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녀의 일기 – 옥타브 미르보, 이재형 역, 책세상

1900년대의 소설이지만 묘하게 “헬조선”의 청년들과 겹쳐 보이는 소설. 아마도 영화화 되면서 국내에 번역수입된 것 같다.

19세기 말 노르망디의 메닐 루아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하녀 셀레스틴의 눈으로 본 인간의 악덕에 대한 이야기. 아버지를 여의고 알코올 중독자인 어머니에게 학대를 받던 그녀는, 수녀원 직업소개소를 거쳐 하녀로서 일하게 된다. 그녀는 부유하지만 인색한 랑레르 집안에서 일하며, 랑레르 부인의 견제와 히스테리를 감당해야 하고, 랑레르 씨의 추파 역시 요령좋게 피해야 한다. 하녀는 피고용인으로서 주인의 온갖 갑질, 성폭행이나 성추행 등에 있는 그대로 노출되지만, 그로 인해 주인의 아이를 임신하더라도 그 책임은 하녀에게 있는 시대이니.

갑질은 주인만 하는 것이 아니다. 수녀원의 직업소개소는 칼같이 계산해 1년치 급료의 일정 비율로 수수료를 챙겨가고, 그 하녀들이 1년동안 몇 번을 옮겨 다녀야 했는지, 그런 것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젊은 하녀란, 수많은 착취의 대상이다. 지금, 21세기의 청년들이 그렇듯이.

“가난한 사람들이란, 삶의 수확물과 즐거움의 수확물을 키우는 인간 비료나 다름없으며, 부자들은 이 수확물을 추수하여 너무나 잔인하게 우리에게 악용한다. 더 이상 노예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주장한다. 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억지다. 하인들이 노예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노예 제도가 정신적 비열함, 필연적 타락, 증오를 낳는 반항심을 포함하는 것이라면, 노예 제도는 지금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인들은 악덕을 주인에게 배운다. 순수하고 순진한 상태에서 하인 일을 시작하는 그들은 사람을 타락시키는 습관과 접촉하면서 금세 타락하게 된다. 그들은 오직 악덕만을 보고, 악덕만을 호흡하고, 악덕만을 만진다.”

시골의 일상은 단조롭다. 셀레스틴은 마을 하녀들의 모임에서 온갖 풍문과 추문을 접하고, 수상쩍은 마부 조제프에게 불안과 호기심을 느낀다. 마을에서는 살인 사건도 일어나지만, 셀레스틴은 전지적 화자가 아니다. 그녀는 제한된 조건에서 제한된 시각으로 자신이 보고 듣고 알게 된 이야기를 서술하기 때문에, 이야기 속의 미스테리들 중에는 풀리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다. 이 소설은 미스테리나 스틸러가 아닌, 그야말로 “하녀의 일기”처럼 주인들의 탐욕과 부패, 그리고 도덕적 타락과, 그에 동조하는 하인들의 노예근성과 악덕을 담아낸 이야기니까. 소위 “떡밥”이 회수되지 않아 답답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1인칭 소설에서 모든 떡밥이 깨끗하게 정리된다면 그 역시도 부자연스럽다. 마지막에 셀레스틴은,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흐릿한 단서들만을 남긴 채로 조제프와 함께 떠난다. 어쩌면 주인집의 은그릇을 훔쳐냈을지도 모르고, 수상쩍게 돈이 많으며 그녀를 이용하려 드는 그 남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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