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 있진 않습니다

망한 논문은 포기하고, 그렇다고 한 학기 더 다녀 졸업하는 것도 어쩐지 구차해서, 일단 수료만 하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논문을 다시 쓸 마음이 들면 그때 쓰면 되는 거죠. 여튼 수 개월동안, 너무 지쳐 있었어요. 거의 한 달을, 정상적으로 자고, 배고프면 먹고, 그리고 보약을 먹고 PT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날만 좀 서늘했다면 몸이 회복이 되었을 텐데. 회복좀 되려고 하니까 이제 더위에 시달리기 시작.

놀고 있진 않습니다. 오늘 내일은 수학동아에 보낼 콘티를 마무리할 거고, 추석 전에 신간 두 개가 나갈 겁니다. 필명으로 나갈 것 같지만. 그리고 전에 썼던 것들 중 몇 편이 세상에 잠깐 다시 선을 보이게 되겠네요. 중국에 소개되는 것도 있고, 마켓에 나가는 것들도 있고. 하고 싶은 것들이 무척 많은데, 부족한 건 시간 뿐입니다.

최근 2, 3년 동안, 트위터를 통해서 다른 작가님들, 주로 여성 신인 작가님들의 고충을 들었고, 잘못된 계약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도망치는 게 좋겠다고 말해주기도 하고, 남성 작가에게 시달린 이야기를 듣고 같이 안타까워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마다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좀 더 자리를 잡았더라면. 그래서 이런 일에 좀 더 발언권이 있는 작가였다면.

열심히 할 겁니다. SF 어워드도 받고 싶고, 부천만화대상이나 오늘의 우리만화 같은 것도 언젠가 받고 싶고, 그게 아니더라도 슬슬 상을 받고 싶어졌어요. 예전에 썼던 이야기 중에서도 다듬어 내놓을 수 있는 것들을 다듬어 꺼내고, 또 쓰고 싶은 것들은 계속 써 나갈 겁니다. 기회가 되면 강연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슬슬, 작업에 대한 책을 쓸 수도 있겠죠. 시장에 나갔다가 이런저런 일로 되돌아온 아이들은 손질해서 다시 내보내고, 제 자신을 세우고, 그렇게 자리를 잡아 좀 더,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가려고 해요.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많습니다. 정말로. 또 쓰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서, 이걸 쓰기 위해 휴직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니까요. (작가가 슬럼프에 빠지면 학교에 던져놓는 게 약이 되기도 하는 게 아닐까요. 고등학교 때 뒷자리에 숨어서 만화를 그리던 그때 그 시절처럼) 그리고 자신에 대해 영업도 좀 해야겠고. 홈페이지에서, 비밀글로 되어 있는 글들도 한번 싹 정리해서 오픈할 건 오픈하고. 자기소개도 영문으로 업데이트 해 두고. 이것저것.

그래도 시작은 일단, 밀린 원고들을 해치우는 것 부터.

힘내서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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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고 있진 않습니다” 에 하나의 답글

  1. 아현 아바타

    옛날 조아라 시절 황금새의 전설을 정말 열심히 읽었던 독자입니다.
    왜 로맨스는 항상 남자가 여자를 구원하고 여자는 구원을 기다리는 구도냐며 분통을 터뜨리는 지인을 보고
    다스카와 시라노가 생각나서 여기저기 서치해서 찾아왔네요
    열심히 읽었지만 그냥 읽기만 했는데 작업 이력을 보니
    작가님께는 아픈 손가락이 되었을 것 같은 작품이네요..ㅠㅠㅠ
    이제는 오스테나의 바꾸기 전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오래 됐지만
    황금새의 전설을 정말 좋아했어요. 써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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