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악스트(Axt)의 듀나님 인터뷰를 읽었다. 듀나님은 언제나처럼 오물오물 쿨하셨고(그분의 트위터를 구독하고 있다면 동의할 것이다) 그분을 인터뷰한 백가흠, 배수아, 정용준, 세 작가님들은 흑역사를 쌓으셨다. 정용준님은 진짜 이 인터뷰에 대해, 듀나라는 작가에 대해 뭔가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신 것 같지 않았고, 배수아님은 준비를 하시긴 하셨으나 만렙의 무림고수에게 “님 혹시 쌍절곤 쓸 줄 알아요? 내가 보니까 잘나가는 무림인은 다들 쌍절곤을 쓰는 것 같던데!”같은 질문을 하셨고, 백가흠님은…… 그분에 대한 호감도가 바닥을 기었다고 설명해 두자. 익명의 작가에게 자꾸만 사생활에 대해 묻는 것까지야 무례하지만 그런 일들 한두 번 본 것 아니니 어떻게든 넘어간다고 치고, SF에 대해, 순문학계 문단을 통해 데뷔하지 않은 작가에 대해, 굉장한 적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여기까지 느껴져서 숨이 탁탁 막혔다. 20년된 듀나님의 소설은 여전히 흥미로운데, 상대를 낡았다는 식으로 몰아세우는 한편 “나와 만난 적 있지 않느냐”며 공공연히 자신의 인정욕구를 전시하다니 굉장했다. 혹시 백가흠님, 듀나님한테 경쟁심을 느끼시는 건가? 아니, 경쟁심 느끼실 필요 없다. 둘다 올림픽에 나갔다고 해서 유도선수와 레슬링선수가 굳이 맞장을 뜰 필요는 없으니까.
이 인터뷰의 화룡점정은 바로, 듀나님이 보낸 메일이었다. 듀나님은 메일에서 이 인터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듀나를 모르는 사람과 듀나를 아는 사람에게 이 인터뷰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 말하며 “웬만하면 이따위 인터뷰는 지면에 싣지 말지?”를 정중하게 돌려서 제의했으나, 악스트는 용감하게도 이 메일까지 모두 싣고 말았다. 그리고 트위터에서 열심히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적어도 내 타임라인의 사람들 대부분은 이 기막힌 인터뷰를 보기 위해 악스트를 살 것이니, 그런 점에서는 나쁘지 않은 기획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잡지의 부흥을 위해 이렇게 몸바쳐 뒹구시다니.
처음 읽을 때는 물 없이 고구마를 삼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 인터뷰를 한번 읽고 나서, 조금 더 즐겁게 읽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라고 남의 흑역사 대 전시를 구경하는 게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니까. 이 인터뷰, 특히 백가흠님이 인터뷰한 부분은 일종의 텍스트 퍼포먼스라고 생각하면 좀 즐겁다. 21세기에 살며 여전히 19세기의 마음을 갖고 있는, 상대를 이해할 마음은 없고 상대를 깎아내리려 죽을 힘을 쓰면서도 “나와 만난 적 있지! 나 알지!”하며 대놓고 인정해달라고 떼를 쓰는 한국 중년이 처음으로 외계인을 만났을 때 벌어질만한 상황을 다룬, 일종의 SF라고 생각하면. 그렇다. 우리는 문단작가와 SF작가가 합작한 일종의 퍼포먼스를, 한국인이 외계인을 만났을 때 벌어질만한 일을 본 것이다.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이 인터뷰의 질문들이 그나마 납득할 수 있는 지점까지는 오지 않겠느냔 말이다.
여튼 트위터에서도 별별 키워들이 시비를 걸어와도 초연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격파하시던 듀나님이셨지만, 이번 인터뷰 질문을 메일로 받으셨을 때 대체 어떤 기분이 드셨을지는 상상도 가지 않는다. 음. 과연 악스트에서 또다시 장르작가를 섭외해서 인터뷰를 하는 게 더 빠를까, 아니면 이런 인터뷰를 진심으로 하고 있는 악스트가 망하는게 더 빠를까에 대해 씁쓸한 생각을 하게 되는 초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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