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에 언급된 ‘동굴의 우화’는 우리가 현실에서 보고 있는 것은 실체가 아닌 이데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이미 수년 전 영화 “매트릭스”에서 다룬 바 있다. 영화 속에서 매트릭스의 일반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극들이 현실과는 다른 왜곡되고 선별된 전기신호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이 인식하는 세계가 한 마을에서 전 지구 단위로 넓어졌지만, 한 사람이 직접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의 범위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접하는 범위 밖의 세계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접하게 되며, 언론은 사실의 전달자로서 권위를 갖는다. 그러나 언론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하는 존재가 아니다. 언론은 주로 광고 수입에 의해 운영되고, 이로 인하여 영향을 받는다. 뉴스 프로그램 등에서 거대 광고주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뉴스를 보기 어려운 이유다. 또한 언론은 정치와도 무관하지 않다. 물론 언론마다 지지하는 정당이나 입장이 다를 수 있으나, 독재정권 하에서는 언론 통제와 같은 상황이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외신으로는 알려졌으나 국내에서는 거의 보도가 되지 않았다가, 상황이 종료된 뒤 왜곡 보도된 경우가 그렇다. 당시 TIME 등 미국 잡지를 수입할 때 한국 관련 기사는 검열을 거쳐 먹칠이 되어 있었으며, 이는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려 했음을 시사하나, 동시에 지식인 계층에게 “언론이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현대사회에 있어 사람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은 언론 뿐 아니라 다양한 창구를 통하게 되었다. 스마트폰의 발달로 인하여 누구나 현장의 사진과 생생한 소식을 인터넷으로 공유할 수 있다. 하나의 사실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고, 이에 대한 접근성이 용이해졌으므로 사람들은 동굴에서 벗어나 좀 더 실체에 가깝게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은, 우리에게 주어진 동굴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인터넷은 초반에는 인프라와 지식을 갖춘 특정 계층에게만 주어졌다. 당시의 정보들은 Pull 형태로 구독자가 직접 원하는 정보를 찾아 나서야 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 구독자가 관심을 보일 만한 정보를 서버에서 직접 밀어서 보내주는 Push 형태의 정보 구독 방식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뉴스 서비스 등을 메일로 보내주는 메일 구독 형태였으며, 이후 RSS 표준이 나오며 블로그, 뉴스 서비스의 메타 데이터를 RSS로 만들어, 개개인이 리더기로 구독하는 형태로 발전하였다. 사용자의 경험 데이터가 쌓이며 “이 정보를 이용하는 다른 사용자들이 역시 이용했던 정보들”을 위주로 새로운 정보를 추천해 주기도 한다. 또한 SNS의 발달로 인하여 사람들은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 직접 교류하진 못했지만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에 맞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교류하게 되었다. 이런 취향과 정보로 만들어진 그룹 안에서,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만든 동굴 속에서 자신이 보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기에 이르렀고, 정치적 이슈나 성평등 관련 이슈 등에서 자신이 알던 상식과 현실에 차이가 발생할 때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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