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마시타 토모코의 데뷔작 및 투고했다가 실리지 못했던 단편 등이 수록된 단편집. 연출이 빽빽하고 넘김이 매끄럽지 않지만, 이미 데뷔작부터 자기 색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작가가 되는 거구나 하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묘하게 염세적이고, 닿지 않지만 관능적이고, 아무 일도 아닌 것 처럼 폭력적인 장면들이 무감정하게 펼쳐지고.
단편집은 그 작가의 스타일을 엿보기 좋은 창인데, 생각해보니 어릴 때에는 우리나라 순정 작가들의 단편집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주로 작가의 데뷔작, 또는 연재 전에 잡지에 실렸던 단편들이 차곡차곡 모여서 한 권 분량이 되어 세상 빛을 보았고, 가끔은 장편이 나오다가 그 뒤쪽에 부록처럼 그런 단편들이 실리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 것이 나오지 않는다. 권교정 단편집 등, 과거의 수작들이 복간되는 일은 있어도. 아예 김달 작가나 반-바지 작가처럼 단편을 옴니버스 형태로 작업해서 연재한 것이 책으로 묶여 나오기는 해도, 독립된 단편을 넷에서 여섯 정도 모아서 나오는 단편집을 구경한 것이 굉장히 오래 된 일 처럼 느껴진다. 그때의 출판사들은 지금보다 신인에게 투자를 했다는 어떤 증거인 걸까? 혹은 지금은, 트레이닝이 아니라 당장 연재에 밀어넣을 수 있는 인재만을 원한다는 뜻일까.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우리나라 순정 작가의 단편집이 따로 단행본으로 나오지 않게 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