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결혼

언니의 결혼 – 니시 케이코, 최윤정, 학산문화사

언니의 결혼
언니의 결혼

지난 번 읽었던 남자의 일생 이 내용면에서도 흥미롭고, 연출도 좋아서 역시 읽기 시작한 만화. 제목이 “언니의 결혼”이지만, 이야기의 화자가 여동생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언니”쪽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화자이고. 어쩌면 혈연으로서의 “언니”가 아니라 우리가 왕언니라고 하거나 그런 의미에서의, 직장이나 집단에서 좀 나이가 든 여자라는 뜻으로 “언니’라고 붙인 건가 싶기도 한데, 그런 의미까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남자의 일생”의 주인공인 츠구미가 직장동료와의 불륜 중 고향으로 왔듯이, 이번 주인공도 불륜에 휘말려 있다.

주인공인 요리는 고향에 돌아와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다. 40세가 된 그녀는 중학교 때의 동창인 정신과 의사 마키 마코토가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쳐 놓은 함정에 걸려들어 그와 잠자리를 하게 되고, 불륜 관계가 시작된다.

마키는 중학교 때 그녀가 한 말을 계기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스토킹하듯 요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사진을 찍어댔으며, 의사가 된 후에도 일종의 정략적인 맞선에 나갔다가 요리와 닮았다는 이유로 병원장 딸과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맞선으로 만난 아내는 가정이 있는 남자와 불륜관계였고, 얼굴이 닮았다는 이유로 결혼했지만 마키는 여전히 첫사랑인 요리를 사모하고 있었다…… 는 게 마키가 이런 일을 저지른 원인이고, 이야기는 마치 남주인 그를 이해해야 할 것 처럼 흘러가지만, 읽고 있으면 답답해진다. 물론 요리가 사회 분위기 상 “아마도 지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만한 나이라고 해도(물론 10년도 전의 SATC를 생각해보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요리에게 달리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인기 작가인 무겐도 씨는 한참 연상이지만 요리의 재능을 알아보고 지지해주고 있고, 카와하라에게 청혼도 받은 상태였다. 이야기의 후반까지 요리는 딱히 마키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마키가 결혼생활을 프로포즈를 한 다음에야 제대로 감정이 닿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요리에게 필요한 것이 “이 사람”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드는데.

그런 것 치고는 이 망할 불륜남은, 청혼을 받고 결혼을 고려하는 요리의 걸림돌 노릇만 착실하게 한다. 집을 마련하고, 돈을 지불하고, 불륜을 소꿉놀이처럼 여기면서. 안경남에 얼굴만 반반하면 남주가 되는 게 아니지 않니…… 애정없는 결혼생활을 하느라 돌아버리겠으면 일단 이혼부터 하고 와서 들이대든가. 읽는 내내 “저 새끼는 똥차야”라는 생각만 들게 하는 남주라니. (게다가 똥차 주제에 여자는 또 두루두루 다양하게 잘 꼬이기까지 한다.)

게다가, 요리가 고향에 내려와 있지만 유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몇몇 단서로, 그녀는 에세이를 써서 상을 받기도 하고, 또 이 인연으로 현의 관광 프로젝트 책임자가 되어서 활동하고, 그에 필요한 인력을 도쿄에서 소개받거나 하는 것 까진 좋다 이거다.

그 관광 프로젝트가 하필 군함도라는 게 문제지. “토사지마”라고 나오지만 중간에 한 번 나온 정식 명칭에서 “하시마”라는 이름이 나온다. 이게 군함도(군칸지마)의 정식 명칭. 탄광섬으로, 1940년부터 해방 때 까지 조선인을 강제 징용하여 석탄 노동을 시켰던 곳으로, 이 만화가 일본에서 나올 무렵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올라가 있었다가, 아마도 완결났을 즈음에 강제 노역에 대해 명시하겠다는 조건으로 등재가 되긴 했다. (그리고 이후 강제 노동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있기도 하고.) 보면서 계속, 산업발달을 위한 탄광마을, 지금은 무인도, 콘크리트 건물, 그리고 여기에서 빔을 쏘아올리면서 인기 가수의 콘서트를 여는 등의 모습들이 꽤나 신경이 거슬렸다. 한편으로는 이야기를 만들 때 자국의 악행과 흑역사를 포함해서 충분히 공부하지 않으면 이런 걸 만드는구나 하는 반면교사도 되었고.

여튼…… 결국 결말까지 다 보긴 했지만 보는 내내 가시가 걸려 있는 것 같았고, 주인공의 유능함을 보여주기 위해 넣은 “토사지마 프로젝트”는 특히 신경이 쓰였던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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