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 – 정지우, 우연의 바다

얼마 전 SNS에서 한 여행작가의 블로그가 논란을 일으켰다. 동행자(아내)에게 고생을 강요하고, 박물관이나 미술관, 무엇 하나 공들여 보는 게 아니라 마치 지도상에 표시된 미션을 클리어하듯이 돌아다니고, 외국에 가서도 그 나라 식으로 사먹는게 아니라 숙소에서 햇반을 뜯어먹는 “여행작가”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아내와 함께 다니지 않았을 때 동남아시아 성매매 관광에 나섰던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경악하고 비난했으며 아내를 안쓰러워하기도 했다.

가이드를 따라 우루루 몰려가서 인증샷을 찍은 뒤 바로 다음 포인트로 인증샷을 찍으러 가는 것이 전부인 여행.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인증샷을 남기는 게 목표인 그런 여행도 사람에 따라서는 나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행이란 무엇인가, 왜 여행을 가고 싶은가, 그런 질문에 대해 과연 어떤 대답이 돌아올 지는 모르겠다. 남들과 똑같은 경로를, 가급적 더 많은 인증샷을 찍으러 돌아다니고, 쳔편일률적인 사진과 추억을 남기는 것에 불과하다면, 비행기 티켓 값이 아까울 수도 있는 일인데. 이미 지난 세계의 그랜드 투어는 의미를 잃었고, 집에서도 못 찾는 자아가 인도에 간다고 알아서 모습을 드러낼 리 없는 상황에서, 이 책은 “우리가 여행에 내던져졌을 때” 경험하게 되는 것들, 그 가능성과 효과를 제시한다. 다시 말해 여행의 장점을 이론적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안락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나약함을 이겨내고, 자신의 몫의 짐을 들고 자신의 몸을 감당하며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골목을 누비고 비탈을 오르는 경험을 통해 “신체를 되돌려받는”, 즉 “신체의 복원”을 경험한다. 자신의 신분이 놓여 있는 사회를 벗어나서, 본질적인 자기 자신과 지금 이 순간 현재의 시간을 누리는 방법을 배운다. 몽상 속에서 잊고 있었던 기억들을 되새기고 반추한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감정의 깊이가 동반된 삶의 순간들이 축적되어 있고, 우리가 목록들이 아닌 “삶의 흐름에 몸을 내맡긴 파도”에 가깝다는 것을 이해한다. 몽상 속에서 기억의 재현을 거쳐, 우리는 우리가 여행을 하며 머무르는 도시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체험한다. 기억과 감수성,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그 공간과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시간을 느끼게 된다. 반복되는 시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자기 자신이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실마리를 잡는다. 설령 돌아와서는 금세 씻겨져 없어지는 감각들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여행을 통해 그런 감각들을 느끼고, 자기 자신을, 자기가 살던 세계를 돌아볼 수 있다.

사람마다 여행을 대하는 태도는 다를 것이다. 얻기도 힘든 휴가를 얻어, 적지 않은 돈을 내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세계를 본다. 보고싶었던, 머릿속에서도 그려보았던 풍경들을 보고, 더러는 뮤지컬이나 공연을 쫓아다니며 보고, 박물관을 보고, 사람들을 본다. 더러는 휴식을 위해서, 더러는 쇼핑을 위해서, 저마다의 목적을 갖고 떠나, 그 목적에 충실하게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예전에,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의 “멋진 인생”이라는 수필집에서 읽었던 글이 하나 떠올랐다. 프랑스에 가고 싶었던 저자의 친구가, 프랑스어를 배우고, 자신이 사랑하는 시들을 불어로 외우고, 파리의 골목골목을, 자신이 보고싶었던 문학의 현장들을 그대로 지도를 머릿속에 집어넣듯 들여다보다, 마침내 프랑스에 갔을 때의 이야기. 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꼭 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여행 일정이 안남았는데 악천후로 배가 뜨지 않아 결국 그걸 보지 못했다. “그것이 인생”이라며 돌아서는 그 여행자가 나오는 수필 생각을 했다. 어딜 가도, 여행을 하러 간 게 아니라 취재를 하러 간 듯이 전투적으로 보고, 사진찍고, 밥 먹는 것도 잊고 박물관에 매달려 있는 관광을 하는 내게, 가끔 머릿속에 떠오르며 “언젠가는 그런 여행을 해야 하는데”하고 생각하게 하는 그 이야기가.

댓글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 – 정지우, 우연의 바다”에 대한 4개의 응답

  1. 황금새독자 아바타
    황금새독자

    선생님…! 제가 방명록을 찾다가 못 찾아서 부득이하게 선생님 블로그 최근 글에 댓글을 답니다T_T

    선생님 블로그에서 황금새의 전설 조각글을 무수히 접하고 교보 문고에서 이북을 간간하게 사서 보기 시작했던 독자인데요! (현재 1부 1-6권, 3부 1-2권까지 샀습니다.)

    나무 위키에서 황금새의 전설 페이지를 수정하다가 혹시 4부가 나왔나 싶어서 링크를 눌러봤더니 왜 이북이 다 없어졌나요… 이북 구입하던 교보문고에도 없고, 티스토어나, 엔스토어에도 없더라구요…!
    그래서 충격을 받기도 하고 놀라서 선생님 블로그로 달려왔습니다 T..T 그런데 방명록을 또 못 찾겠어서 이리 실례를 무릅씁니다…

    아침부터 실례를 저질러 대단히 죄송합니다 ㅠ_ㅠ

    1. jin 아바타

      앗, 그게요……
      워낙 예전에 쓴 거라서…… 일단 내렸다가 기회가 되면 앞부분부터 좀 다시 교통정리를 해서 연재하고 싶은 욕심이 있기도 하고
      그 불완전한 상태로 계속 서비스해 두는 것도 옳지 못한 것 같아서 담당자와 상의해서 지난달에 회수하기로 했어요.
      (회수하고도 공지기간 등을 포함해서 얼마간은 더 서비스 했다고 들었지만요)

      제가 지금은 육아도 해야 하고 당장은 아니지만 곧 머잖아 반드시 정리도 하고 완결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 황금새독자 아바타
    황금새독자

    아이고 그러셨군요! 전 또 완전히 판매 중단 된 줄 알고 아이고… 한숨 돌려도 될 것 같네요! 근데 또 재서비스 된다면 새로 사야하는 터라 싱숭생숭하고, 이제 좀 더 완전해져서 돌아올 거라 생각하니 기쁘기도 하고 사람이 모순적이지요 (…).

    안 그래도 간간히 블로그 눈팅하다가 출산하셨단 소식 접했습니다! 늦었지만 축하드려요 🙂

    또 교통정리 하시는 김에 문맥이라던가, 문장이라던가, 단어라던가… 띄어야 할 문장이 붙은 게 있고, 중간에 문장이 중복으로 쓰인 게 있고(…) 승진한 인물이 이전 직급으로 불린다던가, 아예 딴 직급으로 불린다던가 (…) 하는 것들이 있는데 의도치 않으신 건 열심히 잡아주십사…. 부탁드려도 실례가 아닐까요?
    (사실 이런 오류는 어디다 투고를 해야 좋을지 몰라서 두어개 솎다가 에잇 그렇게 거슬리지 않으니까 하고 보긴 봤는데, 반복해서 읽다 보니 드문드문 보이더라구요…!)

    더불어 3부 권당 분량을 왜 그렇게 적게 넣으신 건지 싶어서 새로 나오는 황금새는 분량(페이지 수)를 조금 늘려주심을 생각해 주심이 어떠신지요!:)
    1부 300페이지 훌쩍 넘는 것들을 읽다가 3부 1,2권 200페이지 대를 읽으니 맥이 빠지고 이걸 더 읽어야 하나 저도 모를 고민이 조금 되더라고요… 제가 1,2권만 봐서 적다 느낀걸지도 모르고 다른 권수는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권당 분량이 1부 분량만 되도 좋을 것 같다는 사족을 조금 얹어 봅니다….;ㅇ;

    그리고 선생님…! 하마드리스 대후가 너무 멋진 미중년입니다ㅠ_ㅠ…! 전에 뭐였죠… 시라노 아이가 가지고 싶어서 하마드리스 대후 T.T 태사를 덮… 하는… 다스카 조각글이 아직도 생각 납니다… 메인 애정전선은 다스카x시라노인 황금새인데, 저는 자꾸 다스카x태사 커플이 좋아지네요… 일단 살아남는 게 목표인 황금새이지만요. 그러고보니 블로그 리뉴얼 하신 뒤로는 조각글이 다 사라졌습니다….! 일부러 내리신 건가요? ;ㅇ;

    1. jin 아바타

      아무래도 예전 조각글들은 어릴때 썼던 거니까요 🙂 본편이랑 설정이 안 맞는 것도 많고요. 글을 다 치워버린 건 아니고 안보이게 가려놓은 거라서 언젠가 전체 설정을 다시 짜맞춘 뒤에는 연대기에 밀어넣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단은 그래요.
      3부가 분량이 그렇게 나간 건 예전에 이북으로 나갈 때 한권당 두께가 너무 두껍다고 그당시 담당자가 말씀하셔서 2, 3부는 좀 잘게 잘랐던 흔적이고, 새로 쓰게 되면 전체적으로 틀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일단 올해까지는 해야 할 작업들이 정해져 있고, 목표는 내년부터 다시 써서 내보내는 것인데 뜻대로 될 지 잘 모르겠어요. 일단 포털과 직접 1대 1로 만나서 뭘 하는 건 귀찮으니까, 이 작업을 같이 해 줄 – 마감을 하라고 저를 괴롭혀주고 적당한 포털을 찾아서 글을 밀어넣어줄 – 회사를 정해야 할 것 같고요. 예전 글을 웹소설로 개작할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의견을 같이 해줄 만한 회사, 그리고 가능하면 저 글을 본 적이 있는 회사와 의논해 보려고 알아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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