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이후로는 조용필 콘서트는 고사하고 시향(서울시향 아닙니다. 우리동네 인천시향) 송년 음악회도 못 가는데 연말에 옥토넛 어린이 뮤지컬을 예매해서 보러 가는 이 마음은 정말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쨌든 옥토넛은 애가 열광하지만 나도 좋아하는 만화여서 조금은 기대하고 갔는데, 어휴, 대략 감상은 “옥토넛에 K-개콘 묻었네”였다. 보는 내내 별로였다. 물론 다른 많은 어린이 뮤지컬이 그러하듯이 이 뮤지컬도 어린이 팬을 위한 팬서비스에 무척 충실하여서, 포토타임이라며 탐험보고 노래 이후는 무대 사진 촬영도 허용하고, 수시로 관객석으로 왔다갔다 하며 아이들과 악수하고, 나올때 아이들에게 옥토넛 대원증도 준다. 그리고 그 앞에서 당연히 옥토넛 인형 같은것도 팔고 있고. 팬서비스 자체만 생각하면 뭐, 잘 만들고 잘 기획한 쇼이긴 했다.
그런데 원작의 장점마저 날려먹는 각색은 대체 뭐냐고.
많은 한국 유아용 애니메이션들이 남녀차별을 안 하면 이야기를 못 만들고 여자아이 캐릭터는 “여자”인 것 자체가 개성이며 어떻게든 분홍색을 넣지 않으면 못 견디는 게으른 짓을 답습하고 있을 때 옥토넛은 저마다 개성있는 캐릭터들이 다들 씩씩하게 모험 잘 하고 제 몫을 다 하고 매 화 누군가를 도와주고 탐험보고도 하는 게 장점이다. 옥토넛에서 어떤 면에서 제일 담대한 건 고래뱃속에 들어가서도 내셔널 바다그래픽에 보낼 사진을 찍으면서 “이런 걸 찍은 건 내가 처음일거야”하고 있는 대시(여자)이고, 콰지(남자)는 용감무쌍한 해적 출신으로 남들을 놀리는 걸 좋아하는 전형적인 개구쟁이 2인자 남캐이지만 어린 생물들을 가장 잘 돌보는 의외의 모습도 보인다. 기계를 제일 잘 만지는 너드는 트윅(여자)이다. 기본적으로는 소심하지만 아픈 생물이 있을 때는 용감하게 나서는 페이소는 남자인데, 성소수자 캐릭터라는 이야기가 늘 나오고 있다. 이 옥토넛에서 흠이 있다면 그저 성비일 뿐인데, 바나클 대장이나 잉클링 교수 중 한 쪽이 여자였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그런데 이 뮤지컬은 어떠하냐 하면.
대시는 원작에서는 나중에 심해연구기지에서 셸링턴과 단 둘이 한달을 지내는 것도 사진 찍을게 많겠다고 좋아하는 앤데, 약광층이나 심해암흑층이 무섭다고 징징거린다. 페이소는 대쉬와 함께 무섭다고 덜덜 떨기만 하고. 콰지는 제멋대로이긴 해도 예의는 있는 앤데 바나클에게 반말을 찍찍 한다. 중간에 가시복어 세 마리(남자 둘 여자 하나)가 나오는 장면에서 여자 가시복어는 다른 남자 가시복어 둘에게 내가 제일 예쁘니까 너희가 불가사리를 잡아오라고 하다가 말 안들으니 “아줌마처럼” 고함을 질러대는 등, 개콘의 흔한 여혐개그를 답습하기만 한다. 어린이 뮤지컬에서 주인공들이 길 잃은 꼬마 캐릭터를 엄마 아빠에게 돌려보내는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것 같은데(지금까지 꼬꼬마는 어린이 뮤지컬을 두 편 봤는데 두 편 모두 그 이야기다) 엄마와 아빠 캐릭터가 아침드라마 같은 말투로 울부짖기만 하고 있는 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고.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옥토넛은 나름대로의 품위를 지키는 이야기다. 바나클 대장은 초면인 생물에게 존대를 하고, “안녕하세요, 실례합니다. 죄송합니만.” 같은 말을 늘 사용하고, 어린이와 여성, 환자와 노인을
위해 최대한의 편의를 보아주는 신사고,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다. 장난꾸러기도 geek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다들 예의가 있는 캐릭터들이 나오고, 작은 생물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잘 모르는 생물이라고 귀신이라고 생각하고 무서워하지 말고 친절하게 대하라는 메시지를 충분히 담아서,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서너살 된 아가들이 약광층이니 생태계 핵심종 같은 소리를 하게 만드는) 왜 그런 좋은 원작으로 어린이 뮤지컬을 만들면서, 한심하고 혐오어리고 개그콘서트에서 따온 듯한 장면을 넣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지, 그 만화를 보는 애들보다 그 뮤지컬을 만드는 어른들의 수준이 더 떨어진다는 생각만 든다. 하긴, 원작 망치는 게 뭐 그것 뿐이겠어. 그 좋은 동화, “구름빵”으로 원작자와 상관없이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홍비와 홍시 남매 중에서 누나인 홍비가 엄마 립스틱을 바르자 집안일을 하게 되는(……) 역겹고 고리타분한 에피나 집어넣는 현실에서 그냥 이 모든 것에 대해 K 묻었구나 할 밖에 없나 싶고요.
생각해보니 지난번 팡팡크루즈에서 빵만들고 배탔더니 하는 공연에서 남자들은 셰프 캐릭터인데도 변기커버를 들고 개콘스런 개그를 하고 여자는 아잉 섹시-! 만 외치며 콧소리만 내고 가긴 했다. 그거 어린이들 빵만들기 체험 및 공연으로 되어 있었다. 어린이의 수준을 왜 무시하나 싶다 이젠. 점잖은 것에는 애들이 웃지 않는게 아니라, 니들이 애들의 역치를 저만큼 높여서 그정도로 혐오정서까지 넣어가며 천박하게 억지를 부리지 않으면 안 웃게 만들고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