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말 쯤 읽게 될 줄 알았는데. 애가 점심시간 이후로 계속 보채는 바람에 애를 안고 두시간 넘게 있느라 결국 다 읽은 책.
읽으며 수도 없이 인터뷰 내용들에 실소를 흘리고, 중간에 비명을 지를 뻔 하기도 했다. 비명을 지른 대목은 주로 언스쿨링, 예방접종……. 예방접종 하는데 바늘 들이댔더니 애가 “나한테 이러지 마세요.”한다고 역시 옳지 못한 일이라고 예방접종 안했다거나 엄마의 직감을 발달시켜서 직감을 따르라거나….. 가정주부라고 딱히 신성할 것은 없고 엄마라고 각별히 위대한 것은 아니며 부모의 직감도 사람의 직감이라 딱히 믿을 만한 것이라 보기 힘들고 추억속의 엄마나 할머니의 집밥과 팬트리를 구현할 체력과 시간이 있다면 다른 일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내 주변에 저런 고상한 부인들은 안 나타나시겠지만 오더라도 도망갈거야. 으악, 내 주변에 오지 마, 훠이.
(대체 “감자 몇 알이라도 자기 손으로 수확해 봐야 삶의 진정성에 다가간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또 뭐야. 감자를 키우는 건 좋고 베란다텃밭이나 로컬푸드에도 관심이 있지만 저런 식의 주장을 들으면 진심으로 “아니 왜 농사라는 인위적인 행위를 하느라 어머니 대지를 파헤치고 상처입히고 그래요. 수렵 채집 어로라는 인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시지.”하고 묻고 싶어지긴 한다. 인터뷰들을 보며 저 책 저자가 인터뷰 하다가 몇 번이나 체하셨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으니.)
하지만 심각하게 읽을 부분이 더 많았다. 이 책은 미국에서 2013년에 나왔다. 그리고 2015년의 한국은 집밥 열풍이 불고, 네이버의 맘블로거들은 온갖 것에 엄마표를 붙이고 있으며, 킨포크 스타일을 따라한 무언가의 번데기가 판을 치고 있는데. 인간으로서의 행복 추구와 거리가 먼 노동조건, 그리고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직장으로 쉽게 돌아갈 수 없는 환경에서 그 잉여력이 “폭주하듯 온갖 것을 다 만들어내는 완벽한 가정주부의 낭만”이라든가 “엄마는 아이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그런 생각으로 흘러간다는 것이 이미 남의 일인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지적하듯, 그런 레트로 가정주부 로망(…..) 이라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것도, 애착 육아나 자연주의, 엄마표 등을 실천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은 계층의 문제라는 것. 직장에서 성취감을 느낄 기회를 빼앗기거나 혹은 비인간적 환경에 실망하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기로 결정한 “교육받은 중산층”이 잉여력으로 이 모든 일을 대세로 만들고 따르고 있다면,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 부모의 직감에 따르겠다며 예방접종 의무화를 폐지해달라거나, 우리 아이는 남들과 다르게 키우겠다며 의무교육 대신 홈스쿨링을 선택하거나, 가정으로 돌아가겠다며 직장에서의 모성복지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들 등등은, 바로 그런 복지가 필요한 계층에 즉각적인 타격이 될 수 밖에 없는데. 무엇보다도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그걸 감당할 수입원을 갖고 있다는 뜻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도. 그동안 그런 맘블로거들을 보거나, 그런 삶을 동경하는 사람을 보면서 느꼈던 묘한 감정들에 어느정도 주석을 달아주는 느낌이었다.
애가 매달리지 않고 걸린 마감이 없을 때 다시 찬찬히 읽어봐야겠다. 생각할 것들이 더 많이 있고 포인트는 표시해 놓았는데, 애를 안고 달래는 상태로는 집중력을 평소의 반밖에 쓸 수 없다보니.
그리고 나서,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와 “행복한 엄마의 조건”을 다시 읽을 생각이다.