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형태

목소리의 형태

“목소리의 형태”는 왕따 경험만 있어도 제정신으로 읽기 힘들지 않나. 무척 괴롭던데. 난 이게 힐링물로 소비되는 것도, 부천 만화축제때 전시작으로 있는 것 보고도 좀 그랬다. 청각장애인이 이 작품에 대해 느끼는 더욱 각별히 괴로운 감정까지는 다 생각 못했어도(최근 트위터에서 청각장애인이 이 만화에 대해 느끼는 점에 대해 읽고 그 부분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초반 읽는 내내 계속 슬프고 괴롭고 주인공이라고 읽고 가해자라고 쓰는 녀석이 마치 저 녀석은 산소가 아깝게 왜 살아있나, 갈아서 닭모이로 만들기도 아까운게 아닌가 하는 다소 격앙된 감정까지 느꼈는데. (처음 읽을 때. 물론 두번째 읽을 때 부터는 냉정하게 셀링 포인트를 분석하면서 읽었으니까 그정도는 아니다.)

어떤 면에서 이 만화, “교정 뒤에는 천사가 묻혀있다”보다 더 괴로운게, 교뒤천은 이 상황이 얼마나 미쳐돌아가는 것인지, 가해자가 멀쩡한 얼굴을 하고 얼마나 잔인한 짓을 하는지 드러나 있기라도 하지. 목소리의 형태는 가해자가 징징거리기까지 해요. 왜 이렇게 전지적 가해자 시점이야 싶어지는 것이다.

감성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는 건 알겠다. 어린시절 실수라든가, 그런 것에 이입하는 부분도 있을 거고, 가해자인 주인공의 성장에 대해 차분히 바라보는 부분도 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어릴때는 왕따를 당하고 커서는 그의 성장의 계기가 되고, 대상화도 이런 대상화가 없지만) 그러니까 그 작품을 “좋아한다”가 리트머스까지 되진 않지만 그걸 “우주명작이다”급으로 말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 좀 많이 나이브하다, 그런생각이 들긴 한다. 아무래도 좋아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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