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라이온

3월의 라이온 – 우미노 치카

3월의 라이온
3월의 라이온

기묘하게도 힐링 만화로 알려져 있는 만화. 참고로 말하지만 같은 작가의 전작 “허니와 클로버”가 학원 청춘 로맨스와는 거리가 멀듯이, 이쪽도 힐링과는 거리가 멀다. 고양이들이 나오고 귀여운 세 자매가 나올 때마다 온갖 “카와모토 가의 저렴이+맛나니 비법 레시피”로 먹방을 찍고 있다고 해도, 그건 이 무겁고 가슴속을 깊숙하게 후벼내는 처절한 이야기를 독자들이 읽을 수 있게 만드는 당의정일 뿐. 이 이야기는, 소년의 투쟁의 기록인 동시에, 집에서도 세상 어느 곳에서도 자기가 있을 곳을 찾지 못한 모든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거짓말 이었다.
내 인생 최초의, 살기 위한……
그리고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그렇게 해서 막은 인정사정없이 열려 버리고,
나는 프로 기사 가정의 아이가 되었다.

뭐, 그래서 이 이야기는 자기가 있을 곳을 찾아 헤매는 아이를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코타츠처럼 아늑하고 따뜻한 카와모토 세 자매는 키리야마 레이가 설령 패배하고 만신창이가 되어서라도 돌아왔을 때 반겨주는, 소위 타다이마 오카에리를 찍을 것 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과연 레이가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꼴로 그 곳으로 오겠느냔 말이지.

그는 중학생 때 프로가 된 역대 다섯 번째 일본 장기 기사이며, 현역 고교생으로서 전국에 160명밖에 없는 프로 쇼기 기사 중 한 명으로 활약하는, 이미 어른이나 다름없는 입장이고, 시작부터 지금까지 시종일관 강한 파이터의 모습을 보여 왔다. 소년 만화에서 넘어야 할 벽은 흔히 “아버지”인데, 이 만화는 시작도 하기 전에 친아버지와 가족들을 죽여버리고, 레이는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프로 기사이자 “키워준 아버지”를 맨손으로 두들겨 패듯 그에게서 배운 장기로 승부해 이기고 돌아간다. 카와모토 세 자매의 집은 이 소년에게 있어 은인의 집이자 지키고 싶은 낙원이지만, 그는 이미 낙원을 잃은지 오래다. 그러니 그런 급작스런 방법으로 연애 단계 같은 것은 아득히 뛰어넘어 가족이 되기로 선언해 버렸다고 해도, 아마 이 만화의 결말에서 레이는 세 자매, 특히 은혜를 갚겠다고, 결혼하겠다고 생각했던 히나와 이어지긴 어려울 것이다.

조금 더 심란하게 말하자면 레이는 아마도 자신을 키워 준 스승이자 양아버지의 딸, 코다 쿄코와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아버지를 넘어선 소년은 결국 아버지와 화해하게 된다는 것, 쿄코는 본인이 장기를 계속 하려다가 좌절당했으며, 아버지보다 강한 자인 고토에게 매달리는 동시에, 그걸 레이에게 과시하듯 내보인다는 것, 남매도 남도 될 수 없는 두 사람이 과거에도 지금도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서로를 찾는다는 것. 고토가 그냥 쿄코를 옆에 둔 채 쿨쿨 잠들어버리는 것과는 달리, 레이는 쿄코를 계속 의식하며 그 밤은 두 사람 모두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는 것 등등. 두 사람이 원래 서로 갖고 있었던 미묘한 감정과, 레이로 인해 비교당하고 아버지로 인해 꿈을 좌절당했던 쿄코가 아버지와 화해할 길이라는 것, 그리고 레이는 코다 아버지에게 은혜를 갚고 싶어한다는 점 등등을 생각할 때, “양자이자 제자인 레이가 코다의 딸인 쿄코와 결혼”하는 형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런데다 장기에 대해, 장기 기사가 되려는 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쿄코는 젊은 명인의 짝으로도 꽤 잘 어울릴 테니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 카와모토 가의 세 자매가 나오는 장면 장면은 그저 만화경같은, 행복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꿈처럼만 느껴져서, 이 만화를 보면서 힐링의 힐 자도 떠올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코다 아버지는 무척 흥미로운 사람인데, 딸의 관점에서 그는 장기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 머릿속에 장기밖에 없는 사람이고, 그에 어울리는 실력도 관록도 갖춘 인물이다. 레이와 함께 나오는 인물들이 워낙 쟁쟁해서 밀리는 듯 보이지만, 전국 160명밖에 없는 프로 기사, 그 중에서도 중년의 나이에도 꾸준히 2, 30등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레이의 재능을 알아보고, 옛 장려회 시절 라이벌이자, 장기를 그만두고 의사가 된 친구 키리야마가 사고로 죽자 그 아들인 레이를 데려다 내제자로 키운다. 그의 아들인 아유무와 달리 레이는 수도없이 연습을 거듭했고, 마찬가지로 죽을만큼 노력하고 승부를 거듭한 끝에 프로가 되었던 코다 아버지에게 있어 레이는 자기가 낳은 아이들보다도 더 가까운 존재였다. 물론,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이만한 싹수가 없다는 이유로 쿄코의 꿈을 짓밟을 만큼, 그 재능 자체에만 집착하고 있긴 했지만. 아니, 어차피 이 만화의 인물들 역시 허니와 클로버의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재능의 벡터를 따라 움직이고 있으니 납득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레이 역시도, 병약한 몸에 모험가의 심장을 지닌 라이벌, 니카이도 하루노부나, 꺾여도 꺾여도 다시 일어나는 시마다, 그리고 다른 대국상대들의 영향을 받는다. 레이 주변의 기사들은 모두 그 재능의 벡터를 따라 계속 상대를 만나고 부딪고 움직이며, 그 안에서 드라마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벡터의 정점에, 소야 토지가 있다.

변하지 않은채.
빛바래지 않고.
나태하지 않고.
때묻지 않고.
압도적인 힘으로.
그곳에 조용히 머물러있다.

노력을 갖춘 천재, “우리가 사는 세계의 신의 아이” 소야 토지. 처음 만났을 때 무척 추워보이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단단한 세계 안에서 정점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 그러고 보니,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몇 편의 소설과 한 편의 만화에서 현실 대신 “숫자로만 이루어진 차갑고 아늑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수학자 캐릭터들을 만들어 냈었는데, 소야의 캐릭터를 보며 그 캐릭터들 생각이 났다. 창작하는 사람이 그런 캐릭터를 어떤 의미로 만들어내는지에 대해서도 잠시.

그 소야와의 대국을 통해, 레이는 변한다. 그 대국은 레이가 느끼기로는 “세례를 받는 듯한” 것(반짝이는 물로 뒤덮이는 이미지가 세례 아니면 뭐란 말인가)이었고, 소야는 복기 후 손을 들여다보는 레이에게 “그런 거야”라고, 염화시중의 미소와 같은 말을 남긴다. 세례를 통해 신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그리고 염화시중의 미소를 통해 후계자로 인정받는 것, 그 대국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중학생 때 프로가 된 천재소년으로 장차 명인이 될 것이라고 기대와 질투를 받고 있는 레이는, 그 대국을 통해 그야말로 거듭난다.

그러니까, 이기고 싶다.
이기고 싶다.
이기고 싶다.
뭔가 하나만 이라도, 강한 존재이고 싶다.
그렇다, 나는……
필요한 사람이고 싶다.

사실 레이의 얄미운 점이 이 점인데, 그렇게 각성을 해 놓고도 그는, 자신이 “살기 위해 장기를 좋아한다고 거짓말을 했”고, “있을 곳을 찾기 위해 이기고 싶”으며 카와모토 가의 세 자매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들을 지지하기 위해 자기가 확실하게 대국에서 이겨서 상금을 좀 더 많이 벌어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불순한 마음으로 대국을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장기의 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살기 위해 프로 기사 가정의 아이가 되었다고 해도 모두가 중학생 때 프로가 되고 장래의 명인 후보로 여겨질 수도 없고, 있을 곳을 찾고 세 자매를 돕기 위해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렇게 승승장구할 수는 없는 거라고 세상에. 이건 거의 장기의 신이, 까딱하다간 레이의 아버지에 이어 레이도 장기가 아니라 의대 진학 루트로 가게 될까봐 일가족을 전멸시켰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 계속 “난 장기의 신을 속였고” “이런 불순한 마음으로 장기를 두러 가고 있고” 뭐 그러고 있는데 이녀석 정신차려, 넌 천재라고! 심지어는 장기만 잘 두는 게 아니라서 히나를 몇달만에 명문고등학교에 진학할 만큼 가르칠 수 있었고, 그건 공부도 잘 했다는 이야기인데, 알고 보면 레이네 아빠는 장려회에 다니며 프로가 되려고 노력하다가 진로를 바꿔 의사가 된 인간이잖아. 한마디로 재능의 금수저란 이야기인데. 레이가 자신이 코다 가를 파탄내고 말았다는 죄책감을 품는 것 자체는 이해하고도 남지만, 누가 봐도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갖춘 놈이 자기는 노력만 죽도록 했고 신을 속였다고 삽질하고 있는 꼴을 라이브로 매일 보고 있으면 코다 아유무가 아니라 누구라도 비뚤어질 것이다. 그러니 독자 입장에서는 레이가 죄책감을 느끼기보다는 이제 슬슬 자신의 재능에 대해 납득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해도, 그가 자신의 재능을 자각하지 못한 것이 짜증나진 않는다. 점점 각성해 나가고 있고, 중간에 니카이도의 잔소리를 통해 자신이 생각보다 승부욕이 강하다는 것도 깨달았고, 무엇보다도 코다 가에 인사를 가는 에피소드를 보면 그도 그만큼 성숙해졌으니, 곧 자신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겠지. 그렇게 이 만화는 레이의 성장기이자, 있을 곳을 찾지 못한 어린아이가, 자신의 재능에 의지하여 필사적으로 싸우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다. 레이는 사랑하는 가족을 난데없는 사고로 잃고, 양부모님 댁에서 있을 곳을 찾지 못한 채, 그저 장기판에 의지하여 버텨 나갔지만, 현실에서는 자신의 가족에서도 그렇게 노력을 이해받지 못하고 성과는 조롱받으며 소외되고 괴롭힘당하며 필사적으로 버티다가, 자신이 이 집의 불행의 근원이라고, 자신만 없으면 모두가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며 집을 떠나는 아이들은 얼마나 많은지.

어째서 이 세상은
사랑받는 자와 사랑받지 못하는 자로 나뉘는가.
누가 그것을 나누었을까.
─어디에서 나누어지는가.

어떻게 해도 원가족에게서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필사적으로 자기 길을 찾으려는, 질척거리는 끔찍한 감정들을 떠올리며, 현실이라면 레이가 코다 가로 돌아간들 행복해질 것 같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유무는 어떻게 치워버리고 쿄코와 이어져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계속 남는다. 읽을 때마다 그런 사심을 느낀다. 이렇게 가슴의 밑바닥에 있는 것을 긁어대는 만화를 읽고, 무슨 수로 힐링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지난 겨울 하카타 역에서 “우미노 치카의 세계” 전시회를 보고, 돌아와 다시 1권부터 꺼내 읽고, 육아에 바빠 미처 못 샀던 11권을 구입해서 읽으며 몇 번이나 울었다. 하필 우울증 주기와 맞물려 심각하게 내상을 입었다. 다시 읽고 또 읽으면서 작가에게 묻고 싶었다. 자신을 있을 곳을 찾고자 하는 것이 그렇게나 큰 욕심이냐고. 대체, 가슴 속의 질척거리는 것들을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그릴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하지만 독자로서도, 레이가 따뜻하고 포근한 행복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바랄 수가 없다. 이 이야기에 그런 결말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그만큼의 그릇을 갖지 못한 독자는, 레이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승급하는 쇼기의 기물들처럼 앞으로 나아가며 더 높이 올라가고, 상대의 재능조차 자신의 경험치로 흡수하며 나아가, 그저 싸우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며, 작은 대리만족이나마 느낄 수 밖에.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폭풍의 너머”에 있는 것은
그것은
단지 더욱 세차게 휘몰아치는 폭풍뿐인 것이다.
그 답은, 저 폭풍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묻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ps) 그건 그렇고 신경쓰이는 게 있는데. 소야 토지는 21살에 명인이 되었고 10년째 변치 않은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이게 레이가 고1때이고 2년 지나 현재 고3이니까, 현재(11권) 소야 토지의 나이는 33세. 그리고 선생님은 소야 명인과 시마다 8단과 동갑이라고 했단 말인즉슨.

그러니까 시마다 8단은 33살인데 고토보다 나이들어 보인다는 겁니까. (두둥)
33살에 발모제 광고라면 거절할 만 하지. 암요.

ps2) “허니와 클로버”에서 상이나 명예를 노리지 않고 자기 작업에 몰두하려는 하구미에게 “비겁하다”고 말하며 속상해하던 교수 이름도 코다 교수던데, 우미노 선생님, 코다라는 이름에 무슨 감정이라도 있습니까. 이쯤되면 코다 교수는 코다 마사치카 8단의 누나 쯤 되어서, 둘이 앉아서

“아니, 우리 학교에 천재가 있는데 걔는 상도 명예도 다 싫다고 그러면서 자긴 쌀 살 돈과 물감 살 돈만 있으면 된다고 그러잖아!”
“누님, 제가 맡고있던 키리야마네 아들 아시죠?! 그 녀석 중학교도 졸업 전에 프로가 되어버리더니.”
“아니, 그녀석 진짜 굉장한걸.”
“굉장하죠. 그런데 어떻게든 혼자 독립해서 살 수 있으면 된다고 나가 버렸어요.”
“아니 왜들 그래.”
“그리고 정말 생활비만 있으면 된다면서 대국료는 제 통장에 넣고 있다고요!!!!!”
“아, 짜증나네. 돈은 언제든 벌 수 있다, 뭐 그런거야?”
“아니, 우리 레이는 착한 애니까 그렇진 않겠지만.”
“우리 하구미도 착한 애거든? 하아, 하여간 천재들이란……”

하고 뒷담화 열심히 할 것 같지 않습니까.

ps3) 완결나면 몰아서 감상 쓰려고 했는데, 힐링 만화라는 소리가 하도 여기저기에서 나와서 “이게 무슨 힐링 만화란 말이냐!”하고 소리지르고 싶어서 썼다.

ps4) 이 만화에서, 확고한 재능, 명인의 가능성 가진 사람들이 잃은 것들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레이는 가족을 잃었다. 시마다의 위장은 떼어버리고 싶을 만큼 엉망이다. 깔리는 복선들만 보면 (묘사를 보면 작가의 무한 애정을 받고 있는 듯한) 니카이도는 이 만화 끝날 때 까지 살아있기만 해도 다행일 것 같다. 고토의 부인은 깨어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소야는 청력을 잃었다. 이런데도 레이에게, 세 자매와의 행복하고 따뜻하고 포근포근한 미래가 과연 존재할까? 이렇게나 잔인하게, 마치 그들이 재능의 대가로 잃은 것 처럼 한 가지씩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작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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