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문 세이보 여고에서도 집안 배경과 아름다움, 리더십, 여러 면에서 독보적이었던 이츠미가 죽었다. 유일한 단서인 은방울꽃을 남기고.
그리고 그녀가 소속되어 있던 문학동아리는 1학기 마지막 모임에서 이츠미의 죽음을 테마로 한 낭독회를 진행한다. 이 모임은 매 학기 한 번, 불을 끄고 각자 가져온 재료들을 모두 넣고 끓이는 암흑 전골을 먹는 행사를 하는데, 이 날 낭독회가 진행된다.
서로 같은 동아리 친구라고 생각했던 소녀들은 저마다 이츠미와의 운명적인 만남, 그녀에 대한 동경과 이츠미를 죽인 범인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추측을 담은 글을 읽는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민낯이 벗겨지고, 이츠미의 비밀 역시 드러난다. 구조 자체는 단순한데, 암흑 전골과 결합되며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의 긴장감이 느껴지는 형태로 이야기가 돌아간다. 무엇보다도 마리미떼나 디어 브라더를 연상하게 하는, 명문 사립 여고, 아름다운 소녀들, 두각을 나타내는 여학생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동경과 애증이 물샐 틈 없이 전개되어 흥미진진했지만, 그런 빈틈없음이 “아, 정말로 이 아름다운 여자아이들을 다 죽이고 싶어서 무척 노력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려서 조금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왜 이렇게 “여자아이들을 죽이는 데” 몰두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장르들은. 주인공 전원이 냉장고 속 여자가 되어버린 듯한 ㅗ설, 마지막의 반전에서 사용된 은방울꽃은 좀 작위적이었고(탐미적이긴 했지) 표지가 내용과 그리 썩 어울리진 않는다. 그리고 캐릭터들 중에 불가리아에서 온 여학생 디아나 데체바가 있는데, 물론 그녀가 가져온 사연도 이야기의 전개에 필요한 것이긴 했지만, 이 캐릭터가 혼자 좀 튄다. 마치 애니메이션을 고려하고 이야기를 짜는데 “동유럽계 외국인 소녀. 전학와서 일본어를 할 줄은 알지만 어쩐지 말이 좀 어색한 캐릭터가 유행이잖아요?”하고 누가 권해서 넣은 것 처럼 혼자 튄다. (대체 그런 캐릭터는 왜 자꾸 넣는 거지? 금발벽안의 미소녀가 서투른 일본어로 이야기 하면서 유카타 입고 여름 축제 돌아다니는 이미지 만들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