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 다치바나 다카시, 바다출판사

새벽에 다치바나 다카시의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을 읽었다. 이 책은 릿쿄 대학에서 시니어를 위한 “릿쿄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에 저자가 개설한 강좌,”현대사 속의 자기 역사”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한 마디로 자서전 쓰기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구입했다.

올해 나는 38세, 한국 나이로는 39세. 그렇다면 해가 바뀌면 한국 나이로 슬슬 40세다. 생애전환기라든가, “40살이 되어야 할 만큼 나쁜 짓은 하지 않았어!”(이 대사가 원래 나온 은영전에서는 30세가 된 아텐보로가 그런 망언을 했었지. 쯧쯧.)같은 농담을 슬슬 하게 되는 나이. 하지만 자서전 쓰기 책 같은 것을 읽기엔 이르긴 하지만 저자를 보고 읽기 시작했고, 결론만 말하면 지금 읽기에 결코 이른 책은 아니었다.

이것저것 집약적으로 흘러가다 못해 역사마저 집약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1940년에서 2040년까지의 100년간의 한국사는, 세계 역사의 속도로 치면 몇 년분에 해당하는 걸까 가끔 생각하게 될 만큼. 당장 지금만 해도 그렇다. 3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났다. 얼마 전 필리버스터는 2016년의 일, 그해 여름에 민주당 대표가 추미애로 바뀌었고 탄핵 정국 그해 겨울, 2017년에 대통령이 탄핵되고, 그해 봄에 장미 대선이 치루어졌고, 올해 초에 평창 올림픽이 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한 해에 북한과 세 번이나 정상회담을 치를 줄은, 그리고 종전이 목전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다는 이야기를 다른 작가님과 나누면서 기막혀 했었다. “3년이 아니라 10년은 지난 것 같아!”하고. 그런 시대를 살면서, 역사의 각 지점에서 자신의 개인사가 어떤 식으로 흘러갔는지 생각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아닐까. 자기 반성을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고 나서 아침까지, 8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의 한국사와 그때 내가 뭘 하고 있었는가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구체적인 기록까지는 아니더라도 엑셀로 연대표 정도는 만들어 두고 싶어졌다. 그때 내가 무엇을 했느냐가 반성의 시작점일듯.

한편으로 책을 읽으며 역사 속의 나,뿐 아니라 역사 속의 가족사, 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는데, “가족의 역사”라는 것을 나는 아이를 낳고 나서야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지. 촛불집회가 계속 열리고, 계엄령을 준비하려는 게 아니냐고 민주당 당대표가 충격 발언(시간이 지난 뒤 정말로 그런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문건들이 나왔지)을 할 무렵에, 어린 자식을 안고서 지금, 광화문에 가 있는 친구들에게 미안함과 걱정을 느끼거나, 이 아이가 어떤 세상에서 자라게 될까 걱정하거나, 그래서 최악의 상황들을 상상한 SF 소설을 쓰고 있었다거나. 그런 순간들이, 나중에 이 시절을 뭐라고 들려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 결국 이 책에서 말하는 것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의 삶을 생각하고 가능하면 기록으로 남기는 것과 통하는 게 아닐까. 글쎄, 문득 내가 태어났던 1980년에, 광주에서 뭔가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며 전쟁이 날까봐 걱정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어쩌면 원가족과 사이가 좋아지거나 한다면 부모님 세대의 역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 했다.

그리고 이 영감님은…… 난 진짜 이번 책은 뭐, 아무리 다치바나 다카시라고 해도 이 책의 주 내용이란 시니어를 위한 자서전 쓰기 책 뭐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말이죠.ㅇㅇ(아니, 이책이 본래 지향하는 건 그거긴 하다) 책이 좋았으며 지금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한국, 에 대해, 언제 무슨 일이 있었지, 하고 그 무렵의 역사적 사건들을 연결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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