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한푼벌면내일두푼나가고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 – 우석훈, 다산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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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한푼벌면내일두푼나가고

오늘도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데, 꼬꼬마는 사과, 바나나, 키위, 과일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면서 사달라고 했다. 과연, 아는 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다는 건 이런 말이었다. 뽀로로 양치질 책이야 전부터 때 되면 사 주려고 했던 것이니 선뜻 바구니에 넣었지만, 한 번에 책은 하나씩만 사주기로 했는데 타요 그림책도 갖고 싶어서 빙빙 돌았다. (그리고 남들 마트에서 장 보는 시간 두 배를 마트 옆 서점에서 보내는 나에 이어 자식까지도 토이자러스 전체를 한 바퀴 돌 만큼의 시간 동안 책 코너를 몇 바퀴를 뱅뱅 도는 꼴을 보고 세이는 책 때문에 이사를 해야겠다고 중얼거렸다)

아기가 태어난 이후로 가계부는 파란만장해졌다. 오래 쓰지만 튼튼해서 남의 집에서 아기들이 자라고 나면 애물단지가 되는 물건들, 잠깐 쓰는 물건들은 전부 주변에서 물려받고, 그러다 보니 그 물건들을 물려주신 집들에서 아기 옷도 한보따리씩 싸 주셔서 육아용품 자체에는 큰 돈이 안 나갔지만(다만 물려받은 옷 중에 치마가 많아서 체육복 바지 대여섯장과 내복 세 벌, 그리고 조리원에서 집으로 데려올 때 입힐 배냇저고리는 직접 샀지만 그 외에는 옷도 한 장 안 사고 두 돌을 맞고 있으니까) 그것말고도 돈 사라지는 게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이 굉장한 제목의 책을 안 읽어볼 수가 없었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그것도 경제학자가 쓴 육아책이라니.

과연, 쓸모가 없지는 않았다. 우석훈은 적극적으로 아기를 키우고 아기 물건들의 효용성을 따지고 일하는 아내의 현실을 통해 경제정책이나 구조적 문제를 (너무 진지하진 않게) 짚는다. 일하는 아내, 상대적으로 시간을 조금 더 유동적으로 쓸 수 있는 경제학자 남편. 물건 구입이나 아기를 키울 때 정석으로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의문과 육아의 기회 비용, 두 아이를 키워내면서 영어유치원에 보내야 하나? 돌잔치는 해야 하나? 부모가 일을 하면서어떻게 이유식을 책에 나온 그대로 하겠냐? 같은 실제적인 이야기까지. 일단 아기를 키우는 남자 입장에서의 국내산 육아에세이가 많진 않다보니(있긴 있다. 그런데 너무 감성적으로만 접근해서 쓸모가 없다) 참고할 포인트가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쓸모있는 건 책의 앞부분 60% 정도까지이고, 뒷부분은 흔한 감성 에세이같은 느낌이어서 뒤는 설렁설렁 읽었지만.

하지만 읽으면서 더 생각을 곱씹게 된 부분은 저자의 육아나 두 아들들 이야기가 아니었다.

저자의 부모님은 부부교사였고, 아버지는 못 채운 교감 승진점수를 어머니는 이미 다 채운 상태에서, 어느덧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20대 초반의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해서 어머니가 승진을 포기하시길 바랐고(아아아아아아악!!!!!!!) 어머니는 평교사로 정년을 맞았다. 세상에, 그 시절에 교대를 나온 여자가 사범학교 나온 남자와 결혼해서 아들을 셋이나 낳아 기르면서도 그 승진점수를 다 채웠는데 남편 기죽일까봐 포기하다니. 그런데 더 먹먹한건 그 다음이다. 늙으신 저자의 어머니는 치매 증상을 보였고(먹던 약의 부작용일 수도 있다) 자신이 대학원을 졸업했다고 믿는다. 세 아들을 모두 대학원에 보내면서 기뻐했던 어머니는, 손자를 만나면서 치매 증상이 완화되고 어지간한건 다 돌아왔는데 그 착각만은 안 돌아왔다고 한다. 저자는 그것을 즐거운 착각이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읽으면서 비명을 질렀다. 세상에, 그 어머님의, 더 공부하고 더 승진하고 싶은 한이 얼마나 깊었으면!!!!!

책 자체는, 출산을 앞두고 이거 사라 저거 사라 하는 이야기만 홍수를 이루는 세상에서 균형을 잡기 위핸 최소한의 추 역할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좀 더 강경하게 이야기할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애초에 경제 책이 아니라 육아 에세이에 가깝기 때문에 설렁설렁하게 간 것 같다.) 하지만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꽤 많은데, 편집자가 교열을 안 본 건지, 앞에서 썼던 문단이 다음 페이지에 그대로 나오는 대목이 있는 것은 물론, 거의 한 페이지 분량이 그대로 반복되는 부분도 있다. 게다가 띠지 자체가 책 디자인의 일부로, 띠지를 벗겨내면 마치 초라한 알몸처럼 표지가 영 형편없어진다. 대체 어떤 편집자가 책을 이따위로 만든거야 하고 책을 뒤집어 보니 다산북스 쪽 책이다. 책 만듦새의 면은 어쩔 수 없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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