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에피 8, 라스트 제다이를 보고 왔다. 무척 잘 만들어졌고, 액션활극으로서도 넘치게 좋았으며, 군데군데 올드팬들을 자극하기 위한 장치들을 잔뜩 심어놓은 것은 물론, 이제 올드팬 뿐 아니라 지금 청소년인 세대를 끌어들이기 좋은 이야기. 그런데다 지금의 시대상을 어느정도 반영하고 있는 것도 무척 좋다. 일단, 프리퀄 세 편을 극장에서 봤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시퀄은 에피 7도 에피 8도, 모두 다음 편이 기대되어서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정치적 올바름을 좋아하다가 소녀전선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보이길래 대체 성비가 어느정도인가 했는데, 웃기지 말라고 합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등장인물 중에 남성이 더 많다. 다만 저항군의 지휘관 중 비중을 가진 인물들 중에 여성이 많았고, 퍼스트 오더 쪽은 파스마를 제외하면 대체로 남탕에 가까웠다, 정도일까. 그런데 이건 낯설지 않다. 로그원의 진 어소나, 스타워즈 반란군의 아소카까지 갈 것도 없다. 애초에 레아 공주 자체가 그 시대 기준으로는 싸우는 히로인이었는걸. 오히려 이렇게까지 의도적으로 노력해도 성비가 반반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이야기는 아나킨 스카이워커에 대한 두 가지의 가정을 보여준다. 하나는 포 다메론, 다른 하나는 루크와 카일로의 관계를 통해서.
일단 시작은 우주를 가로지르는 엑스 윙. 포 다메론은 종횡무진 날아다니며 공적을 세우지만, 그는 퇴각하라는 지시를 무시하고 싸우다가 폭격기 부대를 잃고 만다. 페이지 티코의 희생이 없었으면 퍼스트 오더에 중대한 타격을 입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레아는 그만큼 사람들이 희생되었는데도 영웅심과 공명심을 갖고 있는 포를 강등시켜 버린다.
초반부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아나킨 스카이워커, 그의 파일럿으로서의 실력과 잘난 척은 포 다메론에게, 다크 사이드와 가면과 잘못된 여자 꼬시는 스킬은 카일로 렌에게 가기라도 한 것이냐……. 레아가 쓰러진 뒤 지휘를 맡은 홀도 제독이 퇴각작전을 세우며 신중하게 기밀을 유지하여 자신에게도 계획을 알려주지 않자 포는 아예 선상반란을 일으켜 버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아나킨과 달리, 배우고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아나킨이 다스베이더가 된 나이보다는 나이가 더 많고, 열악한 상황에서 버텨낸 에이스 파일럿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홀도 제독의 퇴각 계획을 알고 반성하고, 홀도 제독이 모두를 지키기 위해 저항군의 기함에 홀로 남아 하이퍼드라이버를 작동시켜 스노크의 스타 디스트로이어의 우익을 파괴하는 것을 보고 반성하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된다. 반란군 기지에서의 그는 닥치고 돌격하여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을 지킬 수 있는 지휘관으로 성장한다. 파일럿으로의 실력은 물론 자기 잘난 척 까지, 이건 무슨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오른쪽 무릎뼈라도 갈아서 마셨나 싶었던 포가 실력을 갖춘 지휘관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아나킨이 다크 사이드에 넘어가지 않고, 그렇게 어머니를 잃지 않고, 좀 더 밝게 자라났다면 언젠가는 훌륭한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 루크와 벤, 마스터 스카이워커와 카일로 렌의 관계는, 오비완과 아나킨의 관계에 대한 변주다. 파다완의 마스터를 부모-아버지같은 존재라고 생각할 때, 원래 아나킨의 마스터가 될 사람이 누구였던가를 생각하면 이 부분이 좀 더 분명해진다. 오비완은, 아나킨에게 있어 부모라기보다는 나이차이 많이 나는 형님 내지는 좀 어린 삼촌같은 포지션이었고, 루크는 카일로의 외삼촌이다. 이 두 명의 스승은 자신의 제자에게서 강력한 힘을 보았고, 다크 사이드를 보았다. 오비완은 아나킨이 일을 저지른 뒤에, 루크는 카일로가 일을 저지르기 전에 제자를 죽이려 했지만, 두 사람 모두 제자를 막을 수 없었고, 스승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낀 제자는 검은 옷과 가면을 쓴다. 마지막에 제자의 라이트세이버가 스승을 꿰뚫지만, 오비완은 그 자리에서 옷만 남기고 사라지며 포스의 영으로 승화하고, 포스만으로 카일로를 막아 시간을 벌었던 루크 역시 같은 방식으로 포스의 영으로 승화한다. 일각에서 루크 스카이워커가 과로사를 했다는 말을 하는데, 역시 그것도 아니다. 도를 깨달은 사람이 옷만 남기고 사라진다, 이건 동양의 고전적인 우화등선을 재해석한 것이고. 그 직전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루크가 그 자세 그대로 공중부양을 하고 있던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포스의 영이 되어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간 것이다.
한편 이번 영화는 에피 5에 대한 변주이기도 하다. 젊었던 루크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했던 에피 5와 달리, 레이는 자신의 부모가 자신을 버렸으며, 술값을 위해 자식을 팔았고, 결국 비참하게 죽은 이들임을 알고 있다. 레이는 자신의 부모가 될 인물을 계속 찾고 있다. 포스가 자신의 부모를 비추어 줄 것을 기대하지만, 그곳에 비친 모습은 자기 자신이다. 레이는 한 솔로를 아버지처럼 생각했고, 루크에게서 비슷한 것을 기대하지만 그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버지의 혈통을 물려받고 아버지와 스승을 뛰어넘거나 쓰러뜨리며 나아가는 남성 영웅의 서사에 대한 변주로서, 레이는 스스로의 힘에 의해 일어나며, 여성 영웅에게 심리적으로 의지하고, 스승을 쓰러뜨리는 대신 자신의 운명으로 끌어당긴다. 그는 0(零)이고, 빛이고, 스스로가 스스로의 시작인 사람이다. 그 거울에 비친 것이 자신 뿐이었던 것은, 그녀가 공식적인 아버지 없이 태어난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마찬가지로, 이전의 혈통과 인습에 기대지 않은 새로운 세대의 시작이 됨을 보여준다. 또한 제다이 오더 중심의, 엘리트의 상징이었던 포스가 혈통도 아무것도 없었던 한 소녀에게서 발현되었다는 점과, 마지막에 저항군 반지를 가진(아마도 커서 저항군이 될) 소년의 빗자루가 움직이는 모습을 통해, 포스는 어디에나 있다는 루크의 가르침을 보여주고 있다.
그건 그렇고요. 포스로 카일로와 이어졌을 때 두 사람의 손과 손이 맞닿는 장면은 너무나 에로틱 뿜뿜이라, 그냥 손만 닿은 것이고, 그나마도 포스를 통해서 닿은 것인데도, 그 순간에 루크가 문 박차고 들어오는 게 마치 침대 위의 두 사람을 발견하고 “너희는 사실은 남매라고!”하고 외치는 아침드라마적 전개를 기대하게 할 만큼 텐션이 높았다. (……) 그들이 실제로 만났을 때, 오히려 카일로는 장갑을 벗지 않았는데, 만약 카일로가 그때 장갑을 벗었으면 이야기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 한편으로 카일로가 뭐라고 플러팅을 해도 일단 이 종간나새끼 죽어라 너같은 거 안 사요를 외치는 레이의 태도는 무척 훌륭했다. 음. 저런 연애에 서툰 복학생같은 놈에게 휘돌릴 것 아니다. 결국 카일로는 커플 실패하고, 하필 핀과 로즈는 그 앞에서 키스하고. 카일로가 흑화할 만 하네. (웃음)
로즈 티코도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는 탄광촌 출신으로, 핀이 카지노의 호화로움에 마음을 빼앗길 때에도 여기 모여있는 사람들의 부가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하고 있다. 언니인 페이지의 영웅적인 희생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이 영웅이라 생각했던 핀이 도망치려 한다고 생각한 순간 그를 공격하여 쓰러뜨리기도 한다. 그는 엔지니어고, 기술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하며, 핀이 합류하고 포가 승인하여 일이 진행된다. 도망쳐야 할 순간에 기지를 발휘하고, 핀과 함께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대가를 요구하는 코드브레이커에게, 언니의 것과 같은, 소중히 여기던 목걸이를 주저없이 건네기도 한다.
그 계획이 퍼스트오더에 알려진 바람에 저항군의 탈출 계획이 노출된 것에 대해 로즈를 탓하는 사람도 봤는데, 그건 코드브레이커가 개새끼인 거죠.
로즈는 처음에는 희생적인 영웅에 대해 생각했지만, 싸우고 도망치고 사람들을 구하며 그녀는 다른 면으로 변화한다. 로즈와 포 다메론이 변화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핀의 돌격을 막는 장면이다. 포는 퇴각을 지시하고, 로즈는 그를 무시하고 돌격하는 핀을 저지한다.
분명 앞 장면에서 홀도 제독은 자신의 몸을 던져 모두를 구했다. 분명히 영웅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죽음으로써 저지하는 것 대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구하는 방식으로 로즈와 포는 변화한다. 그녀에 대해 여자주인공에 흑인에 이어 동양인 여자까지 나오는데 외계인은 안 나온다며 비난하는 것도 봤는데, 글쎄, 같은 인간에 대해서도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인간이 외계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그렇게 다양성을 존중하시는지 모르겠다. (웃음) 그리고 핀은, 말하자면 그는 아직 미숙한 한 솔로같은 구석이 많으니까, 에피 9까지 계속 성장할 것 같고. 그의 모험은 이 로즈의 모험과 한 덩어리니까 이 점은 따로 적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잘 해 나가고 있지만, 아직 미숙한 점들이 보이는 정도일까.
ps) 장군님 포스 쓰시는 것이나 그 포즈 갖고 말이 많은데,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일단 포즈로 말하면 루크가 말하지 않았던가요. 원래 포스가 강하다고. 그리고 포즈는…… 좌표를 상대적으로 생각해서, 자신이 기함을 향해 날아가는 게 아니라 기함을 당긴다고 생각해보면 아주 적절한 포즈다.
ps2) 카일로에 비하면 사실 헉스는 백두의 전법 신묘한 전법을 쓰는 놈이지만 그래봤자 일…… 아니 찌질이 퍼스트오더충(……)으로 마지막까지 찌질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래도 포스 믿으시는 놈보다는 이쪽이 유능해 보인다.
ps3) 카일로가 포스로 만들어낸 그 한솔로의 주사위를 집어들고 그 손 안에서 사라지는 장면 좋았다. 한편 루크 언니가 얼마전에 트위터에서 루크가 희망이라면 레아는 의지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에 동의하는 한편 한 솔로는 결정적인 순간에 승패를 가르는, 그러니까 운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렇다면 이 장면은 “희망”이 “의지”에게 “운”을 가져다 주고 사라진 거구나. (오열) 하지만 루크를 움직인 건 결과적으로 R2-D2였지. R2가 영상을 틀어주던 순간에 보면서 좀 울었다.
ps4) 그러고 보니 아나킨이 마스터 된 뒤에 입던 검은 옷도 그렇고(얘는 파다완 때도 어두운 것 입긴 했지만), 루크가 다스 베이더와 싸울 때와 카일로 앞에 나타날 때 검은 옷을 입었던 것을 생각하면…… 다음 편에서는 레이가 까만 옷을 입을 건지 기대중. 그리고 기왕이면 포 다메론을 헐벗겨서 황금 사슬로 한번 묶어놓아줘도 좋겠다. 이건 진담이다.
ps5) 레이 그 마지막에 제다이 고서들 들고 튄(……) 것 맞죠…..? (웃음)
ps6) 그리고 1가구 1BB-8 보급이 시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