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곡성 : 산신신앙 대 적그리스도의 흥미진진 맥거핀 서비스

곡성 보고왔다. 전에 말했던 것 같은데, 사실 나는 요즘 같은 영화를 두 번 볼 수가 없다. 지루해서 못 보는 것도 아니고 덕심이 부족해 못 보는 것도 아니며, 그저 시간이 없을 뿐이다. 그나마 요즘은, 개봉관에 걸려 있는 동안 볼 수나 있으면 다행이다. 육아가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여튼 일기일회, 집중해서 보고 왔다. 놓친 게 많을 것 같아 좀 걱정이지만.

그건 그렇고, 곡성은 요즘 화제작이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희망이라는 느낌의 리뷰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일단 가급적 리뷰는 보이는 건 보고 일부러 찾아서 보진 않은 상태로 영화를 보러 갔다. 기독교적이라는 말이 많이 있고, 일본인이 적그리스도면 무명은 뭐냐, 뭐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귀신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적그리스도에 대적하니까 그에 걸맞는 존재라는 이야기도 있고. 근데 그렇다면, 처음 사람 죽은 집에 돼지가 있었는데 그 돼지들이 발광하지 않았다. 기독교였으면 마귀를 돼지 않으로 쫓는 시퀀스가 어떤 식으로든 들어갔겠지. 일단 단순하게 기독교 이야기는 아니라는 전제를 깔고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는 질문편과 해답편처럼, “덫을 놓는” 장면과 “그로 인한 결과”로 나뉘어진다. 처음에 일본인이 낚싯바늘에 미끼를 꿴 장면부터, 일본인의 시체가 산에서 굴러떨어지는 장면까지가 “덫을 놓는”장면에 속한다. 일본인과 박수무당 일광은 처음부터 한패로, 일광이 옷을 갈아입는 장면에 나온 훈도시로 노골적으로 표현된다. 일본인의 밀교 의식 장면에는 뿔이 달린 것들이 나오고, 일광의 굿판에도 뿔이 달린 소 머리를 놓는다. 종구가 일본인의 검둥개를 죽인 뒤, 종구의 집 앞에 걸려 있던 것은 내장이 튀어나온 흑염소였다. 이들은 모두 악마를 상징한다. 여튼 다 좋은데 황정민의 엉덩이 구경을 할 줄은 몰랐다. (……) 여튼 일본인이 태웠다고 주장한 사진들은 마지막에 일광이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일본인의 정체는 교수라는 말도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의외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의 제단에는 목이 잘린 듯한 불상과 함께, 뒤쪽에 사진이 붙어 있는데, 이는 밀교 전승자로 생각된다. 하다못해 레이키만 해도 전승자를 통해서 능력을 내려받는 식으로 배우는데, 밀교라든가 악마숭배라든가, 전승자를 통해서 배웠겠지. 어딘가의 리뷰에서는 그의 제단을 둘러싼 것을 예수의 면류관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까마귀의 둥지로 보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까마귀는 일본 신화에서 진무천황이 가야 할 길에 난폭한 토착신이 많으니 까마귀를 데리고 가라, 그런 내용 본 것 같은데, 아마 그 용도일 것이다. 즉 일본인은 외지에서 넘어와 토착신과 싸워 이 땅을 차지하려는 악한 존재로, 적그리스도일 수도 있고 밀교 쪽의 악일 수도 있다. 여튼 기독교적 모티프는 다 갖다 써서 만들어 놓은 악한 존재인데, 베이스가 밀교라는 게 재미있다.

효진의 그림이나, 일본인에게 강간당했던 여자가 괴질을 앓고 미쳤던 것으로 볼 때 그 괴질은 섹스를 통해 옮는 듯. 작중에서 괴질을 앓은 사람들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은데 한번만 봐서는 다 체크가 안 된다. 일광의 굿이 살을 날린 대상은 효진. 일광의 굿 중간에 장승에 못을 박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건 일본인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무명을 공격하는 것으로 보이고, 결계를 부수는 행위에 가깝다. 결계라고 말하니까 생각났는데 가택신을 공격하는 장면들이 나온 것이 흥미롭다. 문가에 내장이 튀어나온 죽은 흑염소를 걸어놓은 것, 장독에 까마귀를 집어넣은 것, 무당과 시체들을 우물속에 던져넣은 것, 효진이 냉장고를 엉망으로 만들고 마지막에 보일러실에서 종구의 아내와 장모 시체가 발견되는 것, 다 가택신을 범하는 것이라 흥미롭다. 가택신의 결계로서 대문이나 장독을 깨고 나서야 일광이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우물이나 냉장고(주방), 보일러실 등을 범하고 경우에 따라 화재를 내는 것으로 침략을 마무리하는 느낌이다. 특히 효진이 냉장고를 엉망으로 만든 것, 종구의 아내와 장모가 보일러실에서 죽은 것은 조왕신의 죽음으로 연결되어서 느낌이 묘하다.

여튼 일광(황정민)의 굿 장면은 일품. 살을 날리는, 소위 방자하는 굿이라서 그동안 자료로 본 굿과는 형태가 다르지만, 상당히 힘이 느껴지는 장면이자, 연구를 많이 한 장면. 굿에 쓰인 제물들과, 효진의 방에 차려놓은 제삿상에도 다 뿔 달린 머리들이 있다. 이 제물들은 악마숭배와 연관이 있다.

무명은 성모는 성모인데 “우리들의 성모님”에 나오는 그 성모. 즉 마리아가 아니라, 산신인 여신에 가깝다. 기독교적 존재도 아니고 단순한 “선”도 아니라서, 선악을 가르는 존재라기보다는 외부의 악으로부터 자기 구역이 침범당하는 것을 막으려 한 것 같다. 무명이 말하는 “할머니”는 구삼승할망(죽은/죽어가는 아이를 돌보는 삼신할미)일지도.

선을 넘는 것에 대해 몇 장면이 나온다. 종구는 처음에는 무명을 따라서 폴리스 라인을 넘어 들어갔다가 일본인과 마주쳤다. (그리고 일본인을 “의심”한다) 그는 일본인의 집에 쳐들어가 잠긴 문을 부수고, 그를 위협하며, 덤벼드는 개를 죽인다. 그는 자기 손으로 피를 뒤집어 썼고 이것이 첫번째 부정이자, 일종의 각인. 다음은 일본인의 집에 쳐들어가서 좀비(라기보다는 밀교 주술로 살아난듯한)와 싸우고 피가 입에 들어갔으며, 마지막으로 일본인을 죽이려 했고, 자기 손으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일본인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벼랑 아래로 시체를 던진다. 이것으로 덫에 완전히 걸려들었다. 그는 일본인과 관련하여 세 번 피를 만졌고, 그것으로 부정을 타는 것이 완성되었다.

닭이 세 번 우는 건 기독교에서 오긴 했는데, 만약에 닭이 울기 전에 베드로가 배신을 안 했으면 베드로는 죽었겠죠. 그럼 어차피 세 번 울도록 기다려도 일가족은 다 죽었을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번 울 때 까지 기다리라고 한 건 영혼의 문제에 가깝다. 배신 안 한 버전의 베드로라면 함께 죽는 대신 완전히 영혼의 구원을 받았겠지. 마지막에 일광이 사진 찍으러 온 것, 그동안 나온 사진들이 “영혼을 가두는 것”에 해당된다면, 무명은 일가족이 죽더라도 일광이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 영혼을 구하려고 한 것으로 본다.

종구가 돌아갔을 때 아내는 곧 절명했고, 종구는 일광이 들어와도 손쓰지 못한 채 사진 찍힌 것으로 봐서, 종구는 살아남지도 구원받지도 못할 듯. 그렇게 치면 무명은 일가의 영혼을 구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종구는 “살아남은”것이 아니라, “절망하며 죽어갔”으며, 이는 그가 처음부터 던져진 떡밥마다 팔랑거리고 낚이며, 명확한 증거 없이 일본인을 의심하고 살해하려 한 “죄”의 대가를 치른 것으로 보인다. 설령 그가 악이라 할 지라도, 그는 미숙한 인간으로 “경찰”이면서도 증거없이 “사적 복수”를 하려 했다. 그에 대한 결과물일지도.

한번 더 보면 재미있는 게 꽤 보일 것 같은데. 여튼 맥거핀을 진짜 열심히 던져서 (아니 그 밀교좀비라든가 말이져) 기분나쁘고 흥미롭게 만든 것은 사실. 한국 영화의 새로운 희망 급은 아님. 그래도 최근 몇년간 나온 것 중에서는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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