을 갖고 태어난 아이의 부모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만약 그 아이가 청각 장애라면, 그래서 수화를 배울 필요가 있다면 나는 수화를 배울 거예요. 그렇지만 지금의 그 아이가 사용하는 언어를 배울 방법은 전무해요. 그 아이도 자기 언어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죠.

(한편 나는 이 책의 자폐 대목을 2015년에 좀 주의깊게 읽었는데, 그건 “족쇄 – 두 남매 이야기”의 주인공인 준현을 두고, 실생활에서는 말을 더듬고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지만 인터넷으로 정보를 모으거나 하는 일에는 능숙한, 고기능성 자폐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매드 프라이드 운동의 취지는 당연하나 그 이전에 정신분열증은 치료가 필요한 고통스러운 질병이라는 점, 다중 장애나 중증 장애를 앓는 아이들을 위한 선택이 장애 아동 당사자보다는 비장애인 형제의 이득과 연결되어 고려된다는 점 등, 여러 주장에 대해 양측의 주장을 함께 다루고 있는 게 이 책의 좋은 점이다. 강간으로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항목에서도, 남자가 자신이 친부로 지목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부리는 수작이라든가, 아이를 미끼로 다시 만나려 하거나 여자를 옭아매고, 자신의 지배 하에 두려고 하는 것들, 제대로 양육비를 주지 않거나, 강간으로 태어난 자신의 자식을 인질삼아 학대하는 후안무치함에 대해 다양하게 언급하는 한편, 자신의 아이인 동시에 강간범의 아이라는 양가감정을 갖는 모친의 감정과, 유엔 아동 권리 협약에조차도 강간으로 태어난 아동의 권리에 대해 따로 언급되지 않은 점 등을 두루 다루고 있다. 다소 두껍긴 하지만.

특이한 것이, 이 책에 언급된 다른 경우들과 달라 보이는 “신동”쪽이다. 여기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뛰어넘은 아이의 보호자라는 점에서 장애 아동의 부모나 비정상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동의 부모는 모두 같은 처지다.

처음 읽을 때는 이 대목에서 “아무리 그래도 이거랑 그게 같은가……” 싶었지만, 다시 읽을 때는 눈에 들어오는 대목들이 좀 달랐다. 자식의 다른 부분은 제쳐두고 반짝이는 부분만 사랑하는 부모의 편협한 애정이나, 신동의 부모가 자기도취에 빠지는 경우들, 그리고 이런 부모의 행동 방식이 재능을 파괴하거나 부모자식의 관계를 파탄내는 경우에 대해서. 그런 점에서 이 항목은 묘하게도, 다시 읽다 보면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의 항목과 한 세트로 묶여서 읽힌다.

이 책의 앞 부분에서 저자는 자신이 난독증을 갖고 있으며 게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그래서 아들로서 부모/아버지와 대립한 것에 대해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마지막 챕터에서 그는 동반자를 만나고, 레즈비언 커플에게 정자를 제공하고, 난자 기증과 대리모를 통해 아버지가 되며,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날 지 모른다는 공포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부모, 특히 여성에게, 이에 대한 결정권이 있어야 함을 말한다. 수평적 정체성을 가진 부부, 혹은 이전의 임신과 출산에서 그런 아이를 낳은 적이 있는 부부가 아이를 낳는 문제에 대해 타인이 개입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여성도 당사자가 두려워하는 임신을 강요받지 말아야 하고, 또 어떤 여성도 당사자의 의지에 반해서 낙태를 강요받지 말아야 한다. 수평적 특징을 가진 자녀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태아기 검사를 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그들의 아이에게 존엄성을 부여한다. (중략) 자녀로 상징되는 도전에 직면한 사람들을 보다 나은 길로 인도하는 행위가 합리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런 삶의 가치를 안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강요하는 행위는 파시즘이나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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