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외국어라니

나이 들어 외국어라니 – 윌리엄 알렉산더, 황정하, 바다출판사

……구몬을 밀리고 있다.

정확히는 지난 달, 인공수정을 시도했다가 겨우 흐릿하게 두 줄이 보였던 날 무리해서 짐을 나르다가 그만 대출혈을 일으켜 버리고 난 이후로, 몸이 아파서 구몬 일본어고 뭐고 없다. 해가 바뀌었으니 그 흔한 작심삼일이라도 해 볼만 한데도 의욕도 없고 체력도 없다. 히라가나를 잊어버리지 않는 게 그저 다행이다. 머지 않아 이사도 해야 하니, 아무래도 이사할 때 쯤 맞춰서 구몬을 그만두든가 해야 할 것 같다. 사람이 건강이 먼저지.

한때는 돈을 받고 남의 구몬을 풀어도 주었던(국민학교 때의 일입니다. 열 장 풀어주면 500원……) 내가 구몬을 밀리고 밀려서 그만둘 지경이라니. 자괴감 들고 괴로웠다. 내가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읽었다. 아무거나, 외국어 공부하다가 거하게 실패한 이야기 같은 것도 좋고, 성공한 이야기면 더 좋고. 게다가 프랑스어래.

프랑스어라고 하면 할 말이 많다. 내 인생에 “가”를 받은 유일한 과목이 바로 프랑스어다.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때였다. 정확히는 동사도 아니고, 단어의 성별을 외우다가 집어던졌다. 대체 이 근본없는 성별정책은(……이 블로그에 설마 프랑스 분들이 오시진 않겠지.) 뭔데!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기만 했다. 그런데 50대 아저씨가 프랑스어라니 이 얼마나 고난이도의 미션인가.

하지만 설마설마 했는데 프랑스어 공부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아 심방세동에 심계항진에 부정맥 등등이 오는 이야기일줄은 몰랐다.(……)

대참패 한 것 처럼 말하고 있지만, 저자는 프랑스어를 공부하며 인지능력 등이 활성화되었고(자기공명촬영과 몇가지 검사를 통해 전과 후를 비교해 놓기도 했다), 딸과 프랑스어로만 말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여행을 가고, 전보다 훨씬 풍요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읽는 내내 저자가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질 때 마다 아이고 이 아저씨 어쩔 거야 하면서도 낄낄 웃을 만큼(……죄송합니다) 입담이 훌륭한 책이었지만, 한편으로 내가 지금 아프다고 해서 일본어 공부를 그만해야 하는 건 아니지, 좀 더 장기전으로 가자, 적어도 구몬을 풀다가 심방세동으로 실려가진 않았잖아. 뭐 그런 묘하게 긍정적인(……) 생각을 불어넣기도 했다. 어쨌든, 일단 이사 할 동안에는 잠시 중단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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