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아가씨 – 배우신 큰 변태의 탐미적인 다이쇼 로망

과연 박찬욱 감독은 배우신 변태였다.

물론 베드씬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씬도 무척 잘 만들어졌지만, 씬 쪽은 박찬욱의 변태스러움의 1%에도 지나지 않는다.

뭐 사실 박찬욱 감독은 이미 “위험한 관계”를 두고도 뱀파이어 물을 만든 용자셨으니 “핑거스미스”로 구미호와 인간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들 놀랍진 않았겠지만(……) 요 아래 문단부터는 네타가 많으니까 아직 안 봤으면 돌아가는 게 낫겠다. 여튼, 작년에 아기를 낳고 나는 조리원에 누워서 다른 드라마는 안 봤어도 “풍문으로 들었소”는 몇 편 챙겨봤다. 앞부분이 파격적이든 말든 그 드라마도 한국드라마라 뒤로 가면 온갖 막장은 다 쓸어넣었다가 마지막에 약간 다르게 끝난 정도라 뭐 다시 보라고 추천할 것 까진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챙겨본 이유가 거대한 한옥에 그대로 양식을 개축해 덧댄 듯한 그 집의 구조 때문이었다. 배경 세트가 특이하게 예쁘면 안 보던 드라마도 몇 편은 챙겨보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초반의 그 배경부터 압도적이다.

일본식과 영국식, 조선식이 뒤섞여 있는 코우즈키 가의 모습, 다다미가 깔린 아래 실내에 정원과 연못이 만들어져 있는 거대한 서실, 끝없이 꽃잎을 떨어뜨릴 것 같은 거대한 벚꽃나무(그 아래 사람이 열 명쯤 묻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까지. 반하지 않을 수가 없지.

그런데다 원작의 1부는 거의 그대로 따라왔고, 그 이후는 큰 틀은 따라가면서도 디테일은 더욱 변태력 파워업한 상태로 만들어놓은 것이 대단했다. 원래도 변태스러웠던 숙부의 취미가 더욱 파워업된 낭독회와, 지하에 있던 호쿠사이 풍의(……) 거대 문어까지. 뭐랄까, 왜 “일본이라면 모를까 한국에서는 식민지 시대라 화려한 창작물을 만들기에는 굉장히 애매한” 이 시대를 배경으로 잡았는지 120% 이해가 갔다. 20세기이지만 정서적으로는 아직 20세기에 돌입 못한, 화려하고 어처구니없는 동양풍의 무언가를 만드는 데 다이쇼 로망 말고 대체 뭘 택할 수 있을지.

물론 이 영화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못해도 1930년대 초반은 되어야 할 테니(코우즈키가 통역 노릇으로 한일합병에 공을 세우고 금광채굴권을 따낸 뒤 아예 일본인이 되기 위해 아내를 버리고 일본의 몰락 귀족 딸에게 장가들어 아내의 성을 이어받아 코우즈키가 된 것과 히데코의 성장 기간을 고려한다면), 엄밀히 말해 “다이쇼 로망”이라고 말하는 데는 무리가 있지만(1930년대는 이미 쇼와 초기니까), 전통과 근대, 동양과 서양, 화려함과 부유함과 탐미적인 요소들이 뒤섞인 다이쇼 풍의 어떤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 같다는 점에서 역시 다이쇼 로망.

내용과 상관없이 파격적인 레즈비언 섹스가 나온다는 이유로 영화를 보러 온 남자관객들에게는 미안하지만(웃음) 이렇게 변태적으로 예쁜데도 “꼴리지 않는”다는것이 이 영화의 굉장히 좋은 점이다. 사실 이 영화 개봉 전에, 과연 한국 아저씨인 박찬욱 감독이 원작의 정서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듀선생님은 이에 대해 뭐라고 코멘트를 할 것인가에 대해 트위터에서 잠시 떠들썩한 적이 있었지만, 이 영화는 현명하게도 온갖 개저씨스러운 요소를 이모부인 코우즈키에게 올인해 버렸다. 멋진 배분이다. 여튼 그래서인지 내 앞자리에서 이 영화를 보던 남자 둘은 영화 끝나자마자 “ㅅㅂ 이게 뭐야……” 하면서 일어나긴 했다.

그래도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보니 “두 좌석 사이가 비어있는 좌석 중에 양쪽에 여자가 예약한 좌석으로 가서 봐야겠다, 그러면 양쪽에 낯선 여자가 있는 상태로 레즈물을 보는거니까” 뭐 그런 소리를 지껄이던 멍청이가 있었는데, 그런 덜떨어진 자 보다는 낫지. 그렇게 앉아 있어봤자…… 코우즈키에게 이입할 정도의 변태라면 결국 코우즈키가 발기부전이라는 것을 마지막에 알게 될 것이고, 사기꾼 백작에게 이입한다면……. “애들 장난감 같은”거라는 수모나 듣다가 마지막에 “그래도 자지는 지키고 죽어서 다행이다”같은 대사를 마지막으로 쓰러지는 꼴을 봐야 할 텐데. (웃음) 대체 뭘 원하는 건가요, 낯선 두 여자 사이에 끼었더니 그 두 여자가 자기 머리 위에서 키스를 하면서 거시기를 잘라내는 망상이라도 하러 온 게 아니라면야. 아, 혹시 핑거스미스라고 원작이 있는데 못 들어보신거냐. 여튼 이 영화가, 영화에는 관심도 없이 낯선 여자 사이에 앉아서 껄떡대가 위한 용도로 영화를 보려 하는 인터넷의 변태들에게 고간을 조심하고 싶은 느낌을 준다면 그 역시 한국의 여성 관객들에게 크나큰 선물이 될 듯. (비웃음)

원작에서는 석스비 부인까지 서로서로 속이는 싸이클에 끼어들어 있고, 출생의 비밀도 나오지만 여기서는 그 부분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소매치기/하녀가 원작의 인물 “수잔/수키”의 이름을 연상하게 하는 숙희로 설정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뻔하고, 히데코도 어떻게 쓰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秀子 라고 쓴다고 치면 수자, 마찬가지로 한 인물의 이름을 두 캐릭터에게 나눠서 부여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1부의 내용을 빼곡이 머릿속에 집어넣은 상태로 2부와 같이 돌려서 보면 더욱 재미있으니, 여기까지 읽었는데 아직 안 보신 분은 1부를 머릿속에 꽉 채워서 보시기를.)

초반에는 수많은 신사들 앞에서 야설을 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체위를 설명하기 위해 목각인형과 함께 허공에 매달리면서도(안전장치는 목각인형과 함께 묶어 고정한 오비 끈 정도밖에 없어 보였는데!) 인형처럼 별 변화가 없던 히데코는, 숙희가 히데코 모친의 죽음에 대해 “이 아이를 낳고 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자신이 언젠가 들었던 위로를 되돌려주며 위로한 이후 마음을 열고, 달라진다. 그녀의 낭독에 죽음과 색기가 함께 부여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그녀가 낭독하던 야설 중 레즈비언 섹스와 은방울에 대한 대목+중간에 정전이 되던 장면) 생각해보면 서로 속고 속이는 관계인데, 히데코가 숙희에게 반한 것은 그 진심어린 위로를 들은 뒤. 숙희가 히데코에게 반한 것은 처음 만났을 때 그 얼굴이었으니, 적어도 서로의 가짜 모습에 반한 것은 아니지. 똑같은 화면이 흘러가는데 시선을 가리거나 개방하며 서로 다른 진실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좋았다. 그런 장면에서는 주로 사기꾼 백작이 소품(……)이 되지만, 정작 백작은 자신이 그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1막에서 총을 보여줬으면 2막에서는 그 총을 쏴야 한다. 영화 속 소품 몇 가지가 그 역할에 무척 충실했으며, 그 중 하나는 에로씬에, 하나는 결정적인 국면 전환에 영향을 끼쳤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의외의 곳에서 나오는 구차한 생활감”같은 것을 좋아한다. 예를 들면 “박쥐”에서, 흡혈귀 씩이나 되어서는 죽인 사람을 허공에 매달아 놓고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게 알뜰히 락앤락에 피를 쓸어담는 장면이라든가. 여기선 어떤 게 그런 장면일까 생각해 봤는데, 한국인이면서도 본편에서는 한 번도 한국말을 하지 않고, 옷도, 아내도, 생활양식도 모두 바꾼 코우즈키가 식성만은 바꾸지 못하고 냉면을 먹고 있는 장면이었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역시 숙희가 그동안 히데코가 사람들 앞에서 무엇을 읽고 있었는지 알게 되고 그 책들을 쓸어버리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숙희는 거침없이 그 책들을 찢고, 잉크를 붓고, 연못에 처박아버리지만. 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아니 그냥 저 책이나 서화를 몇 점 훔쳐서 나오면 그것도 돈인데”하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것 말이다.

자, 그래서. 이따위 감상문이 어떻게 이렇게 마무리되는지는 모르지만 영화의 엔딩에서 그 호쿠사이 풍의 문어가 수조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사기꾼 백작이 그 문어에게 능욕이라도 당하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면 문어는 코우즈키를, 코우즈키는 백작을 덮치는데 백작이 문어 먹방이라도 찍는게 아닐까 하는 개그스런 망상을 잠시 했는데, 다행히도 문어는 아무도 먹지 않습니다. 다만 올드보이에서는 낙지가 나온 것이 이번에는 문어가 나왔으니, 다음번에는 크툴루를 출연시키시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해 봤다.

+ 그리고 히데코와 숙희가 도망치는 장면, 얕은 담장 앞에서 숙희가 트렁크를 계단처럼 놓아주고, 히데코가 그걸 밟고 담장에 올라가 폴짝 뛰어내리고, 두 사람이 함께 달려가는 장면은 마치 소녀혁명 우테나의 마지막 장면같아서 가슴이 저릿했다.

ps) 초반의 쇠골무로 이를 갈아주는 장면을 보면서, 다른 작품이지만 엠마에 나오던 수정궁이 새겨진 쇠골무 생각도 했다.

ps2) 그러고 보니 숙희도 그렇고 백작도 그렇고 “일본으로 가서 호의호식하며 살겠다”고 한 것 같은데 그 시기면 “내지로 간다”고 하지 않았으려나. 두번 볼 시간이 없을것 같은데 누가 확인해 주셨으면…….

ps3) 영화 보고 돌아와 보니 여기저기 언론에 영화평이라고 나온 것들 중 상당수가 “레즈비언 로맨스”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며 우정에 연대에 유대감에 별별 다른 단어를 갖다 붙이려고 용을 쓰는데 눈이 옹이구멍이야 뭐야. 떡신이 부족하기라도 하다는 거야. 그렇게 치면 남자들의 우정 강조하는 사람들은 서로서로 떡치는 관계냐 이 미친자들아. 대BL시대를 지들이 쓰고 있어. 뻐킹.

댓글

“아가씨 – 배우신 큰 변태의 탐미적인 다이쇼 로망”에 대한 2개의 응답

  1. 지나가는 사람 아바타
    지나가는 사람

    글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

    1. jin 아바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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