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과 경의와 부러움

지난번에 중국 웹툰이 두렵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이건 만화 스토리작가로서의 관점이고. 사실은 지난 번 거울을 통해 중국 SF와 단편교류를 하면서 확실하게 느꼈다. 이 나라는 얼마나 작고, 시장은 또 얼마나 작은지에 대해서. 한국 SF 작가들이 상상도 못한 클릭 수를, 중국에서는 평범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서. 그러고 보니 중한 번역 하시는 분께서 중국에서 책이 나가는 단위, 그 매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듣고 당황한 적도 있다. 죽어라 쓰고 버티고, 그래야만 겨우 지킬 수 있는 시장에 대해서 종종 생각한다. 사방에서 지원은 커녕 등쳐먹으려는 놈들이 상시 대기중인 세계에서, 어쨌든 버텨나가는 것에 대해서. 나는 내가 아는 작가들이 다들 잘 되길 바란다. 잘 된다는 것은 다들 드라마화가 되고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기가 쓴 이야기에 걸맞는, 그리고 생활에 크게 부족함이 없는 돈이 안정적으로 통장에 꽂히고, 사업상의 논리로 갑자기 작품이 중단되지 않고, 자신의 노력과 재능에 걸맞는 대접을 받길 바란다는 뜻이다. 작지만 확고한 어떤 것. 최소한 작가로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것.

여기엔 가끔 응원이 필요하다. 가끔, 응원을 받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다가 어쨌든 일이 끊이지 않고 들어와 수시로 계약서가 날아드는 인생 자체가, 뭐 그렇게 달콤한 응원은 아니지만 여튼 응원이 아닌가 적당히 생각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그래도 가끔은 뿌듯한 어떤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한다. 개인에 대한 응원도 좋지만, 그 작가 개인이 발을 딛고 서 있는 생태계가 존중을 받는다면 좀 더 뿌듯하겠지. 한 주에 70컷을 그리는 것이 얼마나 사람의 수명을 갉아먹는 일인가에 대해 업계와 독자 전반적인 합의가 있었으면 좋겠고, 작가가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 “내가 불편하니 입 닥치고 원고나 하라”는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PD가 작가를, 자기가 원하는 이야기를 보기 위한 도구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고, 신기술이 나온 것을 보고 작품을 기다리느라 목을 빼고 있는 독자도 아닌 업계 관계자가 “개인의 일일연재도 가능하지 않을까”하고 사람을 더 갈아넣고 싶어하는 마음을 감추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정산이 깔끔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앞서 말한 것들은 웹툰이나 웹소설의 이야기지만 정산 이야기는 장르를 가리지 않으니까. 써놓고 보니 이 얼마나, 그냥 먹고 살고 건강을 유지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작가의 기본권, 아니 인간의 기본권만이라도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인지. (웃음) 그렇다. 존중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가 상상하는 것은 아직도 존중이나 경의가 아니라 생존의 영역이다. 가끔은 이런, 기본권도 모르쇠 하는 업계따위 싹 망해버리고, 자라나는 세대들은 그냥 창작으로 밥벌이를 하지 말고 외국의 콘텐츠로 덕질이나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가끔 한다. 그게 좀 우울하고 슬프다.

Anyway, 거울에서 중국SF와 교류할 때 번역을 맡아주셨던 번역가님은 요즘, 완샹펑녠 작가에게 푹 빠져 계신 듯 하다. 거울에 올라왔던 “후빙하시대 이야기”는 매혹적인 작품이었고, 이해가 간다. 그리고 그분이 요즘 “완샹펑녠을 한국에서 두번째로 유명한 중국 SF 작가로 만들겠다”며 SNS에서 수시로 언급하시는 것(그거 뭔지 알아, 에이비스 렌터카의 마케팅 전략이지.)도 이해가 가고. 여튼 완샹평녠 작가는 삼체의 류츠신 작가의 팬이고, 원래 한 장르를 파면 고구마 줄기 캐듯이 주변을 다 캐게 되는 것이 덕후의 본성이다 보니, 이분은 “삼체 10주년”을 맞이하여 나온 굿즈들을 발견하시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 뭐 스티커나 마스킹 테이프, 아니면 머그컵 같은 것을 소박하게 생각했는데, 이분이 내게 링크를 보내주셨다.

타오바오에 있는 과환세계 샵링크를. (이분 뭡니까, 내 지갑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입니까…… ㄷㄷㄷㄷㄷ;;;;)

……잠깐, 이거 너무 본격적이잖아. 생각하고 들어가 봤는데, 10주년이라고 삼체 굿즈들이 부채에 잉크에 마스킹테이프에 문구세트에 다양하게도 나와 있었다. 물론 과환세계에서 나온 책이나 잡지 같은 것도 여기 미니샵에서 다 구입할 수 있고. 들어가서 보면서, 듀나님의 데뷔 30주년, 혹은 김보영 작가님의 데뷔 20주년 같은 것을 잠깐 떠올려 보았다. 그런거 해도 우리 같으면 아마 스티커 같은 거나 찍지 않겠어? 너무 어린애 장난들 같은 것만 떠올랐다. 아이디어가 아니라 예산의 문제로. 그리고 조금, 속이 쓰려왔다. 모든 작가가 다 그만큼의 대우를 받을 수는 없겠지만, 업계 최고의 작가가 그만큼의 존중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그 장르에 대한 존중이요 경의가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꾸준히 빛나는 중국 최고의 SF 작가 중 한 명이고, 그의 소설 “삼체”가 휴고상을 수상했다는 점까지 생각하더라도. 한국이었다면 인터넷 서점별로 맥주잔이나 스티커, 혹은 책갈피 세트나 에폭시로 무늬를 넣은 가방걸이 같은 것을 만들었겠지. 이렇게 본격적으로 뭔가를 했을 성싶지는 않으니까. 뭐 물론 시장이 작고, 이런저런 현실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그래도 좀 더, 존중받고 싶다. 내가 속한 세계 자체가, 생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뿐 아니라 좀 더 존중에 대해, 그리고 훌륭한 작품이나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새벽에 “헐 삼체 굿즈……”하고 타오바오를 뒤져보다가, 그런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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