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정말 바쁜 해였습니다. 상반기에는 휴직을 했지만 하반기에는 복직도 했고, 대학원도 다니고 있고, 논문도 시작했고, 게다가 육아, 이게 크네요. 육아를 하면서 체력이 굉장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중간에 몇 달은 원고해서 벌어들인 돈이 고스란히 병원비로 나갈 정도로 힘들었던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올 한해, 돌이켜 보니 나름대로 열심히 작업했네요.
일단 올해의 작업 첫번째. 리베르떼의 연재가 끝났습니다.
리베르떼는 홍콩 느낌의 가상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시민혁명 SF물인데(아아, 이걸 보신 담당님이 “로맨스라고 로맨스!!!!!”하고 비명지르시는 게 자동적으로 뇌내에서 재생이 되는군요. 뭐, 어쩌겠어요.) 개인적으로는 지금 시국에도 맞는 작품이라 좀 더 과격하게 쓰고 싶었습니다만(!!!!!!) 여러 어른의 사정으로 적당히 온건하고 꿈과 희망이 넘치는 선에서 종료했습니다.
사실 이 만화 자체는, 올해는 거의 작업하지 않았어요. 이미 1권이 나온 시점에서(그러니까 출산 전) 5권까지 콘티가 되어 있었던 것이라. 이 만화에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 만화에서 제 최애캐인 유진 파라벨럼 부국장의 이 마지막화 대사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여담입니다만 국회에서 탄핵안 가결되는 것을 보고 “그래, 저 만화 좀 더 과격하게 갔어야 했어”하고 뒤늦은 후회를 했습니다만 아마도 담당님이 말렸겠죠. 흑흑.
나와 그 애의 화학반응. 에픽로그에서 나왔습니다.
예전에 그와 그녀의 화학반응 이라는 제목으로도 나왔었는데, 등장인물 정도만 남기고 상당 부분이 바뀌었어요. 무려 로맨스입니다. 표지가 무척 마음에 들었고요. 북새통에 갈 때 마다 한번씩 보고 옵니다.
여고생이 신참 화학교사를 잡아먹는(…..) 역키잡 로맨스인데, 무려 스승의 날 출간되기도 했지요. 아아,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다음은 메티스 프로젝트……
라고 처음에 발표했는데, 카카오페이지 등에 서비스 되면서, 좀 더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제목을 고민한 끝에 “여신님이 우리집에 눌러앉았습니다”라는 밝고 희망 넘치는 제목으로 바뀐 소설입니다. SF 라이트노벨이고요.
뭐, 여신들이 고등학생 혼자 사는 집에 눌러앉으면서 벌어지는 일이니까 제목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일단 SF고, 신화 기반이고, 좀 암울한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월하의 동사무소 끝내고 쓰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았고…… 결국은 7, 8년 지난 지금에야 완성하게 되었네요. 무척 쓰고 싶었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족쇄 두 남매 이야기 소설판이 나왔습니다.
민송아 쌤의 만화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원작은 이쪽이죠. (그래서 만화에도 “원안 : 전혜진”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만화가 나올 당시 소설의 초고가 나와 있었는데, 임신이라든가 여러 사정 상 늦춰진 끝에 올해 나오게 되었어요.
만화에서의 절절한 감정은 좀 줄어든 대신, 집안은 더 막장이고 사람은 더 쉽게 죽어나가는, 피 튀기는 소설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결말에서 좀 더 잔인하게 가려고 했는데, 어지간한 장면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담당님이 결국 마지막의 대여섯 페이지는 그냥 들어내자고 간곡히 말씀하시는 바람에. (……)
이 수상한 물음표 박스 아이콘 하나로 두 작품을 퉁치도록 하죠.
하나는 수학동아에 연재중인 아리아드네의 검 입니다. 마이크로프트 홈즈와,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인 베아트리스 공주가 주인공인, 추리 수학 학습만화입니다. 물론 셜록 홈즈 덕후의 동네북(…..) 버티(에드워드 7세) 황태자도 여자 밝히는 허당으로 나옵니다. 레이디 디텍티브와 이어지는 세계관이 조금 들어 있기도 하고요.
또 하나는 정말로 물음표로 표시할만한 것. 시험삼아 필명으로도 출간을 해 보았습니다. 이건 나중에 기회 되면 이야기하도록 해요.
김보영 작가님이 기획하시고 다양한 존잘님들을 불러 모아 완성하신 앤솔로지, 다행히 졸업 입니다. 저는 비겁의 발견 으로 참여했지요.
처음에는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하며 잔뜩 쫄아든 상태로 글을 썼다가, 나중에는 에라 모르겠다 급이 되니 불렀겠지(…..) 하는 자뻑에 취한 채 퇴고를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자기가 학교에 다녔던 시대의 이야기를 하는 기획이다 보니, 20년만에 모교에 찾아가 자신이 두려워했던 것들을 마주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어요. 제가 두려워했던 것들이 의외로 굉장히 어이없을 만큼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지긋지긋했던 것들은 그 자리에 두고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펌잇.
매주 두 번의 마감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휴재 없이 지금까지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펌잇을 처음 시작했을 무렵에는 공대생 동물원…… 아니, 공대 웹툰 자체가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공대생 너무만화나 공대생툰, 공대에는 아름이가 없다 등 여러 공대 만화들이 나오고 있어요. 비록 변방에서 연재하고 있다고 하나, 공대만화의 선두주자는 역시 펌잇이라고 생각하며(웃음) 자부심을 갖고 매일매일 힘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유쾌한 이야기만 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가급적 인물들 하나하나가 겪는 갈등들을 차분하게 그려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튼 출산하던 주에도 휴재만은 하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어지간해선 휴재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새해는 닭의 해. 그러고 보니 프랑스의 앙리 3세인가 4세인가가 “모든 국민이 일요일에 닭을 먹을 수 있(을 만큼 나라를 부유하)게 하라”고 칙명을 내린 바람에 프랑스의 국조가 닭이 되었다나 하는 이야기는 먼나라 이웃나라 덕분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죠. (국조를 잡아먹는 프랑스의 시민들……) 뭐, 남의 나라 국조입니다만(……) 매주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시켜 먹을 수 있도록 새해에도 더 열심히 원고해 보겠습니다.
아, 사진 속의 닭은 오늘 마트에서 사온, 새해의 저금통입니다. 이름은 배에 적힌 그대로 양념과 후라이드예요. 독자 여러분도 치킨 가득한 한해 되세요!!!!!!
ps) 2017년은 데뷔 10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와, 벌써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