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논문 참고자료] (11) 조선 전기 귀신 이야기에 잠복된 사회적 적대, 강상순, 민족문화연구 56호(2012. 6. 30),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pp 97~136, 2012
102쪽 “우리는 이러한 필기류 저작들이 유가적 이념을 결코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던 사대부 남성들에 의해 씌어졌다는 점, 그 저자들은 정(正)·상(常)에서 벗어난 변(變)·괴(怪)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되 이를 자신들의 성적·계급적 입장과 이념에 따라 선별하고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을 미리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103~106쪽 조선 전기 필기류 저작 :
1. 조상의 신령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17세기 이후 필기, 야담류에는 빈번하게 출현) : 물론 조선 전기의 필기에도 제사의 대상이 될 만한 신령한 귀신이 일부 등장(손순효의 꿈에 나타난 정몽주의 신령, 묘 이장 감독관 꿈에 나타난 현덕왕후의 신령) 하지만 조선 후기의 귀신 이야기에서 주역을 이루는 직계 조상이나 근친의 귀신은 이 시기 필기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3. 인간의 형상과 성격을 지닌 귀신보다는 기괴한 사물로서의 성격을 지닌 물괴, 요물, 도깨비 등이 등장. : 인간과 소통하기를 원하고 인륜질서에 포섭될 수 있는 인귀로기보다는 인륜질서 바깥에 존재하는 귀물
4. 민간신앙과 관련, 민중이나 사대부 부녀자들에게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짐 : 사대부 필기 저자들은 인륜질서를 위태롭게 만드는 불온한 것으로 여겨 사회에서 축출하려 함. 퇴치와 회피의 대상->유가적 귀신 관념 뿐 아니라 민중과 사대부 부녀자들 사이에서 전승되어 왔던 더 오래되고 뿌리깊은 무속적·주술적 귀신 관념 또한 중층적으로 반영
104쪽 주석 “조선 전기 필기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던 조상의 신령은 『어우야담』이후부터 대거 출몰하기 시작한다. 『어우야담』에는 약 52화 내외의 귀신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12화 정도가 조상이나 위인의 신령의 출몰과 관련된 이야기이다(23%) 그런데 이 비율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더욱 높아진다. 『천예록』의 경우 34화의 귀신 이야기 가운데 16화(47%)가, 『기문총화』의 경우 40화의 귀신 이야기 가운데 24화(60%)정도가 조상이나 위인의 신령이 출몰하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신령은 인륜질서의 수호자이자 제사의 합당한 대상으로 여겨진 귀신인데, 이 신령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조령이다.”
108쪽 “성리학적 귀신론은 그와 같은 귀신의 존재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인정하지 않기 떄문이다. 그럼에도 성현 같은 조선 전기 사대부들이 그와 같은 민간신앙을 부분적으로 허용했던 것은 그것이 유교적 예치라는 통치이념을 실현하는 데 해롭지 않을 뿐 아니라 나아가 지배체제를 안정화하는 데 어느 정도 유용하다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108쪽 “마을공동체 단위의 성황신 신앙이나 가족 단위의 가신 신앙 등 일부 민간신앙을 허용해주고 이를 국가적 사전체계 속에 하위 포섭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사전체계 속에 잘 포섭되지 않는 민간신앙은 음사로 규정하여 철폐하는 것은 조선조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추진된 유교화 기획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예치를 통치 이념으로 내세웠던 명대 : 홍무자는 여제(厲祭)를 시행하여 국가 권력 바깥에 존재했던 다양한 민간 귀신들 뿐 아니라 국가의 폭력에 희생된 여귀들도 국가의 사전체계 속에 편입하여 위계화 시도)
(괄호 내용은 이욱, 「조선시대 국가 사전과 여제」, 『종교연구』 19(한국 종교학회, 2000) 참조)
108~109쪽 “지배층의 기획이 겨냥하고 있는 대상. 곧 다양한 귀신/기물들의 실재와 권능에 대한 믿음 자체는 민중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전승되어온 무속적·주술적 귀신 관념에 뿌리 두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용재총화』나 『용천담적기』 같은 조선 전기 필기에는 강직한 사대부가 민중들을 미혹시키던 요망한 귀신들을 내쫓는다는 축귀담이 많이 수록되어 있지만, 어떤 점에선 축귀담은 그와 같은 귀신의 실재를 인정한 바탕 위에서야 생성 가능한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축귀담은 민중을 미혹하는 요망한 귀신들을 혹세무민을 위해 날조된 조작이나 무지몽매에 의한 오인된 허상으로 보기보다, 강한 기와 올바른 도덕으로만 굴복시키고 퇴치할 수 있는 실재하는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109~110쪽 (조선 전기의) “비록 근친일지라도 이미 죽어서 귀신이 된 존재가 현세에 출몰하는 것은 불길한 조짐이며 그러한 귀신과 접촉하는 것은 죽음이나 질병, 재앙의 빌미가 된다고 여기는 관념은, 유명세계조차 유교적 도덕과 인륜질서가 연장된 세계로 상상했던 조선 후기의 그것과는 매우 다른, 더 오래되고 원초적인 귀신 관념을 보여 주는 것이라 판단된다.”
110~111쪽 “무엇보다 우선 주목해보아야 할 것은 원귀 혹은 여귀로 분류될 수 있을 만한 귀신들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원귀 혹은 여귀는 제대로 된 죽음을 맞지 못한, 그래서 제대로 된 상징적 죽음을 맞기까지 계속 강박적으로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는 ‘산 죽음(undead)’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살해당한 희생자의 원혼이며 그로 인한 원한과 분노를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귀신으로서, 애초 그 존재 자체가 이미 사회적 갈등과 모순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적대”
111쪽 조선 전기의 필기에 나오는 원귀, 여귀 : 용재총화에서 기유에게 나타난 유계량 귀신, 안생에게 나타난 여비(女婢)의 귀신, 홍재상에게 나타난 여승의 뱀 화신, 용천담적기에서 자신의 복위에 반대하던 유순정을 죽음에 이르게 한 현덕왕후의 신령
113쪽 “현실에서는 명분을 독점한 정치적 승자들에 의해 패자들의 억울함이나 분노가 철저히 부정당하지만, 귀신 이야기의 시계에서는 그것에 다름의 일정한 존재 근거가 부여된다”
113쪽 “어떤 의미에서 원귀나 여귀는 존재 그 자체로 이미 현실의 불공평함을, 혹은 희생자의 억울함과 분노를 전제”
113~114쪽 용재총화 유계랑의 원귀 : 기유의 집을 소란케 한 귀신의 정체를 권력에 패배하여 원한을 품고 죽은 유계랑의 원귀라고 추측한 것은 민중들의 상상력 (사후적 해석) “정치적 승자들이 독점적으로 내세우는 명분과 달리 민중들은 정(正)·사(邪)·충(忠)·역(逆) 간의 비타협적 투쟁으로 보지 않고 지배층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인식하며 그 패자에게도 울분의 근거를 인장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114~115쪽 “이 이야기(용재총화 유계랑의 원귀)에서 주목해보아야 할 또 하나의 측면은 잦은 정변 속에서 사대부가의 흥망성쇠를 목도하면서 훈구관료로서 저자가 품었을 호기심 이면의 불안이다. 사살 조선 전기처럼 정변이 거듭된 시기에 정치권력투쟁의 일선에서 살아남은 사대부들은, 설령 의식적으로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도의적 정당성을 확신하고 있었을지라고, 무의식적으로는 스스로의 오류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나 패자/희생자에 대한 죄책감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질병이나 죽음, 정치적 몰락 같은 예측할 수 없는 불안에서 자유롭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원귀나 여귀는 지배층에게 그들이 알고든 모르고든 행한 잘못과 그로 인한 피해자의 원한, 그리고 언제 자기에게 닥칠지 모르는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이나 불행을 환기시키는 불안한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116~118쪽 안생과 여비 이야기에 대해 : 용재총화, 청파극담, 태평한화골계전에 수록.
안생은 하성부원군 소유의 여비와 살림을 차렸는데, 자신의 허락 없이 혼인한 것을 안 하성부원군 정현조가 여비를 다른 노비와 혼인시키려 하자 여비는 자결하고, 그 원혼이 안생에게 나타난다. 안생은 망연자실하다가 죽음에 이른다.
명혼 모티프.
이륙 : 여비의 절의에 강조점
성현 : 원귀의 출현과 이에 대한 안생의 반응에 강조점
필기 저자들의 성적, 계급적 입장의 공통점 : “이들은 모두 여비가 원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하성부원군의 강포한 처사나 정인 안생의 우유부단한 처신에 대해서 별로 크게 문제삼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유사한 성적·계급적 편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비의 원귀에게 분노를 표출하거나 원망과 저항의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는 점 또한 양자가 동일하다”
118~119쪽 “하지만 성현이나 이륙이 비록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거나 절행이라는 유교적 이념으로 그 의미를 분식하고 있을지라도, 이 이야기에서 원귀의 출현은 성적 차이와 신분적 차별 사이에 존재하는 적대적 갈등과 이로 인한 소통의 단절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불가피하게 건드릴 수 밖에 없다고 본다.”
119쪽 (안생과 여비 이야기) “경화사족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이 이야기에서 여비는 자살을 결행함으로써 노비 또한 자유의지와 자존감을 지닌 윤리적 주체임을 천명한다. 그녀의 자실은 노비를 처분 가능한 물건처럼 취급하던 노비제도의 폭압성과 비인간성을 자연스럽게 부각시킨다. 이 때문에 여비가 원귀로 귀환하는 것은, 설령 직접적인 분노의 표출이나 저항적 행위가 뒤따르지 않을지라도, 그 자체로 그러한 폭압적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 메시지로 해독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123~124쪽 “용천담적기”의 현덕왕후(단종의 모친. 문종 즉위 후 왕후로 추봉. 그 묘는 소릉에 봉해짐) -> 단종이 폐위 및 사사되고 자신의 능도 훼손 -> 당대인들은 그녀의 신령이 원한을 품은 원귀가 되었으리라고 상상”
“세조대 이후 민중과 사대부들 사이에서 생성·회자되기 시작한 현덕왕후의 원혼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들은 이러한 당대인들의 응보론적 상상력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무도하고 반인륜적인 권력투쟁의 대표적인 희생자로 여겨졌던 소릉을 복위하는 것은 왕도정치를 내세웠던 16세기 사림들이 가장 앞서 추진했던 정치적 목표였으며, 이는 중종반정 이후 비로소 실현된다.”
126~127쪽 “소릉 복위를 적극 주장했고 스스로 사림의 정치 이념을 대변하는 유자로 자처했던 김안로는 현덕왕후의 원혼을 유가적 이념을 수호하는 신령한 귀신으로 인식했으며, 그 신령의 현현을 소릉 복위의 정당성을 확인시켜주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권력을 반인륜성과 폭력성에 대한 민중들의 비판과 원망이 투사되어 생성·유전되었을 현덕왕후의 원혼에 대한 이야기들이 『용천담적기』에 수록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민중들의 전복적 상상과 상보성의 논리에 기반하여 산생된 귀신 이야기가 사대부들의 유가적-도학적 역사의식과 공명하면서 포착된 것이 『용천담적기』의 현덕왕후 원혼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27~128쪽 “조선 전기의 필기에 수록된 귀신 이야기에서 주목되는 흥미로운 특징 가운데 하나는 유독 귀신에 지핀 사람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중략) 이 이야기들에서 귀신은 직접적으로 형상을 드러내지 않고 누군가에게 지펴서 간접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물론 이러한 귀신 지핌 혹은 귀신 들림의 현상은 한국의 전통적인 무속신앙에서 보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민중과 사대부 부녀자들에게 가낭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짐. 영적 능력을 지니고 훈습을 받은 무당이 접신을 통해 현세의 인간과 유명세계의 귀신이 상호 소통)
조선 전기 필기의 귀신 이야기에서는 귀신에 사로잡히는 주체가 주로 노비를 비롯한 하층, 그 중에서도 여성이나 소년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중략) 이러한 귀신 지핌 현상이 사회적 위계나 차별과 밀접히 연관된 사회-심리적 병리현상임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131쪽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점은 이러한 귀신 소동이나 소문이 생성·유전되는 과정에서 잠시나마 현실의 지배적인 질서나 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되며 담론의 주도권 또한 전도되기 쉽다는 점이다.
우선 귀신의 출몰과 같은 기괴한 사건이 발생하면 일상을 규율하는 유교적 도덕과 이념, 그것에 기반한 유교적 신분질서나 가부장적 권력체계는 일시적으로 무력화되기 쉽다. (중략) 그런데 이와 같은 초자연적 사건 혹은 초자연적 해석을 가장 쉽게 받아들이고 그것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사람들은 역시 유교적 이념의 세례를 덜 받았던 하층 민중과 하대부 여성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귀신론과 같은 철학적 담론을 주도한 것은 사대부들이지만, 귀신 이야기라는 기괴한 서사의 담론의 주도권을 장악한 것은 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