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레진 웹소설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열심히 보다가 한참 중단했다가, 텀블벅으로 책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며 달려가(……) 결국 코인을 지르고 완결까지 보고 만 만화. 뭐, 오늘 지른 코인이야 안녕커뮤니티하고 여혜 보는 데 마저 쓰면 되긴 하지만.
“공주는 잠못이루고”와 “시타를 위하여”의 하가 작가님이 “OH, MY GOD!”의 강지영 작가님과 함께 작업하신 만화. 스토리와 그림이 딱 나뉜건 아니고, 야마자키 마리와 토리 미키의 “플리니우스”처럼,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신 듯하다.
한줄요약하면 친아버지이자 엽색가인 황제의 손에 어머니를 잃고 친아버지를 증오하는 네째 황자 볼프강과, 아버지가 고관대작인데도 황제의 애동으로 끌려온 신수혁이, 황제를 죽이고 제위를 차지하는 이야기로, 두 인물은 그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온갖 시련을 넘어 계속 일관되게 앞으로 나아간다. 수혁의 차분함과 지성, 그리고 볼프강의 의리와 솔직함으로 그들의 뜻을 좇는 이들이 늘어나고, 상황은 몇번이나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을 맞이하며 거꾸러질 듯 보이지만, 이야기는 뚝심있게 한 주제로 꾸준히 흘러가는 모습을 보인다. 수많은 여러 인물들에게 번갈아 포커스라이트를 비추며 이야기를 늘려나가는 게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운명에의 도전을 보여주는 만화. 그런 점에서 하가님의 전작과도 통하는 구석이 있고.
지략을 쓰는 쪽이 수혁이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볼프강에게 있다. 사실 수혁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궁금한 점이 많지만, 수혁에 대해서는 정말 필요한 이야기만 딱 들어있다고 봐야 하고. BL이라고 되어 있지만 19금 씬은 없다. 하지만 씬이 없음에도 두 사람의 관계가 무척이나 농염하다. 특히 24화의 장갑 벗기는 장면은 “씨엘”에서 학교 축제 날 도터가 제뉴어리의 안경을 벗기는 장면만큼이나 에로틱하면서도, 수혁이 놓인 처지까지 감안하면 비장하기까지 했고. 이번에 책으로 볼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 무척 두근두근 하다.
ps) 처음에 제목을 보고 타이틀 이미지를 보았을 때는 king’s maker = 왕의 + 메이커(그렇습니다, 그 메이커 운동 하고 아두이노로 뭐 만드는……)인가….. 저 안경 낀 애가 혹시 신기한 도구들을 발명하는 건 아니겠지(……) 하고 1초쯤 생각했었는데 역시 그건 아니었고. 왕의 남자, 같은 느낌의 왕의 킹메이커, 같은 제목임.
ps2) (그림체 때문인지) 주인공을 한쪽씩 나눠서 만드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어쩌면 자캐커뮤처럼 그런 식으로 주인공들을 하나씩 만들어서 이야기하면서 만드셨을 것 같기도 하다. 스토리와 그림을 둘 다 협업으로 가는 건 어떤 식의 작업일까. 작업방식이 궁금했다.
ps3) 책이 레진북스가 아니라 재담미디어에서 나와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