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버스터즈

고스트버스터즈(2016)

개봉 첫날이니까 네타를 피하고 싶으면 읽지 말 것. 일단 첫 문단은 네타 없는 이야기부터 시작할테니 알아서 피해주세요.

예전 고스트버스터즈 영화라든가, 혹은 애니메이션 시리즈라든가, 어느쪽에서도 나는 이건이 제일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랬을 사람 많을걸?) 그는 수줍음을 타는 천재 공돌이 너드이고, 훌륭하게 맛이 간 매드 사이언티스트인 주제에 묘하게 신사적인 남자였다. 그리고 이번에, 그 멤버들을 여성으로 바꾸고 리부트한 새로운 고스트버스터즈에서, 나는 홀츠먼이 등장한 순간 소리없이 주먹울음을 터뜨릴 뻔 했다.

앞머리를 올려 세워 얼굴을 길어보이게 하고, 두껍고 특이한 안경을 쓰고, 신무기를 척척 찍어내는 박사인데 이건 어디로 봐도 매드 사이언티스트고, 농담은 잘 하면서도 처음으로 한 편, 한 팀, 가족, 친구들이 생긴 것에 가슴떨려하면서 그 말은 잘 못 꺼내는 공돌이 너드 홀츠먼!!!!! 이 언니는 거대한 청교도 유령과 맞설 때 등 뒤에서 간지나는 쌍권총 형 무기를 꺼내 액션을 펼치기까지 한다. 와, 언니, 멋있어요. 사랑에 빠질 것 같아. 고스트 버스터즈의 최애캐였던 이건이 이런 멋진 언니로 되돌아온 것에 감동했다.

그리고 감동도 잠시. 이건 역을 맡으셨던 배우님이(돌아가셨다) 에린네 대학 사무실 복도에 놓인 흉상(…..)으로 발견될 것을 보며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에린과 애비는 고등학교 시절 동창이었고, 예전에 함께 유령에 대한 연구를 책으로 낸 사이. 에린은 종신교수 임용을 코앞에 둔 상태로 과거의 흑역사인 그 책이 아마존에서 팔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애비를 찾아갔다가, 정말로 유령을 목격하고 만다. 그리고 “유령은 있었어!!!!”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오며 교수 임용이 물 건너간 것은 물론 해고되고, 애비와 홀츠먼의 팀에 합류한다.

이 에린과 애비는, 마치 피터와 레이를 둘로 합쳤다가 다시 나눈 것 같은 느낌. 예를 들어 에린은 레이처럼 온갖 호구잡히는 노릇은 다 하지만, 미남을 밝히는 것은 피터에서 가져온 성격 같달까. 물론 원작에서 대장 노릇을 하던 피터는 애비가 그 성격의 대부분을 이어받았고.

그리고 여기, 뉴욕의 지하철 직원이던 패티가 합류한다. 이 패티는 유일하게 과학자가 아니라는 점, 흑인이라는 점, 그리고 방향은 다를 뿐 제각각 맛들이 간 저 인간들 사이에서 그나마 상식인이라는 점에서 윈스턴의 속성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고.

그리고 “전화받은 여비서”의 포지션에, 케빈으로 분한 크리스 햄스워스가 등장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금발 거유 백치 비서”의 남자 버전. 전화도 제대로 못 받고 커피도 제대로 타지 못하는데다 로고를 만들랬다니 유령 로고에 가슴이나 그려넣고 있는 이 케빈은 무려 빙의를 당하고서야 똑똑해진다. 아아, 그 빙의 말인데. 저런 아름다운 얼굴과 저런 완벽한 피지컬에 그런 두뇌를 가졌으면 그냥 빙의된 채 평화롭게 하렘왕이 될 수도 있었는데 왜 꼭 굳이 세계를 멸망시키겠다는 거니, 하고 악역을 동정하게 된다. 아니, 그냥 평화롭게, 여자들을 만나고 돈을 벌고 인기인이 되어서 행복하게 살라고! 햄식의 미모와 그대의 지능이 만나면 다 가질 수 있어!

그럼 케빈에게 빙의당한 악역이 누구냐 하면, 호텔 직원인 로완이다. 기분나쁜 말을 혼자 중얼거려 여자들이 피해다니고, 직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하는 일종의 불운한 천재로, 직장인 호텔의 지하실에 틀어박혀 제4의 문을 열고 유령들로 뉴욕을 뒤덮을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그 계획에는 자신의 죽음도 포함되어 있었다…… 고 하면 거창하지만, 하는 짓을 보면 예전 시사인 기사 중에 “이제는 국가 앞에 선 일베의 자식들”인가, 여튼 일베 사용자 분석 기사가 떠오른다. 이 상큼하게 웃기는, 성별이 전환되었을 때의 포인트와 덕후포인트 양쪽을 유쾌한 영화에서 자기 입으로 남들 앞에서 여성혐오 발언을 공공연히 내뱉는 유일한 캐릭터가 “로완에게 방의당한 케빈”이라는 것도 포함해서. 여튼 로완이 케빈에게 빙의되자, 케빈은 자기가 움직이는 대로 경찰과 군인들을 움직이게 만드는데 이 부분이 엔딩 크레딧에 통째로 들어간다. 고스트버스터즈를 보고 나오자마자 트위터에 제일 먼저 쓴 글이 “여러분 고스트버스터즈 보세요 금발거유미남이 엔딩 크레딧에서 춤신춤왕을!!!!!!!”이었는데, 크리스 햄스워스가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춤추는 장면을 보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

전작의 주인공들이 까메오로 출연한 것은 물론이다. 피터 역의 빌 머레이는 “유령은 없다”며 고스트버스터즈의 활약을 공공연히 폄하하는 물리학 교수로, 레이 역의 댄 애크로이드는 전임자가 감옥에 가서 학과장이 된, 막장 대학(애비의 연구실이 있었던)의 교수로 나와 새로운 고스트 버스터즈의 발목을 잡고 힘들게 한다. 나와서 노하우를 전수하는 현자가 아니라, 꼰대 중의 꼰대로 전편의 주인공들을 등장시키다니, 이거야말로 “리부트”가 무엇인지 화끈하게 보여주는 게 아닌지.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전편의 히로인이었던 시고니 위버도 나온다. 홀츠먼의 스승님으로.

(여기 추가로, 전작의 윈스턴이 패티의 장의사 삼촌 – 영구차를 빌려준 – 으로 나오고, 호텔 로비 직원이 전작의 비서였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맞아요, 그 언니 어디서 봤다 했는데!)

(그러고 보니 크리스 햄스워스도 그렇고 시고니 위버도 그렇고, 빙의 전에는 그냥 그렇다가 빙의당하며 급 섹시해지는 캐릭터였다고 세이와 잠깐 이야기)

그건 그렇고 뉴욕이 유령으로 뒤덮이고 호텔이 날아가고 그 아래로 제4의 문이 열리고 난리가 난 마당에, 영업중인 샌드위치 가게가 있다니. 마치 씨엘 1권에서 이비엔이 “눈부신 가슴선”을 유지하려면 영양을 공급해야 한다며 샌드위치 사먹던 생각이 난다. 아니 그 난장판에 빵이 넘어갑니까.

주인공들이 여성으로 변경되며 불만을 표시하는 이들도 있더라고 들었는데, 세이에게 물어보니 “심리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코믹 액션 영화인데 상관없지 않냐”는 반응. 세이는 패티가 지하철역에서 인사하는데 다들 무시하고 지나가는 장면, 이 인물의 속성과 상관없이 굉장히 흔한 장면이었지만, 패티가 여자이고 흑인이라서 더 무시당한게 아닐까, 하고 묻기도 했다. 아, 그리고 남자가 봐도 빙의 당한 후의 햄스워스는 좋았다고. 그렇지, 이렇게까지 관객이 주인공의 빙의를 바라는 영화도 없었던 것 같긴 했다.

아니, 정말 훌륭하고 유쾌한 덕후영화였어요. 고스트바스터즈. 영화든 애니든 어렸을때 보신 분들은 다 즐겁게 보실 수 있을듯요. 마시맬로를 기억하시거나 시고니 위버가 빙의되고서 섹시했다고 기억하시는 분 모두 다. ♡

ps) 먹깨비도 연애를 하는 더러운 세상. (먼산)

ps2) 마지막 장면은 2편이 있다는 암시인거죠? 그렇다고 말해줘요.

ps3) 마시맬로…… 놈 비슷한 게 나오긴 하는데 그건 전편이 더 예쁩니다. 으흑, 우리 오동통하고 큼직하고 아무에게도 해 끼치지 않을 것 같은 마시맬로를 돌려줘 ㅠㅠㅠㅠㅠㅠㅠㅠ

ps4) 전편에서의 그 아지트 건물에…… 집세가 비싸서 못 들어가고 중국집 2층에서 시작하는 멤버들…… 아아, 어느 나라나 부동산이란……. 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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