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무척이나 시혜적으로 자신의 어머니와 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만 보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솔직히 말해 그냥 1980년대 문학청년 감성이라는 생각만 들지만) 설령 유아인 씨가 페미니스트라고 해도,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페미니스트들을 다 비웃고 조롱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 그거 워마드가 다른 페미니스트들에게 흉자니 뭐니 조롱하던 것과 방향만 다르고 방식은 똑같다고.
근데 대구출신, 위로 누나 둘 있는 86년생 “귀한 아들”이었던 남성이 자기가 “차별적 사랑”을 “감당”하며 살았다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굉장한 자의식이며 듣는 – 남동생들에게 차별당하며 살았던 누나였던 – 여성들 화나는 소리인 것도 모르는 것 같고. 스스로 그 사랑을 원해서 받은 게 아니더라도, “그거 사실 나도 원하지 않았다고!”하고 말하는 건 다른 이야기를 할 때 해도 될 이야기다. 자기가 페미니스트라고 굳이 말할 때가 아니라. 왜, 원하지 않은 사랑을 받았다고 부둥부둥이라도 해 줘야 하나? 그 대목에서 정말 누나들과 어머니가 무슨 일을 겪고 살았는지 알긴 아는 걸까 궁금해졌다. 왜? 내 남동생도 전에 똑같은 말을 했거든. 그것도 나한테 “피해자인 척 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으면서 말이지.
‘SNS 설전’ 유아인 “나는 페미니스트다” 장문의 글 공개
ps)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부유한 게 하게 태어난 게 내가 선택한 게 아니며 나는 차별적일 정도로 압도적인 부를 감당하며 살았다”고 만수르가 회한에 차서 말하는 걸 보는 기분이다.
그나마 만수르는 직접 피부에 닿는 피해라도 준 게 없지만, 남아선호와 차별은 딱 그 세대 여자들을 태어나기도 전에 죽여버렸는데도. 말 나온 김에, 그가 태어난 1986년은 무려 호랑이 해다. 그 해 출생성비는 110을 넘어섰다. 그는 그런, 다른 여자아이들이 수도 없이 낙태당하는 해에 태어나서, 위로 두 누나들보다 편애받으며 자랐다고 본인 입으로 말하면서, 차별적 사랑을 감당하며 살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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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기가 차서 몇 줄 추가.
유아인 씨를 옹호하고 싶은 남자사람들의 마음을 뭐, 조금은 이해한다. 그래, 뭐, 사실 문화예술계 남자인 자신도 그런 글을 쓰고 싶었고 공연히 설치는 여자들 싸잡아서 메갈년이라고 욕하고 싶었고 내가 여자를 강간하고 다닌 것도 아닌데 여자들이 남자 전체를 일반화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상하고 여자들이 밥값만큼 비싼 커피 마시는 것 일침 놓고 싶은데 그것갖고 역공하고 놀리는 것도 짜증나고 자신은 엄마와 누나와 아내를 사랑하니까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고 싶은 솔찍헌 마음이 있지만(!!!!!!) 그래도 자기가 문화예술 하는 사람인데 시대에 뒤떨어져 보일까봐 그냥 아무 말 안 하고 있다가 ㅇㅇㅇ이 그런 글을 쓰니까 좋아서 북북춤을 추는 그 심정이야 짐작가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근데 참…… 미문만 가득할 뿐 문단의 응집성이 영 떨어지는 글을 두고 잘썼다고 하는 편집자를 봤더니 이건 거의 직업윤리의 문제가 아닌가 싶어 환장하겠고. 만화가와 소설가 중에도 그가 글을 잘썼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대략 정신이 혼미해져서 이 밤중에 빨간펜을 찾아서 꺼내들고 싶어지잖아…… 아니에요. 자기 마음에 쏙 드는 글이라고 해서 그게 잘 쓴 글이 아니라고…….. 그것도 글을 다루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잖아. 이건 직업윤리의 문제라고. 우리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합시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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