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의 여곡성

[망한논문 참고자료] (2) 백문임, 『월하의 여곡성 – 여귀로 읽는 한국 공포영화史』, 서울:책세상, 2008

  • 15-16쪽 (2003년 “여관방 몰카에 잡힌 혼령의 정체:라는 자극적인 홍보 문구로 관객을 유인했던 <목두기 비디오>(윤준형, 2003)에 대해) “제작진은 그 고등학생의 가족사를 파헤쳐 실제의 살인자가 버젓이 서울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영화를 마무리했고, 흥분한 관객들은 이 살인사건을 방송국에 제보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 해프닝에서 흥미로운 것은 ‘귀신의 힘을 빌려 사건을 해결한다’고 하는 옛 공안(公案) 이야기의 서사가 21세기 인터넷 공간에서도 통용되었다는 사실이다.”
  • 51쪽 “한국 공포영화는 설화나 민간 신앙에 나타나던 원귀(冤鬼), 그중에서도 여성 귀신을 괴물로 등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억울한 사연을 품고 죽은 여성이 현실에 돌아와 잔인한 복수극을 펼치는 내러티브를 장르적 특질로 형성했다.”
  • 16쪽 “<장화홍련전>이나 <김인향전>처럼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가 원귀가 되어 사또나 어사 등 관(官)의 힘을 대신할 사람 앞에 나타나 신원(伸冤)해줄 것을 청하고, 판관을 이를 해결하여 공공질서를 바로잡는 공안 이야기와 <목두기 비디오>의 차이라면 원귀가 사람 앞에 직접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캠코더라는 시각 매체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 사또나 어사가 아니라 비디오 저널리스트가 사건을 조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이 기괴스러운 이미지와 그에 대한 반응이 상호 증식하면서 담론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 21쪽 “젊은 여성의 귀신이 가장 비천하고 사악한 존재로서 귀신의 위계에서 최하위에 위치하면서 가장 큰 두려움을 주었다는 것은, 유교적 가부장제에서 벗어난 이 타자들을 어떤 식으로든 ‘호명’할 필요가 있었다는 의미인 동시에 그 ‘호명’을 통해서도 이들을 제어하기가 어려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20~21쪽 “원시종교에서부터 귀신은 숭배의 대상이었지만 인귀(人鬼)는 선한 귀신인 조상귀신과 악한 귀신인 사귀(邪鬼)로 구분되었고 그중에서도 여자 귀신은 가장 사악한 귀신으로 간주되었다. 인귀의 종류를 나누고 위계화하는 관념은 본격적으로 성리학이 유입되었던 고려 말부터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죽어 선한 귀신이 되는가 악한 귀신이 되는가는 이승에서의 삶의 양상이나 죽음의 방식, 즉 성리학적 세계관이 규정하는 ‘정상적인’ 삶과 죽음의 방식에 의거해 결정되었다. 가장 정상적인 죽음은 오래 살다가 자기 집에서 죽는 것을 말하고, 단명(短命)에 죽거나 객사하거나 자살 또는 타살로 죽는 것은 이상사(異常死)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죽어서 자손들의 봉제사(奉祭祀)를 받는 선한 조상신이 되는 조건은, 통과 의례를 거쳐 환갑 이후까지 장수하고 자녀를 두되 특히 아들을 낳아 가계를 이은 뒤 자택에서 죽는 것이었다. 반대로 이러한 ‘정상적인’ 조건에서 벗어난 삶 또는 죽음을 경험하면 원귀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혼인이라는 통과 의례를 겪지 못하고 죽은 ‘처녀귀신’의 원한이 가장 크다는 통념이 존재했던 것은, 윤리 질서나 규범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점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같은 질서와 규범에서 벗어난 존재들에 대한 두려움이 무척 강했음을 반증한다.”
  • 55쪽 “의미심장하게도 이 괴물들은 ‘가족’과 ‘기억’이라는 카테고리를 끈질기게 문제시하는 방삭으로 근대화 시기의 극장에 나타났다. 가족과 공식적인 기억은 역시 근대적인 제도로 재편되고 담론화되는 과정에서 ‘과잉 억압’을 파생시켰고, 일상과 욕망에 한계와 제한을 가하면서 그로부터 이탈된 자질들을 ‘타자’화했다.”
  • 52-53쪽 “전래 귀신담의 여귀는 ‘차이’를 구현하는 여성인 동시에 지배 질서에 부합하는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죽은 존재로서 두려움을 자아낸다. 그러나 교훈과 경계를 목적으로 하는 서사적 틀에 의해 여귀는 지배 질서의 대행자인 유력자 혹은 가부장에게 신원(伸冤)을 하소연하는 가엾은 희생자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녀들의 존재 자체는 두려운 것이지만, 서사적 틀은 그녀들을 현세 질서의 보조자로서, 공권력의 조력자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 53쪽 “공포영화의 괴물을 ‘억압된 것/타자’의 개념적 이중 쌍으로 설명한 앞의 시각을 따른다면, 한국 공포영화의 여귀 역시 당시 사회문화가 부과한 과잉 억압을 지시하는 형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여성이 불러일으키는 근원적인 두려움과, 박정희의 근대화 프로젝트에서 ‘과잉 억압’된 가치들에 대한 매혹과 불안이 중첩되어 있다.”
  • 53쪽 “반면 공포영화에서의 여귀는 희생자나 조력자의 이미지를 벗어나 스스로의 분노와 원한을 풀기 위해 가해자에게 직접 복수를 하는 존재로 변화한다. 이때 복수의 범위는 점차 가해자의 집안 자체로, 나아가 무고한 사람들 전체로 확장되기 때문에 여귀는 귀신담에 존재하지 않던 과잉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시각적인 차원에서도 여귀는 단일하고 통합된 근대적 자아의 신체경계를 위반하고 해체하는 이미지를 지닌다. 그녀들은 고양이나 여우와 같은 짐승의 신체로 변형되기도 하고, ‘자아’가 결여된 시체의 신체로 등장하기도 하며, 가부장적 질서를 ‘거세’하는 공격적인 신체를 지닌다. 신체의 표면을 뚫고 나오는 이빨, 손톱, 머리카락은 단일하고 통합된 신체의 관념을 와해시키고, 서구 드라큘라 영화에서 유입된 ‘흡혈’ 행위를 통해 타인(특히 남성)을 상징적으로 ‘거세’할 때에는 성적 정체성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특히 ‘흡혈’은 한국에서 여귀의 행위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섹슈얼리티의 발현이라는 의미를 파생시킨다.”
  • 55쪽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도 이러한 젠더화가 나타났지만, 가까운 과거에 생산된 여성 원귀를 등장시킨 공포영화는 이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동시에 그러한 젠더화에 내포된 ‘과잉 억압’의 흔적을 드러낸 정르이기도 하다. 근대적 이상이 전근대의 귀신을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매장한 후, 특히 국가적인 차원에서 근대화가 획일적으로 추진될 무렵, 공포영화라는 첨단 매체를 통해 다시 등장한 여귀는 칸트가 숭고한 대상의 속성으로 언급했던 “크고 위력적인” 존재로 나타난다. 공포영화는 때로는 이들을 전근대의 맥락 속에서 개념화화기도 하고, 때로는 이들에게 전면적이고 역동적인 마성을 부여해 공포를 스펙터클화 하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 55쪽 “우드가 1970년대 미국에서 ‘정상성’의 경계를 이루는 목록으로 정리했던 것, 즉 “일부일처제-이성애주의-부르주아-가부장주의-자본주의자” 외에 1960년대 이후 한국에는 “민족주의-근대화주의자”라는 경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 경계는 상충하면서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여기에서 벗어나는 존재들, 그중에서도 여성들은 한국 공포영화에서 무시무시하고 흉측한 괴물들로 변형되었다.”
  • 56쪽 “따라서 공포영화의 여귀들은 근대적 가족 제도의 재편 및 민족적 기억의 공식화 담론과 관련하여 새롭게 ‘타자’로 등장한 존재들, 자질들을 표상한다고 말할 수 있다.”
  • 81쪽 “여기에서 한수의 참회 방식이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 독립운동가로 만드는 것’ 이라는 점은 그의 참회가 단순히 아내 월향의 정절을 의심하여 죽게 만들었다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월향의 죽음 한수 자신의 ‘변절’을 상징하는 것이며, 한 집안에서 일어났던 참극은 이 순간 민족적인 차원의 비극으로 지평이 확장된다. 이제 <월하의 공동묘지>라는 공포영화는 여귀를 ‘민족적 원한’의 담지자로 만들며, 그녀의 복수를 근대적 가치와 제도들에 대한 응징으로 변화시킨다.”
  • 95쪽 “공포영화 형상기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질은 가부장적 가족 관계에서 원한을 품고 죽은 여성이 여귀로 귀환하여 벌이는 복수극이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초창기에는 다양한 경향의 공포영화가 시도되지만, 1965년경부터 한국의 공포영화에서는 여귀의 복수극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 125~126쪽 “전래 설화에서 공포영화로의 변이, 그리고 그 중간을 매개하는 ‘신파’의 역할. 이는 한국 공포영화에 있어서 핵심적인 특질이라고 할 수 있다. (월하의 공동묘지, 두견새 우는 소리 예시)”
  • 95쪽 “초기 공포영화에서 여귀가 구현하는 가치들은 무엇보다 ‘신파’와 멜로드라마라는 정서적 매개를 통해 관객에게 호소력을 가졌다. 1975년까지 공포영화에는 원한을 품고 죽음에 이르게 된 여성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그녀가 여귀로 귀환했을 때 벌이는 복수극에 카타르시스 효과를 부여하기도 했다. (중략) 1975년 이후 공포영화에서 여귀는 동정과 연민보다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으로 변화되고, 내러티브에서는 여귀를 ‘퇴치’하는 모티프가 강화되게 된다. 여귀의 행위가 카타르시스보다는 공포를 제공하게 되고 여귀가 동정과 연민보다는 섹슈얼리티와 외래성(外來性)을 환기하게 됨에 따라 공포영화는 동시대 여성에 대한 불안감이 노골적이고 생경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장(場)이 된다.”
  • 106=107쪽 “한국에서 전설과 사화, 민담 등의 이야기는 근대 들어서도 지속적으로 생산/재생산되었으며, 1960년 전후의 시점에서도 『한국 야담, 사화 대집성』(1959년 9월 간행)과 같은 형태로 집성되거나 월간 『야담과 실화』, 『소설계』와 같은 대중 문예지를 통해 재생산된다. 이는 공포 영화의 이야기 소재 및 내레이터의 내레이션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문제로, 좀 더 광범위한 차원에서의 이야기 전승이라는 지평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아랑형 전설’이라든가 ‘불가사리 전설’ 같은 것은 공포영화로 직접 옮겨지지만, 여타의 이야기들은 전체 스토리 차원보다는 개별 모티프들의 차원에서 공포영화에 계승된다. (중략) 이는 구비문학이 문서 형태로뿐만 아니라 시청각적인 방식으로 전승 혹은 재창조되는 하나의 형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씨받이로 들어갔다가 본처에게 죽임당한 여자의 이야기, 과거 보러 가던 유생이 깊은 산중에서 여자들만 사는 집에서 하룻밤 머물게 되는 이야기, 계모에게 죽임당한 전처 자식들 이야기 등)
  • 122~123쪽 “1965년과 1966년에 성공한 이용민의 영화들에 힘입어 1967년에는 공포영화가 붐을 이루게 된다(중략) (월하의 공동묘지, 한, 처녀귀신, 백발의 처녀 언급) 이 작품들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여귀가 한국 공포영화의 주인공으로 정착되었다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해외 공포영화의 장르적 관습보다는 전통적인 서사 혹은 동시대 서사들의 관습이 우위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 108쪽 “이와 관련하여 이야기 소재와 형식 모두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되는 MBC의 라디오 드라마 『전설따라 삼천리』의 중요성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존속해왔던 이 드라마는 각지의 전설을 이야기 형식으로 꾸며 들려주는 것으로, 여기에서 내레이터가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방식은 공포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변사 또는 내레이터의 이야기 전달 방식으로 계승되고, 또 최근까지 방영되었던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도 계승된다.”
  • 120쪽 “1960년대 공포영화의 주 관객층이 “시어머니의 인가를 받아 외출을 시도한 동네 아주머니 부대”였다는 점은 한국 공포영화가 멜로드라마와 관객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근대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생산되던 가족 비극류, 즉 ‘신파’와 멜로드라마의 이야기 원천으로서 ‘가족’내 여성들간의 갈등은 공포영화라는 신생 장르에서 낯설게 변형된다.”
  • 120-121쪽 “공포영화는 기존의 ‘선/악’구도에서 선인(善人)으로 그려지던 본처를 복수의 구현자로 뒤바꿔 놓거나 ‘금기’, 즉 조부 세대 살해의 문제를 전면화한다. <살인마>에서 공포의 대상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현모양처인 동시에 그 원혼이 빙의된 (시)어머니이다. (중략) <살인마>가 명백히 1965년 당시의 문제를 코드 전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준다. 그것은 부부(와 아이들)로만 이루어진 핵가족 구조 내에서 ‘시어머니’라는 존재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문제삼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녀가 며느리를 모함하여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원인은 다름 아닌 그녀 자신의 섹슈얼리티 때문이며, 이는 자연스럽게 아들 시목으로 하여금 ‘모친 살해’를 주저하지 않게 만든다.”
  • 129쪽 (유현목 감독의 <한>을 소개하며) “1959년 김동리가 김소월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미학’의 차원으로 설명한 ‘한’이라는 개념은 당시 많은 논의를 낳고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1967년에 이르러 이것을 ‘공포영화’의 맥락에서 받아들여 활용했던 것이다.”
  • 125쪽 “한을 품고 죽은 여인이 귀신이 되어 나타난다는 이야기는 아시아 국가들에 공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지만, 한국 설화의 여귀는 가해자에게 ‘복수’하거나 불특정 다수를 괴롭히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또 등 공권력에 기대어 설원(雪冤)을 하고 현세에서 ‘못 다 푼 한’을 풀기 위해 출현한다. 여귀의 외모는 현세의 인간들을 공포로 몰아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억울하게 죽던 당시의 정황을 ‘증명’하기 위해, 시체의 외양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흉측하다. 그렇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여성들은 동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키기에 합당하며, 현세의 사람들이 그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하는 시혜의 대상인 것이다. 그녀들은 현세의 제도 및 질서에 순응적이며 하소연으로 자신의 소망을 성취한다.”
  • 127쪽 “『장화홍련전』에서처럼, 전래 귀신담에 등장하는 여귀들은 현세의 질서를 교란하거나 어지럽히는 ‘요물’이라기보다는 비범한 판관을 돕는 조력자나 ‘증인’에 가깝다. 또한 그녀들의 ‘한풀이’는 가해자들을 징치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생 혹은 환생하여 현세에서의 행복을 이어가는 것으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이를 통해 현세의 규범을 재강화한다는 점에서, 그녀들은 ‘가엾은 희생자’라는 의미 맥락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두견새 우는 사연>에서 여귀가 ‘처녀로 죽은 여성’의 한을 풀기 위해 출현했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며, 마침내 옥화가 도령과 그 부인의 행복을 빌며 사라지는 것도 이 맥락에서 보면 지당한 행위인 것이다. 한마디로, 전래 설화의 여귀는 또 다른 ‘열녀’인 셈이며, 1967년 당시에도 한국의 대중들은 그런 여귀들을 인정하고 그녀들의 이야기를 향유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 142~143쪽 “《주역》의 <계사전>에서는 도(道)를 천도(天道), 지도(地道), 인도(人道)로 나누어 삼재(三才)라 하였는데, 귀신도 이 삼재에 결부시켜 하늘에 해당하는 천신(天神), 땅 귀신에 해당하는 지기(地祇), 사람 귀신인 인귀(人鬼)로 나누었다. 이중 인귀는 선한 조상귀신과 악한 사귀로 나뉜다. 조상귀신은 숭배자인 자손들과 혈연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후손을 지켜준다고 여겼다. 반면 사귀는 인간을 가해하는 악령들로써, 인사령(人死靈), 역신(疫神), 원귀(冤鬼) 등이 있다.”(안병국 귀신설화연구)
  • 127~128쪽 “<월하의 공동묘지>는 전래 귀신담의 여귀와 <두견새 우는 사연>과 같은 인가 드라마에서 여귀가 지녀온 기존 이미지를 활용하면서도 그것을 공포의 코드로 성공적으로 전환시킨 작품이다. 1967년 공포영화의 주인공으로 다른 괴물이 아닌 여귀가 등극하게 된 것으로 볼 때 ‘흡혈귀’나 ‘괴수’나 ‘투명인간’과 같은 외래 공포영화의 주인공들보다는 여귀라는 전래 설화의 주인공이 이제 ‘공포’로 코드화되었다는 점이 당시 관객들에게는 더 충격적일지도 모른다.(중략) 이제 해외 공포영화들을 통해 공포영화라는 장르적 기대감을 어느 정도 지니게 된 1960년대의 관객은 그러한 기대감을 충족시켜 줄 한국의 문화적 자산들 중 ‘여귀’를 지명하여 호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여귀’는 전래 설화의 여귀이기도 하면서 근대적 가족구조에 의해 재탄생된 여귀이기도 하다. <월하의 공동묘지>가 보여주듯이 전래 설화와 공포영화를 이어주는 매개, ‘신파’의 존재가 그 증거이다. 근대 세계에 들어서서도 지속되고 있는 ‘신파’는 가까운 과거의 기억을 애도하고 수요하는 하나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창작되던 이 ‘신파’는 <월하의 공동묘지>에 이르러 공포와 노골적으로 결합한다. 그럼으로써 이제 과거의 것은 애도와 수용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된다.”
  • 143쪽 “사람이 죽으면 혼은 공간으로 흩어져 승천하는데, 그 혼이 선한 것인가 아닌가는 이승에서의 삶의 양상이나 죽음의 방식에 의해 규정된다. 이때 삶의 양상이란 통과의례를 무리없이 거치면서 살았는가 하는 것이고, 죽음의 방식이란 정상적으로 죽었는가 하는 것이다. 가장 정상적인 죽음은 오래 살다가 자기 집에서 병들어 죽는 것을 말하고, 단명(短命)에 죽거나 객사하거나 자살 또는 타살은 이상사(異常死)로 간주된다. 따라서 죽은 뒤 선한 조상신이 되어 자손들의 봉제사를 받는 귀신이 되는 조건은, 통과의례를 거쳐서 환갑 이상까지 장수하고 자녀를 두되 특히 아들을 낳아 가계를 이은 뒤 자택에서 병들어 죽는 것이다.” (문상기 <원귀설화연구>)
  • 143쪽 “반대로 원귀는 이러한 ‘정상적’인 조건에서 벗어난 삶을 살다 죽은 귀신이다. 김시습은 《남염부주지》에서 염마왕의 입을 빌려, 원한을 품었거나 원망하는 혼령과 횡사나 요절한 귀신은 정당하게 죽지 못한 탓으로 기운을 펴지 못해 싸움터인 모래밭이나 생명을 버린 집에서 울기도 하고, 혹은 무당에게 의탁하거나 사람에게 의지에서 사정하거나 원망해보기도 한다고 했다.”
  • 144쪽 “원귀에 대한 이야기는 오랜 세월에 걸쳐 생산되고 있는데, 기존 연구에서는 원귀설화에 나타나는 언귀를 원사(冤死)원귀, 정욕원귀, 상사원귀, 골출원귀, 미명(未命)원귀로 분류한다. 원사원귀는 억울하게 죽은 원귀를 말하며, 정욕원귀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인 정욕을 풀지 못하고 죽은 원귀로 대부분 시집, 장가를 못 가고 죽은 원귀들이다. 상사원귀는 이성 간의 그리움의 정한을 풀지 못한 채 죽은 원귀이고, 골출원귀는 잘못된 매장으로 유골이 노출되어 그것이 원망으로 굳어진 원귀를 말하며, 미명원귀는 천부의 수(壽)를 다하지 못하고 비명에 죽은 원귀다.” (안병국, 귀신설화연구)
  • 145쪽 “한국의 귀신 관념에서는 원시종교에서부터 자연신을 숭배해왔고, 인귀(人鬼)는 선한 귀신(조상신)과 악한 귀신(원귀)으로 나뉘었다. 남효온, 서경덕, 이황, 이이 등 조선의 유학자들은 성리학적 귀신 개념이 함유하는 두 가지 성격, 즉 종교적인 성격과 자연철학적 성격을 융화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전자(前者)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즉 조선 성리학의 귀신 개념은 인간에게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나 기대를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철학적·종교적 자세로 이끎으로써, 영적 존재와의 교감을 통해 스스로를 정화하고자 하는 도덕적 의식을 강조했다.” (김현 “귀신 : 자연철학에서 추구한 종교성” / 한국사상연구회 “조선유학의 개념들”(예문서원, 2002))
  • 145쪽 “유학자들의 사유 내에서 귀신이 이렇게 영적인 존재이자 합리적인 존재로 혹은 궁극적으로는 현세의 윤리 의식을 강화하는 참조 대상으로 간주되었던 것과 달리, 민간 신앙에서는 여전히 귀신을 두려워하거나 숭배하고 있었고, 이는 무속의 형태로 지속되었다.”
  • 149쪽 (장화홍련전 이야기 하다가) “여기에서 장화의 탄생과 관련한 ‘태몽 설화’는 후대의 이본에서 사라지게 되고 환생이라는 요소, 즉 장화홍련이 소생한다든가 배 좌수의 딸로 다시 태어나 현세에서의 못 다한 삶을 산다는 후일담은 후대에 첨가된 것이다”(장화와 홍련이 이렇게 다시 태어나는 재상담은 후기 국문본에서 첨가된 것이다. 재생담의 유무에 따라 이본이 분류될 정도. 재생담을 남성 지배-가부장제의 재영토화로 해석하는 논의로는 조현설의 “남성지배와 장화홍련전의 여성형상” 민족문학사 연구 제15호. 가 있음)
  • 150쪽 “김태준은 《장화홍련전》을 ‘공안소설’로 지칭하는데, 공안 이야기는 중국 고전소설의 한 유형을 지칭하는 것으로, ‘공안’이라는 소재는 다른 유형들에서 두루 나타나기도 한다. (중략 : 삼협오의, 칠협오의가 협의류인가 공안류인가의 논쟁) 중국의 법치 정신은 인치(人治)의 체계를 따랐기 때문에, 일단 법률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거나 법을 집행하는 사람을 신뢰할 수 없을 때에는 귀신에게 호소하여 정의의 판단이 내려지길 기대했다. (포청천. 오분기 고사)”(김태준의 주장은 “교주 증보 조선소설사”, 박희병 교주(한길사, 1990))
  • 150쪽 주석 “‘공안’은 국가 공공기관의 문서를 가리키는 것으로, 관청에서 조사를 요하는 사건을 말한다. ‘공안’의 어원적 의미를 살펴보면 ① 관청의 공문서, ② 소송이나 위법에 관계되는 사건, ③ 관리가 사건을 심리할 때 사용하는 탁자, ④ 선종에서 교리를 이용하여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 ⑤ 송인(宋人)의 화본 분류의 한 갈래라는 다섯 가지 용례가 보이는데, 이 중 네 번째를 제외한 나머지 성격은 공안소설의 분류 기준에 들 수 있다”(임보순, <중국 공안소설의 이해>, 정동보 옮김, 《추리문학이란 무엇인가》(국학자료원, 1997))
  • 151쪽 “한편 한국의 공안 이야기는 “가해자에 의해서 피해자가 위기에 봉착하게 된 사건이 발생하면 사법관정과 같은 공공성을 띤 장소, 즉 사법관정에 준하는 조건의 장소에서 해결되어야 하며, 해결할 사람은 어사나 관의 힘을 대신할 훌륭한 사람으로서 사회적인 공공성을 인정할 수 있는 처결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 종류는 사또가 사건을 해결하는 관료형, 사또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부인이나 어린이가 대신하는 아지(兒智)형, 사또가 민중의 정신적 지주였던 점복(占卜者)나 예언의 도움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점복·예언형, 원귀가 된 피해자의 호소로 사또가 사건을 해결하는 원귀형으로 나뉜다. 《장화홍련전》은 이중 ‘원귀형’ 공안 이야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강현모, <공안설화의 연구>(한양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1986))
  • 152쪽 “초현실적인 존재와 초현실 세계의 판결을 도입하더라도 그 목적은 현세 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공안소설에 등장하는 귀신은 억울한 사연을 지닌 피해자인 동시에 잘못을 바로잡는 판관의 조력자로서 ‘증인’ 역할을 한다. (중략. 장화홍련전 쥐 시체 이야기) 따라서 《장화홍련전》은 억울하게 죽은 장화와 홍련 자매가 현명하고 담대한 판관을 만나 설원을 하는 이야기로서, 여기에서 장화홍련의 귀신은 두려운 존재라기보다는 가엾은 피해자이자 판관에게 증거를 제공하는 조력자라고 할 수 있다.
  • 152~154쪽 “이와 관련하여 공안 이야기에 나타나는 귀신, 특히 여귀의 외모도 사건의 ‘증거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할 수 있다. 여귀는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죽었을 당시의 외모 그대로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 칼에 찔려 죽거나 돌에 눌려 죽거나 물에 빠져 죽거나 했던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중략 : 아랑설화에서 아랑의 원귀가 가슴에 칼을 꽂고 돌을 안고 나옴. 김인향전에서 인향은 물에 빠질 당시의 외모로, 인함(인향 동생)은 치마 끈을 목에 건 채(자살할 때의 외모)로 나타난다. 홍만종의 “명협지해”에서 조광원의 앞에는 사람의 사지가 차례로 떨어져 내려와 스스로 서로서로 꿰어 한 여인을 이루는 귀신이 나오는데, 이는 겁탈에 저항하다가 돌에 깔려 죽은 여인의 귀신이다.) 이렇게 자신이 끔찍하게 살해된 정황을 증명하기 위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녀들은 당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타나며, 썩기 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여귀가 주로 사또나 담대한 사람 등 원한을 능히 풀어줄 수 있는 ‘유력자’ 앞에 나타난다는 사실과 관련이 깊다. 여귀는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고 가해자를 징치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닌 대상 앞에 나타나기 때문에 여귀의 외모는 곧 자신이 당한 억울한 죽음의 ‘증거물’이 된다. (중략 : 사또는 시체의 외모를 보고 여귀와 시체가 동일인임을 안다) 따라서 귀신담에서 여귀의 흉측한 외모는 그녀가 당한 억울한 죽음의 증거물이지, 어떤 공포스러운 효과를 ‘노리고’ 연출된 외모는 아닌 것이다.”
  • 154쪽 주석 “손진태는 여귀가 죽었을 당시의 형상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원시종교심리학의 ‘몽환설(dream theory)’에 근거하여 설명한다. 즉 “아직 채 죽지 않은 자를 방기하든지 매장하면 그 자가 영구히 귀신도 되지 못하고 사람도 되지 못한다는 신앙과 또 목이 찔려 죽었든지 유방을 절단하여 죽은 자나 의복을 피탈한 자는 유령으로서 출현할 때에도 죽던 당시의 형상으로 보인다는 신앙”에 의해, 귀신 형상이 죽을 당시의 형상으로 상상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귀신의 형상은 죽을 당시의 모습이 목격자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이고, 그 매장이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에 후생계(後生界)로 가지 못하는 떠도는 영혼에 대한 두려움이 투영된 것이다.”(손진태, 한국 민족설화의 연구, 을유문화사, 1947)
  • 155쪽 “현세를 떠난 존재로서 귀신의 욕망 또한 현세에 종속되어 있는데, 이는 후대 판본에서 장화홍련의 원혼이 계모와 그 아들을 벌한 후 저승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소생하거나 배 좌수의 딸로 환생하여 혼인을 하고 장수를 누리는 등 현세의 행복을 다하는 데서 드러난다. 이로 미루어 이들의 원한은 단순히 억울하게 죽었다는 데서 파생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 질서 내에서 가장 정상적이라고 인정받는 삶, 즉 통과의례를 무사히 치르는 삶을 살지 못했다는 데서 파생한다고 볼 수 있다. ‘정절’을 훼손했다는 모함을 받은 장화는 이 통과의례를 치르기에는 여성으로서 치명적인 결함을 안게 된 것이며, 그런 상태에서의 삶은 당시 질서 내에서 죽음과 다를 게 없다. 즉 그녀의 원혼은 가해자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세에서 명예를 회복하고 못 다한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기 위해 나타나는 것이다.”
  • 157쪽 “공안 이야기는 이렇게 ‘비정상적’인 존재들을 ‘정상적’인 삶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그에 대한 공포를 무마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여기에서 귀신은 ‘정상적’인 삶을 희구하는 존재로, 즉 공권력에 기대어 명예를 회복하거나 다시 현세에 태어나 통과의례를 거치기를 원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는 ‘비정상성’에 대한 두려움을 ‘정상성’의 표상으로 치유하는 이야기로서, 단순히 권선징악의 교훈을 일깨우는 것이라기보다 ‘정상성’의 경계를 재강화하는 일종의 훈육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귀신이라는 존재가 일깨우는 두려움은 훈육의 도구로 사용된다.”
  • 155-156쪽 주석 “득옥 설화의 경우.
    구수훈의 ”이순록“: 득옥은 인평대군의 시비로서 인평대군이 연경에 간 사이 부인이 득옥을 죽여 연못에 넣자 원귀가 되어 요변을 일으키고 무신해기의 사건을 일으켜 집안을 절단낸다.
    “성호사설”의 ‘원비작요’ : 득옥은 인평대군의 아들 정이 좋아한 계집종으로 대군 부인에게 살해당하자 요변을 일으켜 일족을 멸망
    “기문총화” : 득옥이 기생으로 등장하는데, 인평대군의 총애를 받다가 그 처남 부인의 질투로 죽음. 그 얼마 후 선혈이 수말이나 쏟아져 침실에 들어오니 대군이 금방 침질에 걸리고, 그 머리맡에 득옥의 모습이 보이고, 대군은 세상을 떠남.
    원귀가 직접 복수하는 방식에 대해 안병국은 “귀신설화연구”에서 “직접적으로 철저한 복수 행위를 함으로써 신원(伸冤)의 효과를 배가한다는 점도 있겠으나 복수 상대가 대군 일파이므로 간접적인 복수 실현에는 난점이 많다는 점도 아울러 고려된 듯 하다”고 해석. 즉 지방 사또나 관리로서는 대항할 수 없기 때문에 원귀가 직접 복수.
  • 157쪽 “하지만 이는 공안 이야기를 기록한 지식층, 즉 당대 지배 질서를 지지하던 계층의 시각만이 반영된 것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다. 이 이야기는 민중들 사이에 떠돌던 귀신담을 기록한 것이며, 원귀들에게 현세적인 차원에서 보상하는 모티프는 이미 거기에 내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장화홍련이 소생 혹은 환생하여 양반집 자제와 혼인하고 잘 살았다는 후일담이나 아랑을 열녀로 봉하고 아랑각을 세웠다는 이야기들은 ‘비정상’적이고 비천한 존재들을 현세 질서 내에 포용함으로써 스스로의 두려움을 치유하려는 민중의 소망 충족적인 표상 행위와, 공권력의 명철한 힘에 의해 ‘정상성’의 규범을 확증하려는 지배층의 표상 행위가 타협한 결과인 것이다.”
  • 156~157쪽 “그러나 귀신이라는 존재가 불러 일으키는 두려움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중략) 귀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출현은 그 자체로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는다. 그것은 이들이 구현하는 ‘비정상성’ 자체가 공포스러운 것임을 반증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당대 질서와 규범에 비추어 ‘정상적’인 삶, 즉 통과의례를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죽은 귀신은 악귀, 즉 원귀가 된다고 알려져 있었으며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두려운 존재로 간주되고 있었다. 이는 귀신이 인간과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두려움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인간을 표상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두려움이다. 낙태 누명을 쓰고 죽은 처녀, 강간당할 뻔 하다 죽은 처녀, 살해당한 처녀, 이들은 당대 규범에서는 가장 비천하고 비정상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 168쪽 “아랑형 전설에서 아랑은 통인이나 관노의 청을 거절하여 죽임을 당한 후 버려지는데, 원귀로 다시 출현하는 이유는 가해자 남성의 죄상을 밝혀내기 위한 것으로, 직접 그 사람의 이름이나 신분을 사또에게 고하여 벌 받게 하기도 하고 나비가 되어 범인의 근처에 맴돌아 범인을 밝혀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든 아랑의 원귀는 사또라는 권위자에 의탁하여 공권력에 의해 범인이 죄값을 치르도록 만드는데,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것은 공안 이야기의 모티프이기도 하다.”
  • 169쪽 “아랑형 전설도 이러한 ‘비정상’적인 존재를 지배 질서와 규범 속으로 통합하려는 서사적 시도를 보여주게 되는데, 그것은 아랑의 죽음에 대해 일종의 ‘보상’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초기 아랑형 전설에서는 아랑의 신분을 관기로 설정하고 있는 반면 후대로 가면 양반의 딸이나 사또의 딸로 그리는데, 이러한 신분상승 과정은 아랑 사건에서 ‘정절’이라는 유교적 덕목이 부각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원형에 가까운 전설의 경우 ‘어느 고을의 기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후대로 올수록 그 배경이 영남의 어느 마을로 축소되고, 다시 영남루와 아랑각 등의 증거물과 결부되어 지명 전설로 변화되면서 아랑을 밀양 태수의 딸로 설정한다. 한 연구자는 이러한 신분 상승의 이유를 “정절이라는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남성 중심 사회의 윤리 규범에 맞추어 본 전설을 차츰 윤색해 나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춘향전』의 전승 과정에서 일어난 변화와 동일한 변화라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 171~172쪽 “장화와 홍련에 대해서는 이루어지지 않던 ‘도덕화’가 아랑에게는 ‘열녀’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이러한 이데올로기적인 보상과 관련이 깊다. 이러한 ‘도덕화’는 ‘비정상’적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시키는 서사적 장치이면서 아랑의 자해와 죽음을 만들어낸 진정한 이데올로기적 기원을 은폐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아랑의 죽음은 통인이라는 개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제도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타살’이었고, ‘열녀’라는 보상은 이 죄책감을 제도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방식으로 잠재우는 수단이다.”
  • 174쪽 (아랑형 공포영화에서) “여기에서 여귀들이 곧잘 내뱉는 “너희 집안의 씨를 말리겠다”라는 말은, 가해자가 단순히 어느 한 개인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메커니즘임을 간파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정조’를 곧 ‘목숨’과 바꿀 수 밖에 없게 만든 메커니즘 자체에 대한 복수극. 아는 ‘아랑형 전설’에서 ‘열녀’라는 이름으로 보상하고 봉합했던 가부장적 유교 관념의 균열이 파열되는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아랑이 정조를 지키기 위해 저항하다 목숨을 잃었다면, 이 영화의 여귀들은 정조를 뒷받침하는 가부장제 메커니즘의 단위인 가족, 나아가 가문 전체를 멸절시키려고 한다. 그녀들은 자신을 봉했던 열녀 비석을 깨면서 무덤을 가르고 나와 “씨를 말리”겠다고 한다.”
  • 175쪽 “ 전래의 귀신담이 공포영화로 변이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모티프의 변형 및 상상력의 확장 : 공포영화의 주인공인 ‘여귀’가 이전 귀신담에서 차지하던 위상과 공포영화에서 차지하던 위상의 차이를 중심으로 하여 변이의 일반적 앙샹을 다시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이는 여귀의 형상이 이전의 서사물에서와 달라졌다는 점, 여귀의 출현 이유가 달라졌다는 점, 이야기의 기본 틀은 기존 서사물에서 차용하였으나 여귀의 성격과 행위 방식이 이전과 달리 위협적인 것으로 변모했다는 점, 이와 관련하여 여귀를 퇴치하는 모티프가 등장했고, 거기에 불교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
  • 178쪽 주석 “강진옥은 한국 문학에 ‘복수’의 전통이 미약하다고 하는 이혜순(<‘김학공전’에 나타난 복수플롯의 수용양상>, 《비교문학 1》(중앙출판, 1981) 의 논의를 언급하며 “복수에의 의지조차 직설하지 못하는 것이 사회구조적 억압 때문이라면 나름의 대응책으로써 문화의 원형으로 자리하고 있는 원혼 모티프가 대안적 방안으로 강구” 되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엄격한 제도와 규범 체계 아래에서 개인의 자유와 욕망에의 추구가 집단적 차원의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 ‘원혼 설화’가 갖는 문화적 의미라는 것이다. (강진옥 <원혼설화의 담론적 성격 연구> 《고전문학연구》 22호(2002), 58~60쪽)
  • 179쪽 “좀 더 넓은 지평으로 시야를 확장하자면, ‘복수’는 자본제적 교환 논리의 서사적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략) 공안 이야기는 현명하고 자애로운 판관이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로서, 법치보다는 인치(仁治)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선악을 밝힌다는 점에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리에 바탕을 둔 것처럼 보이지만, 이때 선악을 가르는 기준은 유교적 규범에 있기 때문에 근대적인 의미의 합리적인 판단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귀신이나 점, 예언 등의 초현실적인 힘을 빌려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들이 명확한 증거를 바탕으로 하기보다 죄인의 죄책감을 자극하거나 그를 위협하여 자백을 이끌어 내는 것도 그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비록 가해자라 하더라도 효자와 열녀라면 그 죄를 사해주는 이야기, 천재지변으로 전 재산을 잃은 사람의 손해를 여러 사람의 십시일반을 통해 해결하는 이야기 등은 이성에 근거한 판결보다는 덕에 바탕을 둔 판결을 칭송하고 있다. 반면 공포영화에서 죄인을 벌하는 것은 피해자인 여귀 자신이다. 그녀들은 철저하게 ‘받은대로 갚는’ 교환 논리에 의해 목숨에 대한 대가를 목숨으로 요구한다.”
  • 197쪽 (하녀, 화녀, 충녀 등 김기영 감독 작품 소개하며) “남성의 총애를 다툼으로써 세계 질서 내에서 안정된 지위를 확보하려던 이전 서사물의 처첩 갈등 유형과 달리 이들 작품에서 처첩 갈등은 ‘부르주아 가정’이라는 지상 목표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것이며, 거기에서 남성의 자리는 무의미하거나 도구적으로만 요구된다. 주인 남자의 ‘쥐꼬리만 한’ 월급에 불안해하며 밤새도록 부업을 하는 (본)처와, 거의 원시적이라고 할 만한 섹슈얼리티를 충족시키고 중산층 가정을 소유하기 위해 주인 남자에게 집착하는 하녀는 모두 이 남성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
  • 182쪽 “사실 귀신을 ‘퇴치’하는 문제는 《삼국유사》에 실린 것과 같은 불교 고승의 활약담을 제외하고는 전래 귀신담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거나 미미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민간 신앙의 차원에서는 핵심적인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귀신“ 인용, 양귀법들을 소개하며) 여기에서 그는 지식인들의 귀신론보다는 당시 조선인들의 일상 생활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던 민간 신앙의 귀신관에 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조선의 귀신 신앙이 ‘양귀 신앙’이라는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 민간 신앙은 곧 귀신 퇴치 신앙이었다고 본다. (중략) 민간 신앙에서는 다양한 방법(중략)을 통해, 그리고 주로 마을 무당의힘을 빌려 귀신을 쫓아낸다면, 공포영화에서 그것은 철저하게 불교도나 스님의 공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여귀가 나타나 가부장 및 그 가족 전체의 몰살을 시도할 때, 혹은 좀 더 큰 규모로는 왕실과 ‘세계’를 마성으로 물들이려 할 때, 예외없이 불교도나 스님이 나타나(때로는 그 가족의 유일한 생존자, 즉 장자와 더불어) 그녀를 물리친다.”
  • 193쪽 “1960년대에 탄생한 공포영화는 멀리는 고소설이나 신소설 및 식민지 시대의 신파극에, 가깝게는 전쟁 후 멜로드라마 및 신파 멜로물의 서사 맥락에 기대어 가족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공포의 문제를 다룬다. 처첩 갈등과 관련된 공포영화는 본처와 씨받이의 관계나, 찬모나 식모 등 하층 계급의 여성들과 근대적 가정의 어엿한 안주인 간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중략) 이 문재는 근대적 욕망 및 섹슈얼리티와 관련하여 그리 단순치 않은 양상을 보인다.”
  • 199쪽 “전근대 가정소설에서 선인의 ‘원한’은 구원되어야 하는 것,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이었으며, 한국의 전통적인 귀신담에서 ‘원한’이란 ‘푸는’ 것, 즉 현세 질서 속에 다시 자리 잡음으로써 해소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포영화에서 ‘원한’은 ‘갚는’ 것으로, 즉 현세 질서를 교란시키고 파국을 향해 치닫는 것으로 변형된다. 그것은 ‘인과응보’라는 전래 관념의 경계를 넘어서는 ‘과잉’된 파괴로 그려지며, 그로 인해 어느새 선인은 악인과 자리바꿈하거나 중찹된다. 현실 세계에서 희생되더라도 선인이 지니고 있는 것으로 그려졌던 도덕적 정당성과, 그로 인해 환기되던 비관주의적 아이러니는 여기에서 소거된다.”
  • 205~206쪽 “전래 이야기들에서 ‘과부들만 사는 집’은 상반되는 두 가지를 표상한다. 하나는 ‘열녀’로서, 가장과 남편들이 일찍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절하며 여성들끼리 가문을 지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흉가’로서, 주로 귀신담에서 귀신에 씌우거나 과부들 자신이 귀신인 채 살아가는 상태이다. 전자는 가부장적 가족 구조를 철저하게 유지하는 ‘정상성’의 표상이라면 후자는 가부장이 부재하는 ‘비정상성’의 표상이지만 이 둘은 모순적인 관계라기보다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후략)”
    시어머니=집안의 가장으로 군림할 뿐만 아니라 마치 가부장처럼 며느리들의 섹슈얼리티를 감시. 과부 집안의 우두머리로서 가부장의 대행자.
    이 가부장/시어머니가 중첩된 괴물은 요행히 첫날밤에 임신한 막내며느리(불교의 부적을 몸에 새김. 불교+가부장제의 적자)에 의해 제거됨. (영화 <여곡성>)
  • 243쪽 “한국인의 진혼이자 위령행사인 망자굿은, 망령의 참회와 회개와 삶의 허무에 관한 인식들이 바탕이 된 절대자에의 귀의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망령이 이승에서 못 다했던 일, 마음을 두고도 펴지 못했던 일을 대상하는 것이 이 땅의 진혼이고 위령이다” 김열규, 《한맥원류》(주우, 1981),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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