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구전설화 속 남자 귀신들의 제사에 대한 집착에 대해 알아보자

내가 지난 상반기에 “한국구비문학대계 소재 설화 해제”를 보면서 논문준비 했었는데(그리고 망했다) 여튼 이 책에 보면 귀신 나오는 이야기가 약 120편 정도이다. 그 중 남자 귀신이 59편, 여자 귀신이 53편이다. 나머지는 동물신이나 신령한 존재들이고.

내가 쓰려던 논문은 여성형 귀신에 대한 것이었지만, 비교를 하기 위해 남성형 귀신들에 대해서도 같이 자료를 입력해 두었다. 그런데 이 남자 귀신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실로 희한하다. 총 59편에 등장하는 남자 귀신 중, 제사와 장례에 집착하는 남자 귀신은 35편에 등장한다. 뭐, 조선은 유교 국가이고 바른 죽음이나 바른 장례에 대해 끝도 없이 이야기를 했으며 유학자라고 하면 한번쯤은 귀신사생론을 짚고 넘어가야 했던 나라니까(공자는 괴력난신 같은 것은 없다고 했지만, 제사는 예의 차원에서 계속되었다.), 남자 귀신과 유교적 제사, 장례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나오는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다음 내용이다.

이 중 제사에 소홀하거나, 머리카락이 들어 있거나, 제삿날 아들과 며느리가 싸웠다는 이유로 자손에게 해코지를 한 게 네 편이다. 제사 음식에 머리카락이 들었다고 손자를 화로에 떠다 민다거나. 제사 중에 아들과 며느리가 싸움을 하자 손자를 솥에 빠뜨려 죽였다거나. 자신의 자손이 장차 자신에게 제사를 차려 줄 존재라는 생각도 없고, “며느리가 잘못했으니 벌하기 위해 손자를 죽여버리겠다”는 발상이 가능한 조상신들이었던 것이다. 뭔가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아내와 부부싸움을 하다가 아이를 억지로 빼앗고는 “네가 잘못했다고 빌지 않으면 애는 다시는 못 볼 거다”하고 협박했다는 남성 연예인에 대한 기사 같은 것 떠오르지 않나? 아내나 며느리를 협박하기 위해, 자기 아이나 손자를 인질로 잡는 것 말이다.

다음으로 기막힌 것은 살아서 찾지도 않았던 친자식(밖에서 낳은)의 제삿밥을 찾아먹는 귀신들의 이야기다. 다른 집안에 양자로 보내어 제사를 모시게 했더니 친아버지의 혼령이 제삿상에 나타나 양아버지를 몰아내고 혼자 그 상을 다 받는다는 이야기 정도는 점잖고, 외도로 낳고 모르고 살아서 한번 만난 적도 없는 친아버지의 혼령이 이쪽 아들의 제삿상에 나타난다거나. 이건 뭐, 젊어서 건드린 여자가 자기 아들을 낳고 잘 키워 줬다가 자기가 인생의 방황을 다 마치고 돌아갔더니 그 아들이 효도하기를 바라는 것 같은 뻔뻔함이 아닌가 싶다. 과연 설화와 민담은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이렇게 살아서 돌보지 않은 친자식의 제삿밥을 찾아먹는 귀신이 여섯이었다.

제사 잘 지낸 자손을 도와준 혼령이야 유교적 관점에서 교훈을 주기 위해 있을 수 있는 이야기지. 제삿날마다 나타나는 혼령도. 곤경에 처해 장례도 치르지 못하게 된 사람의 고혼이 자기 장례를 치러달라고 호소하는 것까지도 뭐,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후손에게 남의 조상 제사까지 지내게 하는 게 또 일곱. 이야, 뭐 생각나지 않습니까. 요즘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한 1990년대까지만 해도,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면서 부하직원들 끌고 들어와서 “여보, 술상 좀 봐 와!”하던 그런 아버지들 많지 않았습니까? 딱 그 생각이 나는 것임.

그럼 남자 귀신들이 제사, 장례, 그런 사연들을 들고 나타날 때 여자 귀신들은 어떤 사연을 갖고 나타났을까. 전설의 고향을 봤던 사람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겠지만, 당연히 53편 중 43편에서 원혼이 등장한다. 강간당하고 살해당하거나 실절했다고 모함을 받아 자살한 여자들 말이다. 과연, 이 구비문학 설화만 보아도 확 눈에 보이지. 비슷한 숫자의 귀신들이 나와도 여자는 강간당하고 살해당하고 실절했다고 모함받아서 자살을 강요당하고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인데, 남자는 자기 제사 제대로 안 차린다고, 극단적으로 말해 죽어서도 밥달라고 난리치는 문제로도 볼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거죠. 세상에, 구비문학이 현실의 반영이라지만 이 정도라니. 그런데다 하다못해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여자 귀신들도 직접 복수하는 것보다는 법치국가 답게 고을 원님 앞에 나타나는 마당에, 남자 귀신들은 제사 제대로 얻어먹기 위해 기를 쓰다 못해 밥상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자기 자손에게 해코지까지 하는 걸 정말 어쩌면 좋은가.

이런 설화들을 죽 읽고, 엑셀에 입력하고 그룹별로 묶고 있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대체 한국 남자에게 밥이란 무엇인가? 살해당한 여자들보다 밥 못 얻어먹는 남자들이 더 난리를 치는 이유가 뭔가 대체. 지 손으로 차려먹으면 손이 사라지나? 오늘같은 추석에는 더욱,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는 거죠. 대체 왜 그래, 제사 지낸다고 딱히 큰 복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제사 안 지낸다고 자기 자손에게 해코지까지 할 정도의 조상이면 조상”신령”이 아니라 그냥 “악귀”에 가까운 거잖아. 우리 좀, 21세기에 인본주의적으로 삽시다. 사람이 먼저라는 대통령도 뽑은 시대에. 응?

ps) 물론 남자 중에도 살해당한 귀신 이야기는 있다. 어째서인지 그 몇 없는 패턴중에 반복되는 게 “꼬마신랑이 자기보다 연상의 신부와 결혼해서, 신부의 정부에게 살해당한” 경우다. ……경험많은 연상의 여자에 대해 공포를 느꼈던 거냐 싶다. 이 패턴에서 많이 나오는 것은, 길가던 선비가 과부를 보고 밤에 숨어들다가(…..) 과부가 정부와 붙어먹고 있고 어린 남편을 살해했다는 걸 알고 의분에 끌어 과부와 정부를 살해하고 복을 받는 이야기다. 물론 남편을 살해한 과부와 정부(대부분 스님이나 하인임)가 죄를 지은 건 맞는데, 과거 보러 간다는 선비가 남의 과부를 겁탈할 생각이나 하다가, 그 여자가 스님이나 하인과 통정하는 것을 보고는 분개하여 을 죽여버리고는 “원수를 갚아주어 고맙다”며 죽은 남편의 복을 받아 과거 급제하는 것. 너무하지 않냐고. 남편을 죽이는 데 가담만 안 했을 뿐, 쟤도 예비 강간범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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